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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삶의 기반을 빼앗기고 몰락해 가는 도시 빈민(난장이)의 삶을 다룬 사회고발적인 소설이다.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독자들의 비판의식을 일깨워준 <난쏘공>은 12편의 연작 단편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이 ‘뫼비우스의 띠’이다.

뫼비우스의 띠(mobius strip)를 생소한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어린 시절 한번쯤은 뫼비우스의 띠를 만드는 놀이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긴 직사각형 모양의 띠를 180도 꼬아 양끝을 연결한 것으로, 일반적인 고리 모양의 띠와 달리 안팎의 구분이 없어 하나의 면을 갖는다. 일반적인 고리 모양의 띠는 안과 밖이 있기 때문에 안쪽에서 선을 긋기 시작했으면 안에만 머물고, 바깥쪽에서 긋기 시작했으면 밖에만 머문다. 그렇지만 뫼비우스 띠는 어느 한 점에서 시작해 고리를 따라 선을 그으면 안과 밖 모두에 선이 생기면서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온다.

뫼비우스의 띠는 독일의 아우구스트 뫼비우스와 요한 리스팅이 1858년 각각 독자적으로 생각해냈다. 20세기 초에 정립된 위상수학(topology)은 위치(位置)와 형상(形象)에 대한 공간의 성질에 주목하는 분야인데, 뫼비우스의 띠는 위상수학 연구의 단초를 제공했다.

뫼비우스의 띠는 순수한 수학 개념으로 출발했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도 활용 가치가 높다. 재래식 방앗간의 벨트는 한 번 꼬여 있는 뫼비우스 띠 모양으로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뫼비우스의 띠에 선을 그리면 안팎이 모두 그려지듯, 벨트가 돌 때 양면이 골고루 기계에 닿게 되므로 균일하게 마모되어 벨트의 수명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다양한 분야에서 특허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1923년 미국의 리데 포레스트는 보통의 테이프보다 재생 시간이 두 배나 긴 뫼비우스의 띠 테이프로 특허를 냈고, 1957년 미국의 굿리치 회사는 뫼비우스 띠로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어 특허를 냈다


뫼비우스의 띠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자아개념을 설명할 때 뫼비우스 띠를 차용했다. 라캉은 의식과 무의식 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뫼비우스 띠를 활용해 설명했다.

이제 소설에서 뫼비우스의 띠가 어떤 은유를 가지고 있는지 추론해보자. <난쏘공>의 ‘뫼비우스의 띠’는 잘 알려진 우화적 질문으로 시작한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는데 한 아이는 그을음에 새까맣고 한 아이는 깨끗하다면 누가 씻겠느냐는 것이다. 깨끗한 아이는 새까만 아이를 보고 자기도 더러울 것이라 생각해서 씻고, 반대로 새까만 아이는 깨끗한 아이를 보고 씻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이 대답은 뫼비우스의 띠에서 안이 바깥이 되고 또 바깥이 안이 된다는 성질과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소설에서 난장이 가족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적인 한계는 뫼비우스의 띠의 한 점에서 선을 긋기 시작하면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성질과 대응시킬 수 있다.

이처럼 부정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긍정적인 메시지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난장이와 거인, 피해자와 가해자, 노동자와 고용주의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난 평등한 사회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로 투사시킬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의 가운데를 따라 자르면 두 개로 나뉘지 않고 네 번 꼬인 하나의 긴 고리가 만들어지는데, 이 성질은 못 가진 자와 가진 자가 대립된 구도를 만들지 않고 나눔을 통해 화합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건 뫼비우스의 띠는 중층적 의미를 드러내는 멋진 수학적 은유임이 확실하다.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이다. 한 면밖에 없어 그 면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뫼비우스의 띠가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될지,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가 계층 간 통합의 의미로 작용할지…. 후자의 세상으로 이끄는 후보를 선택할 혜안이 필요하다.



박경미 |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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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