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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68년 5월.
한 남자가 배낭을 매고 홀로 알래스카의 호숫가 통나무집으로 걸어들어갑니다.
딱 1년만 자연 속에서 살아보자, 그런 마음이었죠.
그의 이름은 딕(리차드) 프로네키. 당시 나이는 52세였습니다.

그는 얼마 뒤부터 자신이 살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통나무를 슥슥 자르더니 뚝딱뚝딱. 아귀가 척척 들어맞게 손질합니다.  
해군 출신인 이 남자는 2차대전 때 목수로 활약했었다고 합니다. 
집을 짓고 벽난로를 만들고 굴뚝을 붙이는 데까지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나무로 숫가락까지 깎아내는 데서는 거의 감탄이 나옵니다.

손재주 기가 막힌 딕 프로네키(1916.05.04~2003.04.28) 출처: 위키피디아


웬만한 먹거리는 자급자족하지만, 가끔 친구가 필요한 물건들을 배달하러 옵니다.
외롭지만 그는 그가 만들어둔 눈길을 따라 동물들이 눈썰매 타는 것을 보면서
추운 겨울을 버텨냅니다. 
그리고 다시 얼음이 녹습니다.


그는 얼마동안 그곳에 살았을까요.


무려 30년입니다.


99년 속세로 나온 그는
자신의 자연 속 생활을 기록한 영화<Alone in the wilderness>가 호평을 받는 것을  
기쁜 모습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200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궁금하신 분을 위해 부분이나마 업어왔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YJKd0rkKss)


딕 프로네키는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자연 속 삶을 지향하는 아르케이디언(Arcadian)이었습니다.
자연주의자, 목가주의자로 불러도 되려나요.

환경보호주의자 중에서도 실용적인 자원활용과 과학기술을 지지하는
유틸리테리언(Utilitatian)
과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둘 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지만, 아르케이디언은 인간문명에 대한 거부감이 강합니다.
한국의 생명평화사상도 이 범주에 속합니다.



아르케이디언 운동은 산업혁명 시기 영국 지식인들의 반성에서 태동해 미국으로 옮겨갑니다. 
여기서 딕 프로네키의 걸출한 선배가 한 명 등장하는데요.
월든 호숫가에서 2년2개월을 보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입니다.

글재주 기가 막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07.12~1862.05.06) 출처: 위키피디아


1845~47년의 숲속 생활을 정리한 1854년작 <월든>을 읽어보신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세속적인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마하트마 간디와 킹 목사에게 사상적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후 아르케이디언 운동은 존 뮤어로 인해 전환점을 맞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과학자였던 뮤어는 
비영리 환경운동단체 시에라클럽을 만들어
요세미티와 세쿼이야를 국립공원으로 만들어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할아버지? 이래봬도 나 운동권이야" - 존 뮤어(1838.04.21~1914.12.24)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이후 발생한 식수문제로 인해 촉발된
요세미티의 헤치헤치댐을 건설을 둘러싼 수년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뮤어는 한때 친구였던 산림관리국장 기포드 핀초에게 결국 지고 맙니다.
댐 건설이 승인되고, 상심한 뮤어는 그 다음해 세상을 떠나죠. 그 때가 1914년입니다.



때를 같이 해 1차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대공황이 뒤를 따릅니다.
먹고 살기 바쁜데 환경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게 환경운동은 잠잠해집니다.

하지만 반세기 뒤,
1960년대 DDT의 위험성을 알린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아르케이디언들의 환경보호운동에도 다시 봄을 맞습니다.
자연보호에 관련한 법령들이 제정됐고, 1970년엔 지구의 날이 만들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아르케이디언 운동도 부작용은 있었습니다.
사람보다 자연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나무를 못 자르게 하려고 속에 말뚝을 박아 기계톱이 터지게 한다거나
스키장에 반대하느라 펜션에 불을 지른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에코테러리즘이 그 한 예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아무도 막지 않았다면, 자연을 훼손하는 속도는 지금보다 몇배는 빨랐을 겁니다.


어쨌건 아직도 이런 목가적 삶을 이어오고 있는 공동체들이 더러 있습니다.
Ka대학 M교수님에 따르면
미국학생들에게 딕 프로네키의 영화를 보여줬을 때
'저렇게 살아보겠다'는 손을 드는 사람이 절반은 된다고 합니다.
소로우의 영향인지 몰라도, 그런 향수를 가진 사람이 꽤 된다는군요.

공동체라면 그나마 외롭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느슨해지고 더 편하게 살고싶은 마음을 옆에서 채찍질해줄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혼자라면, 종교적 신념이나 자연에 대한 경외감 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요?
전기도 안 들어오는 오두막에서,
전화도 노트북도 컴퓨터도 없이
정말 자연과 벗하여 살 수 있으시겠습니까?


문득 저는 '자연스럽게'라는 말의 본래 뜻이 궁금해집니다.
인위적이지 않게, 라는 뜻입니까
본능적으로, 라는 뜻입니까?

임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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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