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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유월을 안고 사월에 피는 꽃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모란꽃이 피었다. 이제 곡우(穀雨)를 지나 4월 하순에 접어든다. 봄비 덕에 겨울을 넘긴 보리가 푸르름을 더하고 그루터기 남은 논에 물이 찰 즈음이다. 한 열흘 더 지나면 여름에 들고(立夏) 소나무는 연둣빛 새 가지를 한 뼘 더 키울 게다. 시나브로 푸르게 어두워질 한 해의 익숙한 모습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시인의 노랫말에 ‘유월을 안고’ 핀다는 모란이 4월에 꽃을 피웠다. 몇 해 전 학회 참석차 부산의 한 대학을 찾았을 때도 4월에 핀 모란꽃을 보았으니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삼수갑산 가까운 북녘 아닌 경남 마산 출신, 김용호의 시집 <푸른 별>이 출간된 1956년 당시 6월에 피던 모란이 70년이 지나지 않아 4월에 꽃을 피운다? 그렇다면 대체 모란의 봄은 어디로 갔을까?

 

최근 들어 민둥산에 나무를 심자고 제정한 식목일을 3월로 옮겨야 한다는 뉴스가 등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요즘은 절기에 맞춰 꽃 피는 순서가 없어졌노라고 말한다. 바람에 봄 뜻이 일자 우선 산수유와 회양목이 오련한 꽃을 피우고 3월 말 들며 벚꽃이 피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고 이내 수수꽃다리와 이팝나무꽃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지도 한참이 지났다. 직접 목격하진 않았지만 등나무가 꽃을 주렁주렁 내리고 있는 사진도 보았다. 홍릉수목원 식물군의 꽃 피는 시기를 조사한 산림청 임업연구원들은 1966년에 4.8도였던 3월의 평균 기온이 2002년에는 7.6도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확실히 기온이 올라가면서 예년보다 더 일찍 꽃이 피는 것 같다. 과연 이 말은 사실일까? 그렇다면 그런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2008년 미국과학원 회보에 ‘기후변화로 소로의 숲에서 사라진 식물 계통’이란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그때는 공교롭게도 우리 식구가 ‘소로의 숲’ 근처로 이사 간 해이다. 미국 동북부 보스턴에서 북서쪽으로 약 30㎞ 떨어진 콩코드라는 작은 도시가 저 논문에 등장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향이다. 1817년 연필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가족과 함께 잠시 사업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곧 윌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 콩코드 사람들은 자신들 동네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는 것을 결사코 반대했고 손바느질로 만든 값비싼 인형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소로는 1852년부터 약 6년에 걸쳐 콩코드에 서식하는 식물 500여종의 개화일을 기록했다. 얼마 뒤 식물학자 알프레드 호스머도 친구인 소로가 했던 일을 무려 16년 동안 되풀이했다. 그들의 뒤를 이어 콩코드 생태계를 조사한 하버드 대학 찰스 데이비스는 19세기 중반과 비교하여 그곳의 연평균 기온이 약 2.4도 올랐다고 말했다. 기온 상승에 따라 꽃 피는 시기가 빨라진 종도 있었지만 아예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늦어진 종들도 적지 않았다. 꽃이 피면 꽃가루를 나르는 곤충이나 벌레들도 동시에 등장해야 식물의 번식 성공도가 보장된다. 이는 자명한 이치다.

 

콩코드 지역의 약 60%가 개발되지 않은 채 온전한 자연 상태를 보전하고 있지만 단지 기온이 상승했다는 이유로 소로의 시대 이후 약 150년 동안 27%의 식물군이 사라졌다. 게다가 약 36%의 식물군은 수가 현저히 줄어서 문자 그대로 절멸 상태를 면치 못했다.

 

놀라운 일이다. 매년 가을 윌든 호수길을 따라 산책을 하곤 했던 나는 바닥이 드러나 보이도록 깨끗한 물과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보며 감탄했을지언정 소로처럼 산업혁명의 폐해가 지구를 엄습하고 있다는 걱정이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콩코드와 로키산맥의 생태계를 연구한 생물학자들은 대도시와 달리 겉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자연마저도 속으로는 사뭇 아프다는 사실을 숫자로 증명했다.

 

평균 기온은 올랐지만 변동 폭은 더욱 커져서 포도가 냉해를 입는다. 꽃은 일찍 피고 식물은 꿀과 향 분자를 적게 만든다. 장수말벌의 유충과 북극의 곰, 호남평야의 벼, 모두가 힘들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기온이 변하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모란에게도 인류에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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