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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우리 엄마 젖을 다오

 

북한강 중간께의 청평에는 안전 유원지가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처음 만나는 집은, 낮에는 음식점이고 밤에는 사이키 조명 아래 춤을 출 만한 공간도 있었다. 그러니 종업원 중에는 덩치 큰 친구도 있었는데, 듣기로는 씨름 선수 출신이라고 했다. 오가는 손조차 뜸한, 비 오는 어느 날 나는 그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참외 줄랴 참외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애잔한 기타 선율과 함께 오래전에 들었던 낮은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아마도 그는 수유(lactation)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애착 또는 접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눈을 마주하며 정온동물끼리 체온을 나누는 일이 사회적 결속력을 다지는 강력한 수단이었음은 우리 유전자에도 새겨져 있다. 해마다 오월이 돌아오는 걸 보면.

피부 분비물 형태로 젖이 등장한 지는 3억년도 더 되었다. 진화학자들은 알을 낳던 포유동물 조상이 알껍데기가 마르지 않게 뿌려주던 액체가 젖의 시초라고 본다. 그러다 세균이나 곰팡이에 맞설 화합물도 만들어 젖에 섞기도 했을 것이다. 모두 현재의 포유동물 젖을 분석해서 추론한 결과다. 하지만 새끼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크기를 키울 영양소 보급이 젖의 핵심 기능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비둘기나 플라멩코도 식도에서 우유 비슷한 물질로 새끼를 키우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젖은 새끼들만 먹어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갓 태어난 신생아들은 젖당을 소화해서 소장에서 흡수할 수 있다. 포도당과 갈락토스 두 단당류로 구성된 젖당을 어른들은 대개 소화하지 못한다. 대여섯 살이 되면 젖당 소화효소가 더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화되지 않은 젖을 배불리 먹은 대장 세균은 메탄과 수소 기체를 잔뜩 만든다. 배가 더부룩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신생아들은 이도 없다. 젖이 아니라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저 생명체를 어찌 키우겠는가? 일 년이 지나야 간신히 몇 개 나오는 유치는 종류도 다양하지 못해서 거친 음식물은 씹지도 못한다. 새끼를 키우는 암컷은 영양소를 모아 자신의 조직에 저장한 다음 나중에 안전한 곳에서 젖을 먹일 수 있게 진화했다. 토끼는 굴에서 박쥐는 동굴에서, 그리고 북극곰은 얼음장 위에서 새끼에게만 오롯이 음식물을 제공한다. 그러니 젖을 먹이는 동안 암컷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저장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다. 몸무게 100t에 육박하는 대왕고래 암컷은 산소가 많아서 먹을 것 천지인 극지방 차가운 바다에서 잔뜩 먹고 지방을 비축한 다음 따뜻한 적도에 와서 새끼를 낳는다. 이들은 하루 약 220㎏의 젖을 6개월 동안 먹인다. 어른 200명이 일 년간 먹는 양이다.

종에 따라 젖을 먹이는 시간도 천차만별이다. 물범은 나흘 동안 젖을 먹여 조숙성인 새끼의 무게를 두 배로 늘린다. 사람이나 코끼리는 몇 년에 걸쳐 수유를 이어가기도 한다. 생물학적 현상의 상당 부분을 사회적인 행위로 바꿔치기한 인간의 사례는 여기서 더 거론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쨌든 포유동물 암컷은 매일 자신이 필요한 양보다 약 44~300%의 에너지를 더 소모해야 한다. 그것도 젖 먹이는 내내.

젖이 알 낳는 동물의 노른자를 대체했음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중생대 포유동물은 왜 젖을 분비하도록 피부세포를 변형시켜야만 했을까?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공룡이 활보하던 시절 우리 포유류 조상의 몸집은 한참이나 작아 다 커봤자 몇 그램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야행성 포유류는 정온동물이기도 했다. 몸집이 작으면 피부를 통해 빠져나가는 열 손실이 엄청나게 크다. 수영하던 어린이가 금방 오돌오돌 떠는 이유도 체중에 비해 표면적 비율이 크기 때문이다. 초기 포유류는 공룡의 발을 피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열량도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노른자 대신 일정 기간 꾸준히 필요한 에너지원이 절실했다는 뜻이다. 그게 젖이다. 따라서 포유류 조상은 노른자의 크기를 줄이고 암컷이 힘들여 만든 젖으로 2억년을 더 버텼다. 마침내 태반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8500만년 전의 일이다. 알을 태반으로 집어넣은 포유동물은 몸집을 키워 공룡이 비운 지구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오월은 실로 젖과 태반의 달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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