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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과학 칼럼

보았다고 믿을 수 있을까?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명명백백한 시각적 증거를 보여주면 믿을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정말 그런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는 누구에게나 자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대중매체에는 수많은 과학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런 이미지에는 눈길을 끄는 문구가 달려 있기 마련이다. 뇌영상 사진 옆에는 ‘당신은 거짓말을 해도 뇌는 진실을 말한다!’는 준엄한 경고가 등장하고, 총천연색의 입자 충돌 사진에는 ‘이것이 바로 우주의 신비를 풀어 줄 힉스 입자다!’는 승리의 선언이 함께한다. 어려운 과학 내용을 알기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느껴진다. 하지만 과학적 이미지의 자명성에 대한 이런 생각은 문제가 있다.


 


‘거짓말을 하는 뇌’의 사진은 어떻게 얻었을까? 피실험자에게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수도는 부산이다’는 말을 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찍은 뇌영상 사진일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내용의 거짓말을 하더라도 뇌영상 사진은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 우리 뇌는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상적인’ 업무와 함께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일들이 우리 뇌 속에서 처리되고 있다. 그렇기에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내용의 거짓말을 할 때 찍은 사진도 찍은 시점에 따라 다른 영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동일한 내용의 거짓말이라도 다른 사람이 하면 역시 다른 사진이 얻어진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설사 같은 사람이더라도 ‘다른 종류’의 거짓말을 하면 뇌영상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살인 용의자에게 살인을 했느냐고 묻는 상황처럼 감정적 요인이 주도하는 조건하에서의 거짓말은 우리나라 수도를 묻는 상황처럼 인지적 요인이 주도하는 조건에서의 거짓말과 다른 뇌활동 패턴을 보인다.


뒤죽박죽 한 뇌를 형상화한 이미지 (경향DB)



결국 ‘거짓말하는 뇌’의 영상은 연구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표준적’ 거짓말을 여러 피실험자들에게 여러 차례 하게 하고 얻은 뇌영상 자료를 통계적으로 처리하여 얻는 ‘합성’ 사진이다. 여기서 ‘합성’의 의미는 사실이 아닌 내용을 조작하여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각각의 뇌영상 자료는 분명 실제로 수행된 객관적 실험의 결과물이다. 학술적으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사진은 객관적 정보에 근거하여 ‘구성’된 것이다.



뇌영상 사진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과학적 이미지는 이런 의미로 ‘구성’된 것이다. 분명 엄밀하게 수행된 실험이나 관찰에 근거한 것이지만, 수많은 방식으로 처리되고 변형되어 이해하기 쉽고 보기 쉽도록 만들어진 이미지란 말이다. 그래서 과학적 이미지에 대해 과도한 해석은 금물이다. 거짓말하는 뇌의 사진은 종종 참말 하는 뇌와 대조되어 제시되곤 한다. 아무런 활동도 보이지 않는 평온한 참말 하는 뇌 사진에 비해 울긋불긋한 뇌활동을 보여주는 거짓말하는 뇌의 사진은 보는 사람들에게 ‘역시 거짓말하는 사람은 진실을 숨기기 위해 엄청 노력해야 하는구나’라는 느낌을 준다.그에 비해 참말 하는 사람은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으므로 ‘평온한’ 상태라고 생각되기 쉽다.



이는 과도한 해석이다. 참말 하는 뇌도 거짓말하는 뇌만큼이나 활발한 뇌활동을 보인다. 하지만 연구의 목적이 두 뇌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참말 하는 뇌를 ‘기준’으로 설정한 후, 거짓말하는 뇌의 활동이 참말 하는 뇌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만으로 ‘거짓말하는 뇌’ 사진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참말 하는 뇌는 ‘평온’해 보이고 거짓말하는 뇌는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당연히 거짓말하는 뇌를 기준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뇌영상 이미지는 거짓말하는 뇌가 ‘평온’해 보이고 참말 하는 뇌가 ‘활발’해 보일 것이다. 


뇌 MRI(경향DB)



과학적 이미지는 과학연구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특정 주장에 대한 ‘통계적’ 증거로 활용된다. 앞의 예에서 보듯, 거짓말하는 뇌와 참말 하는 뇌 사이에 과학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거짓말과 참말이라는 의미론적 속성에 대응하는 뇌 활동의 패턴이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곧바로 개인의 뇌 활동에 대한 판단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정당화하기 어렵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생각은 보이는 것은 자명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수집된 정보에 근거해 얻어진 과학적 이미지라 해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 해석하고, 그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보았다고 바로 믿는 것은 일단 성급하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