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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하루살이의 춤

하루살이의 군무(群舞)를 본 적이 있는가?

 

오랫동안 동서양 사람들의 눈에 고작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미물로 낙인찍힌 하루살이는 물 근처에 사는 까닭에 수서곤충으로 분류된다. 하루살이 애벌레는 맑고 차가운 민물에서 아가미로 숨을 쉬고 여러 차례 탈바꿈을 거듭하면서 몸집을 키운다. 이들 애벌레가 물을 박차고 나와 날개를 펼치는 순간은 대개 초여름날 어스름할 무렵이다. 하루살이가 날 저무는 시간을 노린 이유는 날개가 완전히 성숙하려면 하루를 더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포식자들의 눈을 피하는 한편 어둡고 적요한 틈을 타 날개 근육에 힘을 끌어모을 시간을 벌려는 의도다. 그러므로 이즈음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하루살이를 보거든 그 ‘하루’살이가 이름과 달리 험한 지상에서 간밤을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루살이는 순전히 번식을 위해 창공을 비상한다. 그런데 그들은 왜 혼자가 아니라 무리 지어 춤을 추는 것일까? 짐작하다시피 이는 암컷의 시선을 끄는 동시에 무리의 크기를 키워 새와 같은 포식자로부터 집단의 안전을 꾀하려는 수컷 하루살이의 전술이다. 암컷이 무리 사이를 지나가면 눈 좋은 수컷이 꼬리에 달린 긴 다리로 암컷을 낚아채고 잽싸게 정자를 전달한다. 정자를 받은 암컷은 물에 내려앉아 떠다니며 알 낳을 곳을 찾는다.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운 좋은 몇몇 암컷은 알을 투하하고 죽는다.

 

물속에서 ‘일 년 넘게’ 삶을 영위한 하루살이는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려는 단 하나의 목표를 달성한 뒤 바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오직 이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느라 하루살이는 먹지도 않는다. 아니 못 먹는다. 아예 입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성충(成蟲)들은 애벌레와 식단이 전혀 다르다. 뽕나무 이파리만을 먹는 누에가 자라 나방이 되면 곡기를 끊고 다만 짝을 찾아 알을 낳는다. 나비는 꿀을 탐하지만 애벌레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뭇잎을 사각댄다. 얼핏 보면 인간도 그렇다. 우리는 젖당이 주성분인 젖을 먹여 신생아 뇌세포 수를 네 배 늘리고 장딴지 근육을 키워 기어코 두 발로 걷게 만든다. 따라서 어른 사람이 송아지 젖을 먹는 행위는 생물학적 일탈이다. 이처럼 애벌레와 성충은 먹는 음식물도 다르지만 먹이를 얻는 장소도 떨어져 있다. 땅속에서 오래도록 썩은 풀을 삼키던 굼뜬 애벌레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나무둥치로 터전을 옮겨 살아가는 식이다. 다시 말하면 애벌레와 성충은 마치 별개의 종처럼 생긴 모습도 두드러지게 다른 데다 섭식 전략을 독립적으로 추구함으로써 곤충의 생태 지위를 넓혀온 것이다. 반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자궁이라는 협소한 공간과 암컷이 소화한 영양소로 운영되는 젖이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자신과 닮은 새끼들을 키우는 색다른 전술을 진화시켜왔다.

 

하루살이의 춤에서 또 하나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그들의 날개이다. 하루살이와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생명체는 잠자리이다. 물론 두 쌍의 온전한 날개를 가진 잠자리와 달리 하루살이는 뒷날개가 거의 퇴화하였거나 아주 작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날개를 발명한 최초의 곤충이 하루살이라는 점이다. 3억년을 유구히 날갯짓을 이어온 하루살이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화석이다. 양치식물이 하늘을 향해 몸통을 솟구치던 석탄기 습지에서 이파리 뒷면, 영양가 높은 식물 포자를 먹으려는 일념으로 하루살이가 날개를 처음 펼쳤을 때만 해도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곤충은 이후 공룡의 후손인 새가 나타날 때까지 거의 1억5000만년 넘게 지구의 제공권(制空權)을 온전히 장악했다.

 

잘 알려졌듯 곤충은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근육을 가득 채운 가슴 양옆으로는 두 쌍의 날개를, 아래로는 다리 세 쌍을 갖추면서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구가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림잡아 100만종이 훨씬 넘는 곤충은 머리에는 뇌와 입을, 가슴에는 운동기관을 그리고 배에는 근육 때문에 미처 자리 잡지 못했던 순환계와 호흡계 및 소화기관을 욱여넣은 몸통 설계를 완성했다. 다리 한 쌍을 변형시켜 먹잇감을 포획하는 사마귀 같은 곤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원형을 거의 바꾸지 않은 채 오늘날에 이르렀다.

 

행여 남산 순환도로를 걷다 계곡 물소리가 들리거든 하루살이 무리를 찾아보자. 삼차원 거리 두기와 현란한 무질서가 화음(和音) 하는 저 태곳적 춤사위를.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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