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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똑똑해지는 32가지 방법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에는 램프의 주인이 요구하는 대로 뭐든지 들어주는 요정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요정에게 소원을 빌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소원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요정이 등장하는 한 우화에서, 오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천 년 동안 살고 싶다’고 소원을 말했다. 그러자 요정은 그를 천년 동안 살 수 있는 나무로 만들어 주었다. 인간으로 천년 동안 살고 싶다고 좀 더 자세하게 소원을 말했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 우화의 교훈을 간단하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늙고, 병들어, 고통스러운 채로 천년을 살아 봤자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다 안전한 소원은 ‘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천년 동안 인간으로 살고 싶다!’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소원하면 정말 문제가 없을까? 늘 행복하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어쩌면 그런 행복은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가상현실 속에 갇힌 사람처럼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통제받는 상황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동료를 배신한 대가로 세속적 성공과 쾌락적 삶을 보장받기를 주문하는 사이퍼처럼 말이다. 사이퍼가 추구하는 찰나적이고 감각적인 행복감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지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행복한 삶’을 소원하는 일조차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아마도 이것이 서양 속담에 ‘자신이 뭘 원할지 조심하라’는 말이 갖는 교훈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가 원해서 추구하고 성취한 것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과학연구에서도 이런 상황이 종종 나타난다. 똑똑해지면 좋을 것이라는 점에 대개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똑똑함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고 이 유전자를 변형시켜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처럼 여겨진다. 사람에게는 이런 ‘똑똑하게 만들기’ 유전자 치료가 아직 실시되지 않았지만, 쥐에게는 이미 여러 방식으로 실험됐다. 최근 보고에 따르면 이미 32가지의 ‘똑똑한’ 쥐가 개발됐다고 한다. 왜 32가지나 될까? 똑똑함의 종류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좋아 한 번 왔던 장소를 잘 기억하는 쥐도 있고, 공간에서의 사물 배치를 잘 파악하는 공간 지각력이 좋은 쥐도 있다. 그래서 32가지의 똑똑한 쥐가 나온 것이다.

쥐가 똑똑한 여러 방식 중 가장 쉽게 측정 가능하고 현재까지 가장 많이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기억력이다. 유전적으로 기억력을 강화한 쥐는 보통 쥐에 비해 확실히 뛰어난 기억력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쥐는 두 사물을 연속해서 보여주면 나중에 보여준 사물에 집중하느라 첫 사물은 잊기 일쑤지만, 이 똑똑한 쥐는 그러지 않는다. 그 밖에도 이 쥐는 한 번 기억한 내용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장기기억 능력에서도 보통 쥐와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 ‘천재 쥐’ 이야기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외워야 하는 수험생에게는 솔깃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팀은 기억력이 강화된 쥐가 유난히 겁이 많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 트라우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발견했다. 가벼운 전기충격을 가했을 때 대부분의 쥐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 사건을 잊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는 데 비해, 이 ‘똑똑한’ 쥐는 오랫동안 이 충격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트라우마 ‘환자’처럼 매사에 소극적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기억력 게임하는 어머니와 자녀들(1990년대) (출처 : 경향DB)


쥐처럼 일부러 유전자 변형을 한 결과는 아니지만, 믿기 어려운 정도의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도 이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이 이미 오래전 러시아 신경학자 루리아에 의해 보고된 바 있다. 단테의 신곡을 한 번 읽고도 바로 다 암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 남자는 일반적으로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글을 읽을 때마다 각 단어가 수많은 ‘기억’을 연상시키는 바람에 그 연상들에 압도되어 문장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억력이 좋은 것이 반드시 이해력처럼 다른 지적 능력에 유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똑똑함’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직관과 달리 똑똑해지는 다양한 방식 사이에는 서로 배제하거나 경쟁하는 관계도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기억력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적당히 잊어버리고 적당히 기억하는, 다시 말하자면 잊을 만한 것은 잊고 기억할 만한 것은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평범한 사실은 기억력을 증강하려는 연구에 집중하던 과학자들에게는 잘 떠오르지 않은 가능성이었다. 오직 연구가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단순하게 생각했던 ‘기억력’이나 ‘강화’라는 개념이 생각보다 미묘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똑똑함’의 사례는 복잡한 인과 작용의 한 축만 잡고 분석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항상 주의해야 하는 지점을 잘 드러내 준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