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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생체 모방 공학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앙골라 남부에 위치한 나미브 사막에는 일년에 10~20㎜ 정도밖에 비가 오지 않는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생물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 이른 아침 물기를 머금은 옅은 안개가 이 나미브 사막에 사는 동식물들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분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하지만 안개가 하도 옅어서 자체적으로는 응축되기 힘들다. 나미브 사막에 사는 딱정벌레는 진화를 통해 등에 친수성(물과의 친화력 높음) 돌기와 소수성(물과 친화력 낮음) 흐름관을 만들었다. 친수성 돌기에 모인 2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지름의 물방울들이 점점 커지면 물을 잡아두는 힘보다 아래로 흐르는 힘이 커져서 등의 흐름관을 따라 내려가 딱정벌레의 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15년 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로버트 코헨 교수와 마이클 러브너 교수는 테플론과 유사한 소수성 물질과 전하를 띤 고분자를 이용해 매우 친수성인 물질을 만들어 사막 딱정벌레의 수분 획득 방식을 모방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우리의 주변에는 위와 같이 동물이나 식물 등 생체를 모방해 만든 것이 여럿 있다.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오리의 물갈퀴를 모방한 오리발과 문어의 빨판을 모방한 흡착판뿐 아니라 장미넝쿨의 가시를 모방한 철조망, 상어의 비늘을 모방한 선수용 수영복, 단풍나무 씨앗을 모방한 헬리콥터의 날개, 물총새의 부리 모양을 모방한 초고속 열차의 앞부분, 연잎의 소수성을 모방한 방수 물질, 홍합의 족사를 모방한 생체적합성 접착제 등 생체 모방 기술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역시 잘 알려진 예로 기저귀, 신발, 가방, 혈압계, 시곗줄 등에 매우 널리 사용되는 벨크로(일명 찍찍이)는 1940년대 스위스의 전기공학자인 게오르그 드 메스트랄이 발명했다. 메스트랄이 사냥을 나간 어느 날 토끼를 잡으러 간 사냥개가 돌아왔는데 사냥개의 털에 산우엉 열매가 잔뜩 붙어 있었고 아무리 털어내려 해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 “와, 되게 안 떨어지네”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메스트랄은 산우엉 열매가 왜 쉽게 떨어지지 않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이를 확대경으로 관찰하여 다른 가시들과는 달리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응용해 한쪽 면은 갈고리 모양을 한 테이프, 다른 면은 원형고리 모양을 가진 실로 만든 테이프를 만들어 쉽게 붙이고 힘을 주면 쉽게 떨어지는 테이프를 발명했다. 1950년대 ‘분리 가능 접착기구’ 등으로 특허들을 출원했고, 이후 벨벳과 갈고리를 의미하는 불어 벨루르와 크로셰의 앞글자를 딴 벨크로라는 상표로 제품으로 출시했다. 벨크로는 지금도 우리 일상생활과 산업에서 필수적인 3만5000가지가 넘는 제품으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도 이러한 생체 모방 기술들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카이스트의 정기훈 교수 연구팀은 파리의 겹눈을 모방한 카메라 렌즈를 개발했다. 카메라 렌즈는 상이 흐려지지 않도록 렌즈를 여러 개 붙이는데, 이로 인해 렌즈의 부피가 커진다. 휴대폰과 초소형 디지털카메라에는 크기가 작은 카메라 렌즈가 필요한데, 렌즈 부피를 줄이면 멀리 있는 물체를 식별하기가 어려워진다. 일반적으로 곤충의 겹눈은 수천개의 낱눈으로 이뤄져 있고, 이 많은 낱눈으로 들어오는 이미지를 합쳐 하나의 영상을 얻는다. 반면 연구팀이 주목한 말벌 무리에 기생하는 파리인 ‘제노스 페키’의 겹눈은 각 낱눈에서 개별 영상을 만들고, 특이하게도 낱눈 사이에 빛을 흡수하는 구조가 있어 영상끼리의 간섭이 없다. 이를 모방해 수십개의 작은 렌즈를 판에 붙여 2㎜ 두께의 매우 얇은 카메라를 만들었는데 여러 개의 작은 렌즈가 얻은 각각의 영상을 하나로 합쳐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정 교수 연구팀은 반딧불이 발광기관을 모방해 발광효율을 60% 정도 높이고 발광각도도 15%나 넓힌 유기발광 다이오드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생체모방 기술의 개발 과정을 벨크로의 경우를 통해 보면 개의 털에 산우엉 열매가 붙어서 왜 잘 안 떨어지지 하는 ‘호기심’에, 확대경으로 산우엉 열매를 ‘관찰’하고, 열매의 가시가 고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해, 이를 양면의 테이프에 ‘공학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오랜 기간 진화 과정을 통해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기능을 하게 된 생물시스템이 공학자들에 의해 인류를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는 다양한 제품들로 재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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