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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똥 누는 시간 12초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새에게는 이빨이 없다. 껍데기에 탄산칼슘이 풍부한 알을 낳느라 이빨을 잃었다는 가설도 있고, 만드는 데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드는 이빨에 투자하는 대신 새끼를 빠르게 부화하고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키는 일이 새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가설도 등장했다.

 

최근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부리와 이빨을 가진 약 1억년 전 익티오르니스 공룡의 화석을 자세히 분석한 뒤 뇌를 발달시키기 위해 새가 턱의 근육과 이빨을 포기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무를 파고 벌레를 먹거나 껍데기를 깨고 연한 조갯살을 먹는 데 부리만으로도 충분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에게는 방광도 없다. 물통을 몸 안에 싣고 다니면 비행하는 데 에너지가 더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들의 콩팥은 단백질 대사 과정의 부산물인 질소폐기물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요소 대신 요산을 선택했다. 인간 콩팥이 만드는 요소보다 질소 원자의 수가 두 배 많은 요산을 택함으로써 새들은 오줌을 농축하는 데 드는 물의 양을 절반으로 줄였다. 이렇게 콩팥의 설계를 고친 새들은 오랫동안 곤충이 독점해왔던 제공권을 가뿐히 장악했다.

 

방광이 없는 새들은 콩팥에서 만든 오줌을 어떻게 처리할까? 새들은 방광 대신 총배설강(cloaca)으로 오줌을 내보낸다. 새의 사촌 격인 파충류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총배설강은 어류나 포유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소화기관이다. 여기에서 오줌과 똥이 고루 섞이는 것이다. 하지만 새들은 얼핏 지저분할 수도 있는 이 상황을 장관으로 바꿔버렸다. 새들은 총배설강의 물을 역류시켜 소화기관에서 이를 재흡수하는 기예를 펼친다. 이제 새들은 입으로 들이켜는 물의 양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수용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요산을 침전시켜 똥과 함께 몸 밖으로 방출한다. 늦가을 까마귀 떼가 전봇대 아래 보도블록에 요란하게 수놓은 그림은 총배설강의 진화적 역작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방광을 가진 포유동물, 특히 인간은 하루 몇 번이나 오줌을 눌까? 2014년 미국과학원회보에 실린 논문을 보면 포유동물은 방광을 하루 평균 5.6번 비운다. 미 조지아공대 연구진은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여러 종의 동물들이 오줌을 누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분석하여 ‘오줌을 누는 시간은 몸통의 크기와 상관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무게가 30g인 생쥐와 8t이 넘는 코끼리가 오줌 싸는 시간이 비슷하다고? 그렇다. 포식자의 위협이 없는 동물원에 사는 동물의 데이터가 과연 야생의 그것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는 있겠지만 동물들이 오줌을 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관되게 21초에 수렴했다. 물론 앞뒤로 13초 실험 편차가 있다. 하지만 경험상 우리는 큰 동물일수록 많은 양의 오줌을 콸콸 쏟아낸다는 사실을 잘 안다. 실험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동물들은 오줌을 찔끔댄다. 이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비슷한 시간 동안 방출하는 오줌의 양은 방광의 크기와 방광에서 외부 생식기관으로 연결된 요도의 길이에 비례한다.

 

약 20초 동안 6회에 걸쳐 배설하면 하루 오줌 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분 남짓이다. 이처럼 짧은 시간은 동물이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데 쓰는 시간에 비하면 거의 무시할 수 있을 정도라고 간주할 수 있다. 하긴 포식자에게 쫓기는 순간에도 동물은 방광을 비울 수 있다. 그렇기에 오줌을 누다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는 일은 여간해선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 똥을 누는 시간도 몸통 크기와 별 관련이 없어서 동물들은 평균 12초 정도면 거사 한판을 성황리에 마친다. 정상 상태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설사를 한다거나 변비가 찾아와 신문을 펼쳐 들고 항문 조임근에 힘을 주고 있다면 그 시간은 크게 줄거나 늘어날 수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오줌은 몸 안에서 여과된 혈액이다. 이에 반해 아무리 잘 봐줘야 ‘내 안의 바깥’인 소화기관을 무사통과한 것이 똥이다. 잘게 쪼개진 영양소 형태로 몸 안에 들어올 운명을 비낀 물리적 실체가 바로 똥이라는 뜻이다. 동물들은 직장 지름 다섯 배 길이의 똥을 평균 두 덩어리 눈다. 우리 말에 ‘급한 똥 한 번 눌 만한 거리’라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인간도 연성물질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듯싶다. ‘매화’가 살포시 떨어진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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