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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종이접기의 과학

추억의 종이접기 아저씨 등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 종이만으로도 즐거운 놀이와 교육이 될 수 있음을 방송은 잘 보여주고 있다. 좋은 놀이기구는 간결하다. 놀이기구가 단순할수록 참가자의 상상력은 더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어린아이들의 창의성 자극에는 종이나 찰흙이 컴퓨터 게임보다 더 좋다고 한다.

종이접기의 역사는 종이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문헌에 의하면 중국 송나라 때부터 장례식 제물을 종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망자가 가지고 갈 기물을 태워 연기로 날려 보내기에 종이는 가장 적합한 재료일 것이다.

종이접기를 일회성 행사 용품이 아니라 문화로 발전시킨 것은 일본이다. 종이와 함께 일본으로 전해진 종이 공예품들은 결혼식 등의 행사용 장식물로 사용되다가 이후 에도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규방 문화로 발전하게 된다. 기록의 민족인 일본은 이때부터 종이접기 기술을 체계화하여 서적으로 남기게 된다.

유럽에서는 17세기부터 포크와 나이프 깔개를 위한 멋내기용 냅킨으로 종이접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접시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고 보편화되면서 포크와 나이프는 종이가 아닌 접시에 놓이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유럽식 종이접기는 사라진다. 이후 종이접기는 일본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전승되어 이젠 일본어인 오리가미(折り紙 , origami)가 국제표준이 되었다.

이전까지 개인화된 기예에 불과한 종이접기는 아키라 요시자와(1911-2005)에 의해서 체계화되고, 이후 물리학자 로버트 랑(Robert Lang), 전산학자인 에릭 드멘(Erik Demaine)에 의해서 계산과학의 한 갈래로 자리 잡게 된다.

종이접기는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하는 유클리드 기하학보다 유연하고 강력하다. 유클리드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임의의 각 3등분도 종이접기로는 가능하다. 또한 작도불능 문제인 임의 정육면체를 2배로 늘이는 작업도 종이로 가능하다.

종이 한 장으로 덧셈 뺄셈은 물론 곱셈과 나눗셈도 가능하다. 그리고 하나의 몸통에 다리가 달린 어떤 동물도 한 장의 종이로, 칼이나 풀 없이 접어 만들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종이만으로 얼마나 다양한 동물과 곤충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인터넷에서 볼 때마다 감탄은 절로 나온다.

현대공학에서 종이접기 기술의 응용은 눈부시다. 최초로 알려진 종이접기의 성공사례는 인공위성에 설치할 태양전지판이다. 1995년 일본 천체물리학자 미우라 교수가 설계한 이 접이식 태양전지판은 특별한 부가 장치 없이 단순히 양끝을 당겨주는 것만으로도 전지판이 활짝 펴진다.



태양계 밖의 외계행성을 찾아낼 코로(corot) 인공위성이 지구 궤도에서 태양전지판을 펼친 상상도._경향DB



인공위성에 탑재될 장치의 제일 중요한 덕목은 가벼움이며, 태양전지판을 편 채로 위성을 날려 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마술과 같은 접이식 전지판은 과학자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태양전지 단위 셀의 이음새마다 소형모터를 설치해서 기계적으로 펼친다면 무게는 물론이고 고장의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지금은 2m 남짓 크기의 장치를 지름 28m의 원형 전지판으로 펼치는 수준에 있다.

종이접기 기술은 극소 의료분야에서 가장 빛을 보고 있다. 손상된 망막세포를 대체할 감광판은 안구 안에서 넓게 펼쳐지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그 판을 편 채 넣으려면 눈을 크게 절개해야 하는데 이런 안구 수술은 매우 위험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감광판을 절묘하게 접고 꼬아 가늘게 만들어 안구로 넣은 뒤 전기 자극으로 단번에 펼치는 기술이 연구 중에 있다.

좁아진 혈관을 넓혀주는 시술인 스텐트(stent)에도 종이접기가 응용되고 있다. 스텐트는 3배의 크기의 원통으로 펼쳐진다. 기계공학자들은 트랜스포머와 같은 변형 로봇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간단한 전기 자극만으로 면이 서로 접히고 결합하여 환경에 따라 새로운 로봇으로 변하는 것은 미래의 기술이 될 것이다. 특히 찰나의 시간에 꼬임 없이 골고루 터져야 하는 에어백 장비에는 종이접기 과학이 핵심이다.

일본의 노벨상, 과학상 관련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일본의 오리가미 문화가 생각난다. 유행만 추종하는 재빠른 2등 전략으로는 노벨상 수상은 요원할 것이다.

과학자들이 유행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오랫동안 하나의 주제에 천착할 수 있는 과학정책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점이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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