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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광선검 잡아쓰" (출처:eknathkadam.net)

 

 

웹 브라우저는 지금 전쟁 중


 

인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 채진석

  필자가 박사과정 학생이던 1994년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라는 웹 브라우저가 출시되었다. 넷스케이프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1989년부터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의 제안으로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1992년에는 웹을 항해할 수 있는 도구로 모자이크(Mosaic)라는 최초의 웹 브라우저가 나왔지만 널리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넷스케이프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웹이라는 것이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웹의 성공은 상당 부분 넷스케이프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96년에서 1998년 사이는 그야말로 넷스케이프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때는 8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기도 하였다.

추억의 넷스케이프와 모자이크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라는 웹 브라우저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기능이나 성능면에서 넷스케이프에 밀리게 되자 익스플로러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사의 운영체제인 윈도우즈에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끼워서 판매하는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러한 조치는 마치 자동차를 팔면서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무료로 끼워서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자동차에 미리 설치되어 있는 내비게이션의 성능이 조금 떨어져도 웬만해서는 돈을 내고 새로운 내비게이션을 구입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기존 내비게이션 업체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이 조치로 말미암아 넷스케이프의 시장 점유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결국은 2000년 이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렇게 익스플로러가 넷스케이프를 시장에서 사라지게 한 것을 두고 제1차 세계대전(World War I)에 빗대어 제1차 브라우저 전쟁(Browser War I)이라고 부른다.

  어떤 산에 있는 나무 중 대부분이 소나무라고 하자. 이렇게 하나의 종이 산 전체를 차지하게 되면 생태계가 건전하게 유지되기 어렵게 되는데, 만일 솔잎흑파리와 같은 해충이라도 나타나게 되면, 산에 있는 모든 나무가 말라 죽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웹 생태계에서도 특정 웹 브라우저의 점유율이 너무 높으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넷스케이프가 사라진 이후 출시된 인터넷 익스플로러 6의 경우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지 않았지만, 사용자들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익스플로러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IE 죽어라 죽어라~" 찌른다고 죽지는 않습니다만 (출처:browser_is)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그야말로 익스플로러의 전성기였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넷스케이프가 시장에서 사라진 이후 익스플로러는 시장 점유율을 95%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그러던 중 2004년말 공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보급하는 모질라(Mozilla) 재단에서 불여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웹 브라우저 파이어폭스(Firefox)를 출시하면서 웹 브라우저 전쟁이 다시 불붙게 되었는데, 이것을 제2차 브라우저 전쟁(Browser War II)이라고 부른다. 초기에는 파이어폭스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던 마이크로소프트도 계속해서 파이어폭스의 시장 점유율이 오르자 위기감을 느꼈는지 인터넷 익스플로러 6이 출시된지 거의 6년만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7을 출시하게 된다.

맷집은 누가 셀까요 (출처: savio0404.tumblr.com)



  이 전쟁은 현재도 진행 중인데, 파이어폭스 이후 애플의 사파리(Safari), 구글의 크롬(Chrome), 오페라 소프트웨어의 오페라(Opera)와 같은 웹 브라우저들이 가세하면서 전쟁의 양상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으며,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혼전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자료를 보면, 2010년말로 오면서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익스플로러의 시장 점유율이 60% 이하로 떨어지고, 파이어폭스가 22.83%, 크롬이 8.50%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사파리와 오페라가 그 뒤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익스플로러가 계속해서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브라우저에게 1위 자리를 내 줄지 전쟁의 결과가 자못 궁금해진다.

 


(출처: favbrowser.com)


  브라우저 전쟁을 통해 얻은 귀중한 전리품 중의 하나는 오픈뱅킹이라고 할 수 있다.  관심 없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낯 설 수도 있지만, 2010년 7월 8일은 우리나라 인터넷 역사에서 길이 기억될만한 날이다. 이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웹 표준을 따른 인터넷뱅킹 서비스인 우리은행의 ‘우리오픈뱅킹’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픈뱅킹은 운영체제나 웹 브라우저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말하는데, 오픈뱅킹에서는 이용자 PC의 운영체제가 윈도우든 맥OS든 리눅스든 상관없고, 익스플로러든 파이어폭스든 크롬이든 사파리든 오페라든 웹 브라우저를 차별하지도 않는다. 우리오픈뱅킹 블로그에 가 보면 그동안 리눅스나 맥OS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난생 처음으로 인터넷뱅킹에 성공한 후 감격한 나머지 주거래은행을 우리은행으로 바꾸어야겠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별이 다섯개~ 가 아니라 지원하는 웹브라우저가 다섯개!!!!!


 

  필자는 익스플로러에 의한 넷스케이프의 몰락을 보면서 기원전 146년 로마에게 멸망당한 카르타고가 생각났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쓴 로마인 이야기 2권에 보면 카르타고의 멸망을 지켜보던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이밀리아누스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폴리비오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폴리비오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

  마이크로소프트의 누군가도 넷스케이프의 종말을 보면서 비애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승리의 기쁨만을 만끽했을까?


필자 채진석은

1964년 서울생.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고,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서 199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한국학술재단 부설 첨단학술정보센터에서 전국 대학도서관의 목록 데이터를 통합하여 종합목록을 구축하는 사업에 참여했으며, 1998년 8월부터 인천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과 친구되기 운동을 펼치는 사회복지법인 한벗재단에서 이사로 일하면서, 장애인들의 컴퓨터 사용을 도와주는 정보통신 보조기기와  접근성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쓰고 있다. 정보화 역기능 및 정보격차 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2009년 12월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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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