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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반상 결투’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의 대결이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유럽 챔피언 판 후이를 5 대 0으로 이긴 알파고의 기세가 대단하다. 만일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으면 기계가 인간을 이성적으로도 제압한 문명사적 사건이라는 선전은 좀 과한 것이다. 초절정 고수인 외계인 이세돌이나, 1202여대의 컴퓨터로 구성된 알파고 모두 “보통의” 인간이나 “보통의” 컴퓨터는 아니기 때문에, 이번 대결 결과가 어떠하든 우리의 삶에서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바둑과 같은 완전정보 게임의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다. 뭔가를 숨기는 카드놀이나 무작위성에 기초한 윷놀이와 바둑은 전혀 다른 게임이다. 바둑에서 가능한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입자수와 비슷한 정도라고 한다. 바둑판의 크기를 4분의 1로 줄인다면 지금의 컴퓨터 기술로 완전한 승패 계산이 가능하다. 만일 양자컴퓨터가 보편화되어 가능한 경우를 모두 계산할 수 있다면 바둑의 신비는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바둑 시합에서 모든 가능한 수가 아니라 그중 승패에 관련되는 몇 가지 수만을 고려한다. 이 수를 빨리 선별하고, 깊게 읽을수록 고수로 대접을 받는다. 혹자는 이것을 인간만이 가진 직관이라고 말하는데, 이 직관은 실은 학습에 의해서 두뇌 심층구조에 각인된 정보 패턴의 일종이다.

알파고의 핵심은 바둑고수들의 직관을 매끄럽게 흉내 내는 능력이다. 판 후이와의 시합을 분석한 전문기사에 의하면 알파고의 기풍은 세력과 실리의 중도를 취하는 일본식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일본 바둑 전성기의 기보가 알파고의 기본 데이터로 입력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알파고의 장점은 판이 대략 짜인 이후인 종반 수읽기나 사활 분석 능력이다. 경우의 수가 수억 이하면 알파고의 국지적 수읽기에는 실수가 없다. 판 후이와 같은 인간 바둑의 약점인 착각과 실수가 알파고엔 결코 없다.

필자가 보는 알파고의 최고 장점은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냉혹함이 아닐까 싶다.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 딥 블루에 패한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도 이런 냉혈한 같은 느낌이 시합 중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알파고가 기존 기보를 이용한 수백만번의 연습 시합으로 기력을 스스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그 과정을 통하여 신포석이 나왔거나 새로운 묘수가 나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만일 이렇게 자가 학습을 통한 기력향상이 가능하다면 이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계산을 줄이기 위해서 이전 기보를 확률적으로 변형하는 것 자체가 창의적인 수순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도 있다. 비슷한 예로 기존 판례를 이용한 인공지능 판결 시스템은 보수적 판례를 개선하기보다는 그것을 도리어 강화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비슷한 기력의 동호인끼리 아무리 많은 시합을 해도 기력이 썩 나아지지 않는 과적합(overfitting) 문제를 알파고가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이번 이세돌과의 시합을 위하여 알파고는 더 많은 CPU를 연결할 것이며 최근 이세돌이 패한 기보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새로운 패턴을 추가할 것이다. 그런데 이 튜닝 과정에는 전문 기사와 같은 사람의 개입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결국 알파고도 완전한 자율적 학습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경우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면 예의 차원에서 돌을 던지는데, 과연 알파고에 이런 “예의범절”이 탑재되어 있을지도 궁금하다. 승부가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실수를 기대하며 끝까지 버티는 구차한 집착(?)을 알파고가 보이지 않을까 싶다. 알파고의 콧대를 완전히 꺾어 놓겠다는 과욕만 부리지 않는다면 이세돌의 낙승이 기대된다. 국외 도박 사이트에서는 약 2 대 1로 이세돌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바둑에서 고수의 벽이 얼마나 높고 단단한지를 경험해보지 못한 서양인들의 소망이 이 베팅 결과에서 잘 읽혀진다.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넘어 초지능으로 발전하여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해킹으로 인한 지능시스템의 오작동, 그리고 자본가나 권력자들의 오남용이 인공지능의 보편적, 현실적 위험이 될 수 있다. 결국 미래 사회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안정적 공생관계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


조환규 |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