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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창의성의 오해와 줄세우기

입시는 중·고등학생이 있는 모든 대한민국 가정의 최대 관심사이다. 해마다 ‘물수능’ ‘불수능’으로 그 소감이 요란한데 교육당국에서는 앞으로도 쉬운 수능을 유지하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성적보다 창의성 중심의 면접평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창의적인 사람이 우대받는 사회가 되도록 입시부터 그 가치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그 창의성이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드러나는 것일까. 교과 성적은 나쁘지만 번뜩이는 창의성으로 충만한 학생을 잘 골라내야 한다는 말씀인데, 영재학생을 비롯한 올림피아드 대표단을 가르쳐 본 필자로서는 이런 의도에 회의적이다. <창의성의 미신>에서 버쿠스(Burkus)가 갈파했듯이 창의적 발상에 대한 보편적인 오해는 그것이 일상적인 노력과 무관하게 느닷없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에는 호사가들이 한몫한다. 뉴턴에게 만유인력을 일깨워준 사과나무 이야기가 그 좋은 예이다.

천재 모차르트를 보는 경쟁자 살리에리의 갈등을 담은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티브는 1815년 <일반 음악회보>에 실린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된다. 그 편지는 교육과 훈련이 불필요한 신의 아들 모차르트에 대한 극찬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이후 조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어린 모차르트가 아버지로부터 가혹할 정도의 훈련과 연습을 강요받은 사실, 모차르트의 작품에도 다양한 실패와 수많은 습작본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창의적 발상은 오랫동안 진행된 고민과 다양한 실패,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숙성되어 외부로 표현된 것이다. 모든 창의적 발상은 실질적으로는 엄청난 준비작업과 부단한 노력, 다양한 시도를 연료로 한다. 위대한 발명가인 제임스 다이슨(Dyson)은 진공청소기 한 대를 위해 5년간 약 5000대의 시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성공한 창의성이 얼마나 많은 그 하위단계의 일상적 노력과 연관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발명가들이 샤워나 목욕 중에 찬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중요한 것은 샤워가 아니다. 부단한 노력과 실패 없이 목욕탕에서 백일기도를 한들 창의적 생각은 결코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LK356-357P]가슴 뛰게 했던 영화와의 설레는 재회 사진_ 뉴원 제공




창의성이 경쟁에서 평가 기준이 되면 여러 현실적 문제가 발생한다. 첫 번째 문제는 창의성을 어떤 방법으로 측정하는가이다. 만화영화로 한 시대를 연 월트 디즈니는 1919년 캔자스의 신문사에 만화가로 입사했지만 곧 해고를 당하게 된다. 이유는 “상상력과 쓸 만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평가되었기 때문. 어떤 사람의 창의성 여부는 평가자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 흔한 실수 중 하나는 엉뚱하고 기발한 것을 창의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현실 또는 과학적 정설을 무시하는 황당함을 창의적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환상과 망상을 분리해 낼 수 있어야만 문제 해결용 현실적 창의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입시같이 극심한 경쟁에서 창의성에 점수를 주고 줄을 세우는, 즉 등수를 매기는 데 있다.

이는 펠레와 마라도나, 메시 중에서 1등 축구선수를 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주관적 기준을 사회적 경쟁에 사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한 학부모가 거칠게 항의했다. “답은 틀렸지만 그 코드가 창의적이면 점수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창의성은 평가하지 않는가?” 부모의 아쉬움은 이해되지만 이런 식의 창의성은 특히 과학과 공학에 유해하다. 원자로 제어에 이런 식의 창의성은 곤란하다. 창의성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식의 느슨한 과학관, 창의관은 비판적 사고와 의사 결정 능력을 저하시킨다.

변별력이 충분한 수능 문제는 그 자체로 매우 우수한, 공정한 창의성 평가 모형이 될 수 있다.

기본 교과에 충실한 기초교육보다 단발성 기발함이나 측정하기도 힘든 창의력이 더 우월하다고 부추기는 것은 과학 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학현장에서 창의성만큼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덕목은 끈기와 소통 능력이다. 다양한 기초 소양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작금의 창의성 우대 풍토가 근본 없는 한탕주의를 부를까 걱정된다.



조환규 |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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