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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미국은 언제쯤 ‘미터법’을 도입할까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링컨 채피 전 로드아일랜드 주지사는 지지도가 낮아 민주당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채피는 미국의 도량형을 야드법에서 미터법으로 전환하는 이슈를 제기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은 길이의 단위로 미터(m) 대신 피트와 야드와 마일, 무게의 단위로 킬로그램(㎏) 대신 온스와 파운드, 부피의 단위로 리터(ℓ) 대신 갤런을 쓴다. 그러다 보니 미국 주유소에서 갤런당 달러로 표시되어 있는 가격을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일단 갤런을 리터로 환산하고, 달러를 원으로 바꾸어서 리터당 원으로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는 국가는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로, 이 3개국은 도량형에 있어 고립된 섬으로 남아 있다.

인류는 대상의 크기를 수량화하기 위한 기준을 정할 필요를 일찍이 느꼈다. 초기의 도량형에서 주로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인간의 신체였다. 1인치는 2.54㎝로 엄지손가락 첫 마디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했고, 1피트는 30.48㎝로 영국 왕 헨리 1세의 발 크기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발을 신은 상태로 잰 것인지 발 사이즈가 다소 크기는 하지만, 단위명인 피트(feet)를 보아도 발(foot)에서 시작된 것임에 틀림없다. 야드는 91.44㎝로 팔을 뻗었을 때 몸의 중심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야드법은 인간의 신체 사이즈를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하다 보니 1피트는 12인치, 1야드는 3피트, 1마일은 1760야드로, 호환 기준이 들쑥날쑥하다.

‘1미터=100센티미터’와 같이 10의 거듭제곱으로 표현되는 체계적인 미터법은 프랑스 혁명기에 만들어졌다. 18세기까지 사용되던 수백개의 혼란스러운 단위는 불공정한 거래의 빌미를 제공했고, 이는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한 원인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기는 정치·사회 전반에서 앙시앵 레짐(구제도)의 잔재를 몰아내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만큼, 개혁의 정신을 기반으로 도량형을 정비하게 된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도량형을 정비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여기에는 라플라스, 르장드르, 라부아지에 같은 수학자와 과학자가 대거 포함되었다. 위원회에서는 변하지 않는 길이를 기준으로 단위를 정하고자 했는데, 이때 채택된 것이 지구 자오선의 길이다.



북극_AP연합뉴스




1미터는 적도에서 북극까지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 1로 규정했고, 현재는 진공에서 빛이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에 진행하는 경로의 길이로 정의된다. 한편 부피와 무게도 길이에 연동시켜, 한 모서리의 길이가 10분의 1미터인 정육면체의 부피를 1리터, 그리고 이 부피에 해당하는 섭씨 4도 물의 질량을 1킬로그램으로 정했다.

미국이 고수하고 있는 야드법은 우주선의 사고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A1999년 9월 화성 궤도에 진입하던 미국의 화성 기후탐사선이 대기와 마찰을 일으키며 추락했다. 이 탐사선을 제작한 록히드마틴사는 무게의 단위로 파운드를 사용했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킬로그램을 사용하다 보니 추진력을 계산할 때 착오가 생긴 것이다. NSA와 같은 첨단 연구소의 고급 브레인들이 어떻게 이런 원시적인 실수를 했는지 이해는 잘 되지 않지만, 미터법과 야드법의 혼란으로 1억2500만달러 예산의 우주 프로젝트를 허공에 날려버린 것이다.

야드법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을 보면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평 대신 제곱미터를 사용하도록 법제화했어도 여전히 평 단위로 표현해야만 넓이가 직관적으로 와닿는 경험에 비추어 보면 미국을 비판만 하기도 어렵다. 오래전 발명된 타이프라이터는 글쇠가 엉키지 않도록 자주 쓰이는 알파벳을 떨어뜨려 배열한 쿼티(QWERTY) 자판을 이용했다. 컴퓨터가 등장해 엉킴 방지의 필요성이 사라지자, 빈번하게 사용되는 모음과 자음을 중앙에 배치해 효율성을 높인 자판이 제안되었다. 하지만 한번 익숙해진 쿼티 자판의 아성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았고, 종국적으로는 쿼티 자판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는 관례를 깨고 새로운 것을 정착시키기가 얼마큼 어려운지를 방증한다. 미터법으로의 전환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크기는 해도 미국이 단위의 세계 질서에 편입하는 통합의 정신을 보여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박경미 |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