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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영화 <기생충>의 생물학적 모티프인 냄새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퀴퀴함’일 것이다. 주인공 가족이 사는 반지하방 벽지에 시커멓게 달라붙은 곰팡이 포자 냄새는 콧속 점막을 타고 올라와 뇌에서 불편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곰팡이는 습도가 60% 이하인 곳에서는 잘 살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습도는 40~60% 사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이긴 하지만 습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온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이 끓거나 어는 온도를 가리키는 도구를 만들고 그 사이를 100개 간격으로 나눈 온도계를 사용한 역사도 500년에 지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과학자들은 열이 운동과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상호 전환할 수 있는 이들 에너지양을 온도로 표현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 부산한 학생들의 움직임을 수업시간의 고요함과 비교하면 온도의 높낮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 각각을 물 분자라고 가정했을 때 그들의 평균 운동에너지가 곧 온도이다.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된장국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물 분자의 움직임을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

 

습도는 공기 중 습기의 양이다. 짐작하다시피 습기의 화학적 정체는 물이다. 그렇기에 공기 중에 물이 많으면 습도가 높다. 하지만 이 물은 액체가 아니라 기체이다. 물의 끓는점보다 낮은 온도에 수증기가 존재한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오해는 우리가 평균값을 쓰는 까닭에 생기는 것이다. 물 분자의 에너지 범위는 무척 넓어서 수증기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들이 영하 온도에서도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조건이 같다면 주변의 온도가 올라갈수록 공기 중 수증기의 양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특정한 온도에서 가장 많이 존재할 수 있는 수증기량을 100으로 봤을 때 상대적인 양이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습도이다.

 

지구의 대기권에는 질소와 산소가 각기 78%, 21%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몇 가지 다른 미량기체가 섞여 있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이산화탄소라는 온실가스가 기체 100만개 중 430개(430PPM)를 넘었다고 호들갑스럽게 떠들지만 대기 중 수증기의 양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기상학자들은 급변하는 대기 중 수증기의 양을 구름이 낀 혹은 국지성 호우가 내린다는 식으로 에둘러 말한다. 수증기가 변신한 물방울이나 얼음 결정이 구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가 내리든 눈이 내리든 그것의 실체는 물이다.

 

뉴스에선 장마가 지나고 열대야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보한다. 온도와 습도가 겨끔내기로 올라가리라는 뜻이다. 대기과학자들은 기온이 1도 오르면 수증기의 양은 7% 증가한다고 계산한다. 기온이 30도 넘게 올라가면 우리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우선 옷을 벗고 그늘을 찾는다. 행동 반응이라 일컫는 자연스러운 동작이다. 그것으로 양에 차지 않으면 우리는 땀을 흘린다. 이때 바람이 불면 좋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면서 피부 온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쪽방촌이나 반지하 공간에서 공기의 흐름이 멈칫하면 거기 숨겨진 수증기는 습도라는 숫자로 우리 피부에 고스란히 내려앉아 데워진 몸통의 열기가 발산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체온이 더 올라가는 것이다. 지난 6월 독일과 미국 연구자들은 습도가 100%, 기온이 31도 넘는 곳에서는 6시간을 버티기 힘들다는 연구 결과를 ‘랜싯 지구 건강’이라는 신생 저널에 발표했다. 극도로 갈증이 나고 염분이 빠져나가 토하거나 혼수상태에 접어드는 열사병 증세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수분 항상성이 깨지면서 신경계와 혈관순환계 곳곳의 기능이 떨어진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보면 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도권의 반지하나 옥탑방 혹은 고시원에 살고 있다.

 

온도뿐만 아니라 습도도 그 자체로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건조하면 눈과 상기도 점액이 마른다. 또한 습도에 따라 미생물이나 공해 물질의 행동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감기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차고 건조한 상태에서 더 쉽게 사람들 사이를 오갈 수 있다. 피부 분비물을 먹고사는 집진드기는 습한 카펫을 좋아하지만 오존은 건조할 때 많이 생성된다.

 

옷을 껴입을 필요도 없고 열을 내리지 않아도 좋을 열 중립지역 온도는 17~24도이다. 쾌적한 환경을 추구하는 공기 냉장고인 에어컨은 습도도 떨어뜨린다. 하지만 그 탓에 지구 온실은 더욱 두꺼워진다. 밖은 여전히 덥고 습하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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