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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왕으로 유명한 에디슨은 평소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서도 수많은 발명을 해낸 자신을 무척 자랑스러워했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이론에만 밝을 뿐이라고 폄하했다. 이런 에디슨이 양자물리학처럼 제대로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이론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은 다소 의외지만 시사적이다.

양자물리학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흑체복사 실험이다. 밤에 이불을 덮고 자면 따듯한 이유는 몸에서 나오는 복사열이 이불에 갇혀 몸을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정한 온도를 가진 물체는 모두 특정한 방식으로 복사열을 내는데 흑체는 이런 과정을 이론적으로 엄밀하게 이해하기 위해 키르히호프가 1860년에 제안한 개념이다. 실제 존재하는 어떤 물체도 완벽하게 흑체일 수는 없지만 많은 실제 사물이 흑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근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블랙홀은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에 가까운 흑체로 여겨진다.

흑체복사에 대한 정밀한 특정은 1887년 설립된 독일의 제국물리기술연구소(PTR)에서 이루어졌다. 측정 결과가 기존 이론에 맞지 않자 당시 그곳에서 근무하던 젊은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흑체가 에너지를 일정한 크기의 알갱이로만 방출한다고 가정해 이를 설명했다. 물론 이 가정은 실험 결과에 맞추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제안된 것이었고 플랑크는 이 가정을 결국에는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보어를 중심으로 결집한 새로운 세대의 젊은 물리학자들은 이런 플랑크의 기대를 비웃으며 새로운 양자물리학을 개척했다.

여기까지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표준적’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왜 PTR의 물리학자들이 일정한 온도의 물체가 방출하는 에너지를 그토록 정밀하게 재는 실험에 열심이었는지에 대한 답은 없다.양자물리학을 공부할 때 필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이 학문적 ‘호기심’에서 이런 측정을 한 것이라 짐작했다. 과학은 호기심에서 출발한다고 하지 않던가?


다국적 산업용 소프트웨어 제조회사 지멘스 인더스트리소프트웨어의 서울 강남구 본사_경향DB


양자물리학의 기원을 제공한 흑체복사 실험은 실은 당시 독일 사회가 절실하게 요구한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었고, 실험 결과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이 중요하게 간주된 경제적, 산업적 이유가 있었다. 당시 전기공업을 선도하던 독일은 에디슨이 미국에서 백열등을 발명하자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적 표준 개발이 시급히 필요했다. 이에 대한 이론적 이해는 맥스웰의 전자기학에 의해 어느 정도 기초가 놓여 있었지만, 그렇다고 PTR의 물리학자들이 ‘응용과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흑체복사 실험이나 그에 대한 설명 모두 당시 물리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최첨단의 기초과학이었다. 사실 PTR은 정확히 이런 목적, 즉 독일의 산업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 자체로는 돈이 되지 않기에 민간 기업연구소가 수행하기는 어려운 기초과학 연구를 위해 설립됐다.

양자물리학이 지멘스 회사의 상업적 이익과 무관하게 탄생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 역시 특정한 산업적 목적을 위해 수행된 연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양자물리학 현상은 구태여 그 현상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흑체복사처럼 극한적 상황에 대한 정밀한 측정 노력을 위해 상당한 자원이 투여된 연구가 이루어져야만 관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연구자원의 집중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기초과학 연구의 힘을 인식한 미국이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쥐면서 연구할 만한 주제를 마음껏 연구해보라는 식의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된 20세기 중반에야 가능했을 것이다.

교훈은 간단하고도 미묘하다. 과학연구는 사회적 지원과 분리된 채 이해될 수 없다. 지극히 추상적으로 보이는 양자물리학조차 산업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연구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연구를 순수와 응용으로 나누고 순수연구만이 ‘진정한’ 과학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낭만주의적 과학관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모든 과학연구마다 그것이 어떻게 응용되어 돈을 벌어다 줄 것인지를 정당화해야만 연구비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생각이 올바른 것도 아니다. 전류의 세기와 빛의 세기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밀·측정하려던 산업적 이해관계가 양자물리학을 낳은 것은 사실이지만 백열등을 보다 잘 만들려던 사람들은 결코 트랜지스터나 휴대전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식의 요구는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발휘되는 과학적 창의성을 억누를 뿐이다. 명심해야 할 사실은, 과학은 늘 사회 안에 있지만 사회를 뛰어넘을 힘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상욱 | 한양대철학과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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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