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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인간은 왜 개와의 평화협정 위반할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

“개껍닥 갖다 고구마 줘라”라는 엉터리 말에도 나는 소쿠리를 들고 봉당 개밥그릇으로 향하곤 했다. 어릴 적 일이다. 두 귀가 늘어지고 반가우면 등 뒤로 말린 꼬리를 부산히 흔들며 다가서던 개와 나는 마당이 좁도록 뛰며 종일 함께 놀았다. 날이 저물어 서녘 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뜨면 종지에 약지와 중지를 넣고 개밥이 너무 차거나 뜨겁지 않은지 혹은 간이 맞는지 확인하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학교 다녀온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그 황구를 마지막으로 지금껏 개와 다시 인연을 잇지 못했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가축화되었다는 개의 숫자는 계속 늘어서 현재는 10억마리가 넘는다. 인구 1000명당 약 130마리에 해당하는 값이다. 개의 분포는 지역적으로도 차이가 크다. 남북 아메리카 사람들은 1000명당 250~299마리의 개를 키운다. 뜻밖으로 개가 가장 많은 곳은 필리핀이며 인구의 30%가 넘는다. 한국에는 평균보다 적은 1000명당 100마리 이하의 개가 살지만 그 수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인류의 오랜 친구라 불리는 개는 특정 집단의 문화나 종교에 따라 호불호가 달라지기도 한다. 예컨대 이슬람 국민은 개를 불결한 동물로 여겨 좀체 친해지려 들지 않는다. 개를 어찌 생각하느냐에 따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흔히 우리는 조끼를 입은 반려견을 떠올리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개의 4분의 3은 주인이 있든 없든 길거리를 떠도는 신세다. 북한산 최상위 포식자인 개는 순식간에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본디 개가 늑대이기 때문이다. 통계로만 보면 개는 모기, 사람, 뱀에 이어 4번째로 사람을 많이 죽이는 동물이 되었다.

 

분류학 창시자 린네는 가축화된 개를 늑대와 구분하고 서로 다른 종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개 유전자는 아시아 회색늑대의 그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주변에서 자주 보는 개의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데도 그렇다. 인간 의지가 강하게 투영된 선택압력은, 유전자는 건드리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생명체의 겉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다. 꽃을 식용으로 하는 브로콜리가 양배추와 유전적 사촌인 것도 인간의 간섭 탓이다. 러시아 생물학자 드미트리 벨라예프는 시베리아 여우 농장에서 ‘길들임’을 기준으로 사람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 여우만을 선별하고 불과 수십세대 만에 순종적인 개를 만들었다. 행동을 기준으로 선택을 거듭하면서 야생성이 현저히 줄어든 ‘여우 개’를 얻게 된 것이다.

 

핀란드 투르쿠 대학 탈만 박사는 뼈 화석과 유전체 분석을 토대로 개가 가축화된 때를 약 3만2000~1만8000년 전으로 추정했다. 어떤 고생물학자들은 그 시기를 4만년 전으로 생각한다. 논란은 여전하지만 어쨌든 우리 조상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훨씬 전에 개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를 떠나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에 당도한 초기 인류가 맞닥뜨린 것은 이미 유럽에 터를 닦은 네안데르탈인과 북반구 전체에 걸쳐 넓은 세력권을 확보한 늑대 무리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늑대와 힘을 합친 인류는 춥고 거친 환경에서 사냥 기술을 터득한 뒤 강인한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생존경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우호적인 데다 사교적인 늑대가 인간에게 손을 내밀어 기꺼이 개가 된 덕이다.

인간처럼 사회적 동물이지만 개는 빼어난 신체적 능력을 지닌다. 시베리아에서 썰매를 끄는 개들은 시속 약 9㎞ 속도로 하루에 약 200리를 너끈히 주파하며 며칠 동안 끄떡없이 달린다. 빠르기와 지구력에서 개를 따라올 동물은 거의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개들의 운동능력마저 북돋워 사냥개로도, 순록을 지키는 일꾼으로도 쓰고 있다. 바로 개의 이런 특성이 한 종으로서 인간이 번성하는 데 한몫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학자마다 견해가 약간 다르지만 가축화는 ‘긴 시간에 걸쳐 두 생명체가 서로 도우며 생태학적 공생 관계를 발전’시키는 행위라고 한다.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개들은 생리학적으로 스트레스를 확 줄였다. 지붕 아래로 들어온 개는 안전한 보금자리와 음식물을 더는 걱정하지 않는다. 시골 개는 고구마밭은 헤집는 멧돼지를 쫓고 도시 개는 외로운 사람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인간과 개의 평화협정은 서로에게 선물이었다. 우리는 자주 이 협정을 위반한다. 미끄러운 마룻바닥은 개들의 근육을 비웃고 공장제 사료는 비만 개를 양산한다. 떠돌거나 좁고 더러운 철창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개의 스트레스 수치는 얼마나 높을까?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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