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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 한양대교수·철학

2010년 8월 하버드대학교는 학계와 일반인 모두에게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같은 대학 심리학과의 스타교수 마크 하우저가 연구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하버드대는 3년에 걸친 조사 끝에 하우저 교수가 8건의 연구 부정행위에 결정적 책임이 있다고 결론내렸다. 하우저 교수의 연구는 연방자금의 지원도 받았기에 미연방 연구진실성국도 독자적인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우저 교수는 몇몇 ‘실수’를 인정하고 이로 인해 초래된 불행한 사태에 유감을 표명했지만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휴직을 신청했다.

하우저 교수는 인지적 진화과정을 비교영장류학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세계적 석학이며 뉴욕타임스나 대중저술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학자였기에 국제적 파장은 더욱 컸다. 
 
하우저 교수는 영장류와 인간의 인지능력에 대한 비교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아왔다. 특히 1995년 타마린 원숭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알아본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자기인식과 같은 고등 정신능력이 영장류 전체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관련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연구에 대해서도 몇몇 연구자들은 의문을 제기하였다. 타마린 원숭이의 행동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검토한 다른 연구자 중에는 원숭이가 단지 해독하기 어려운 몸짓을 하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번에 문제가 된 2002년 논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하우저 교수는 이 논문에서 타마린 원숭이가 간단한 규칙을 학습할 수 있음을 관찰했다고 보고했는데, 함께 실험한 대학원생 중 일부는 하우저 교수가 행동을 코드화하는 데 잘못된 방식을 적용했으며 행동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라고 종용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하우저 교수와 원숭이의 행동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쟁을 벌인 공동연구원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하우저 교수는 평소 다른 연구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규칙배우기 패턴을 동물 행동에서 읽어내는 재주로 유명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패턴을 발견하는 그의 능력을 두고 ‘하우저 효과’라는 명칭까지 생겼을 정도다. 행동을 해석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이 부정행위의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하우저 교수는 문제가 된 2002년 논문은 철회하고 다른 논문은 연구 부정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자료를 새 자료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수정해서 출간했다. 최종 판단은 미연방 조사결과를 기다려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하우저 교수가 타마린 원숭이의 행동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인간의 행동을 염두에 두고 동물의 행동을 비교연구하다보면 성실한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자료를 놓고 해석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행동’이고 어떤 것이 무의미한 ‘몸짓’인지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동의 ‘의미’에 대해 연구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국 유능한 연구자는 어떤 것이 행동이고 그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판단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판단’이 비교행동학적 연구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유전학의 창시자로 존경받는 멘델의 완두콩 실험결과는 너무나 깔끔해서 20세기 초 조작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았다. 현대의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실험해도 콩깍지가 주름진 것인지, 매끈한 것인지 애매한 경우가 자주 나오는데 야외에서 별 통제 없이 키운 완두콩들이 멘델 법칙에 너무도 잘 맞는 결과를 산출한 것이다. 

멘델의 지적 정직성을 의심하기 어려웠던 당시 학자들은 스승의 법칙을 입증하기 위해 몰래 애매한 콩줄기를 알아서 제거한 무명의 조수를 상상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엄밀한 과학의 전형으로 생각되는 물리학에서도 발생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개기일식 때 별빛이 얼마나 휘는지를 관찰한 결과로 입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관찰결과는 뉴턴역학의 예측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 중간에 흩뿌려져 있었고, 에딩턴 경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신중한 선택을 통해 관찰결과가 일반상대성이론을 지지한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이처럼 과학연구를 하다보면 애매한 것들이 무척 많이 나온다. 이런 애매한 것이 의미하는 바를 다양한 고려사항에 입각하여 ‘잘’ 결정하여 설득력 있는 결론을 얻는 능력이 훌륭한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결정과정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해석들 사이에 논쟁도 벌어지지만 과학지식은 이런 논쟁을 통해 성장한다. 과학자야말로 늘 애매한 것을 정하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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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