본문 바로가기

과학오디세이

하이젠버그, 노약자석, 집토끼 산토끼

프로그램 오류를 찾아 고치는 디버깅 작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그 문제가 정말 ‘확실’한 것인지 반복해 확인해야 한다. 오류가 나면 보통 디버거(debugger)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메모리에 저장된 값을 추적해야 한다.

디버거는 내시경, 실시간 CT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간혹 황당한 일을 당하게 되는데, 이전의 오류가 추가 장치를 이용해서 확인하려고만 하면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불확정성의 원리 제안자인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Heisenberg)의 이름을 비틀어 하이젠버그(Heisenbug)라고 부른다.

즉 측정하려는 그 행위 자체가 시스템을 변화시켜 오류 측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특히 여러 계산 장치를 연결한 병렬 시스템에서 이런 오류는 흔치 않게 나타난다. 여러 장치 간의 협업에서 발생하는 시간 차이에 따른 미묘한 오류가 검사작업을 하는 동안에 그 차이가 지연되어 이전의 오류는 놀랍게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디버거를 끄고 정상적으로 돌려보면 오류는 어김없이 다시 나타난다. 하이젠버그를 겪어보지 못한 초보자들에게 이런 상황은 과학이 아니라 신앙이나 민간요법을 동원하고 싶은 생각까지도 들게 한다.

하이젠버그류의 오류는 일상에서도 볼 수 있다. 뭔가를 확인하기 위해 시스템에 개입하는 그 순간부터 시스템은 새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예를 들어 목욕물을 시험관에 담아서 막대 온도계로 측정하는 일을 생각해보자.

이때 시험관 속 온도계가 보여주는 온도는 그 안에 담긴 물의 온도가 아니라 온도계, 물, 시험관이 열역학적 평형을 이룬 시점의 온도 값이다. 시험관의 크기가 작을수록 실제 온도와의 차이는 커지게 된다. 병원 의사가 직접 재는 혈압이 집에서 잰 값보다 10 정도는 더 나온다는 ‘흰옷 증후군’도 하이젠버그의 변형이다.


정치·경제학적 하이젠버그 오류 사례도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아이디어 중에는 강바닥에서 긁어낸 골재를 팔아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골재 총량보다 무려 2.5배나 많은 골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면 가격 폭락과 관련 업체들의 도산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가격은 공급의 변수라는 초보적 진실을 애써 망각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지하철에도 하이젠버그가 존재한다.



지하철 노약자석은 우리네 미풍양속에 계몽적 제도를 더해 노약자들의 좀 더 많은 좌석 확보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노약자석을 비워두는 경향은 분명한데, 이 반작용으로 노약자석이 아닌 일반 좌석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일은 이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고 있다. 노약자 전용좌석은 일반석 승객들의 양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이전보다 줄여주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약자석이 비어 있어도 활용하지 않는 행동은 일반석에 대한 양보의 거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노약자석이 다 찬 경우이다. 덜한 노약자가 더한 노약자에게 전용석을 양보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사람은 일반석에서도 전용석에서도 자리를 얻지 못한다. 전용석 도입은 지하철 심리학을 새롭게 동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총선 후 집토끼, 산토끼 논쟁으로 정치권이 뜨겁다. 늘어난 산토끼를 자신의 공이라고 우기는 정치인이 있다.

그러나 산토끼를 더 넣기 위해서 토끼장 문을 여는 순간, 도리어 더 많은 집토끼들이 도망갈 수 있음으로 무시하는 일은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셈법이다. 교배조차 불가능한 산토끼의 추가 유입은 그때마다 집토끼들의 상태를 휘저어 놓는다. 또한 집토끼 중에서도 진실한 토끼만을 골라서 더 우대하는 정책은 집토끼의 산토끼화를 부추긴다.

국제정치도 다르지 않다. 특정 나라에서 수십조원을 벌어들이는 것이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국제적 역학관계를 변화시켜 그로 인한 손실도 반드시 발생한다. 대한민국만 돈 되는 일을 쏙쏙 빼먹을 수 있도록 내버려둘 맘 좋은 이웃나라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을 고정된 상수로 두는 정책과 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이젠버그에서 보듯이 전시성 탐방이나 관제행사를 통해서는 민생의 오류를 확인하기 어렵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또한 동시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조환규 |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과학오디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같은 이야기, 달리 듣지 않기 위해  (0) 2016.05.30
국산 GMO 승인 과정 ‘깜깜’  (0) 2016.05.22
하이젠버그, 노약자석, 집토끼 산토끼  (0) 2016.05.16
고통의 전문가  (0) 2016.05.08
에디슨과 양자물리학  (0) 2016.05.01
복제인간  (0) 2016.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