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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진실한 사람, 브래스의 역설

진실한 사람 찾기’ 대소동이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진실하다는 평가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필자로서 이번 대소동의 결말이 매우 궁금해진다. 한편 미혼의 청춘남녀 연애 공간에서는 어중간한 진실보다 도리어 ‘나쁜 남자’나 ‘차가운 도시녀’가 도리어 선호된다고 하니 최선의 전략은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가장 흔한 경쟁은 자동차 운전일 것이다. 목적지에 빨리,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 도로 위 모든 운전자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하게 된다. 어떤 도로로 갈 것인가, 차선을 바꿔 염치없이 끼어들 것인가, 얌체 운전자들에게 걸쭉한 욕지거리를 한 바가지 끼얹을 것인가, 운전자들은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그 전략을 고민하게 된다. 교통정체의 완화에는 도로 확보가 가장 직관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1조5000억원의 엄청난 비용으로 만든 1%의 추가 도로가 체증 해결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숨어 있는 진짜 문제는 도로가 더 늘어나면 체증이 도리어 더 증가한다는 역설적 상황의 발생이다. 독일 수학자 디트리히 브래스(Dietrich Braess)가 제시한 이 역설은 운전자들의 개별적 최선이 전체적 상황의 악화로 변질됨을 경고하고 있다. 기존의 도로망에 모두가 원한 지름길을 추가하면 이 길로 거의 모든 운전자들이 밀려들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더한 체증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개별 이기심의 총합이 시스템의 파국으로 종결되는 것이다.

역으로 체증을 완화시키려면 몇 도로를 도리어 제거해 운전자가 어떤 길을 선택해도 이득이 균등한 파레토 최적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실제 1990년 뉴욕시의 행사 기간에 지름길 중앙 도로를 폐쇄한 것이나, 2003년 청계천 공사 중에 6차선 고가도로를 철거해 교통체증을 개선한 것은 브래스 역설 해소의 좋은 사례이다.



브래스 역설이 일어나는 이유는 각 개체 모두가 동일한 최적 전략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전략과 상관없이 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 또는 이기적인 선택을 할 경우, 이들이 합쳐지면서 전혀 기대하지 않은 최악의 결과가 나타난다. 이 역설은 공유지의 비극과도 궤를 같이한다. 각 가정에서 쓰레기를 값싸게 버리는 최적의 전략, 가장 돈이 적게 드는 방법은 마을 근처 공터에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함으로써 마을은 결국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다. 비슷한 예로 취업용 자기소개서 모형이 있다. 취업 준비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자료를 수집해 최고의 소개 글을 준비한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찾은 최고의 글은 사실 가장 위험한 글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단 하나의 최고 자기소개서에 기초해 쓴 글들은 결국 비슷비슷한 내용이 되고 이 때문에 도리어 가장 식상하고 상투적인 글로 추락한다. 성명사주학적으로 최고로 뽑힌 이름들 역시 현실에서는 동명이인의 불편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1960~1970년대에 유행한 ‘영호’ ‘명호’ ‘명숙’ ‘영숙’이 이런 예가 아닐까 한다.

우리 사회는 행불행의 원인을 개인적 노력의 결과로 해석하려고 한다. 특히 이런 계산법은 보수화된 사회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취업을 못한 것도, 결혼을 못한 것도 개인적 노력의 부족으로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고립된 개별 노력은 브래스의 역설이 말하듯이 전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모두가 한 가지 수단에 몰려들수록 성공으로 가는 ‘도로’는 더 막히고 결국은 아무도 빠져나가지도 못하는 정체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공동의 이익에 대한 양보가 없는 사회의 미래는 뻔하다.

1종의 올바른 역사, 1종의 진실한 사람이 강요되는 상황은 파시즘의 전주곡이다. 매트 리들리의 책 <붉은 여왕>이 밝히듯이 다양함은 최고의 안전장치이자 방어체제이다. 불편하고 소란스러운 유성생식이 일사불란한 무성생식보다 왜 무자비한 환경의 공격에 유리한지를 <붉은 여왕>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회가 건강해지고 안정되려면 평등하고 다양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적, 이념적 정체상황을 빠져나올 방법을 브래스 역설은 잘 말해주고 있다.


조환규 |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