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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당신의 간은 밤새 안녕하십니까

간은 붉다. 들고 나는 피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쉴 때 간은 우리 몸에 필요한 전체 산소의 약 20%를 쓴다. 유난히 붉은 색조를 띠는 기관은 산소와 피의 요구량이 크다고 보면 대체로 틀림이 없다. 콩팥과 심장도 그런 곳이다. 이들 두 기관과 달리 간에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혈관이 연결된다. 산소를 듬뿍 담고 심장에서 출발한 신선한 피는 간에 들어오는 피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혈액은 소장과 대장에서 온다. 이렇듯 우리 몸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소화기관에서 소화하고 흡수한 영양소가 일차로 결집하는 곳이 간이다. 그렇기에 간은 몸의 안과 밖을 잇는 경계에 선 관문이다.

음식을 많이 먹어 영양소의 양이 늘면 간은 커질까? 그렇다. 2017년 스위스 제네바 대학 쉬블러 연구팀은 생쥐의 간이 24시간을 주기로 커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한다는 실험 결과를 <셀>에 발표했다. 야행성인 쥐에서 얻은 결과를 뒤집어 해석하면 우리 간의 크기는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 작고 잠들기 직전이 가장 커지리라 짐작된다. 영양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낮과 먹지 않고 그것을 쓰는 밤에 간세포 크기가 달라진 까닭이다. 놀라운 사실은 밤과 낮의 간 무게 차이가 30%가 넘었다는 점이다. 영양소가 들어오면 간세포는 서둘러 합성 공장을 건설하고 단백질을 만드는 한편 식후 넘쳐나는 포도당을 저장한다. 바로 이런 생리적 작업에 몰두하느라 간이 커지는 것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초음파를 써서 측정하면 사람의 간도 생쥐처럼 크기가 변하는 걸 볼 수 있다.

앞의 생쥐 실험 결과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있다. 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만 억지로 먹인 쥐의 간 무게는 밤낮 변함없이 줄어든 상태라는 점이다. 이는 간의 무게가 먹는 일뿐만 아니라 생체 시계의 영향도 동시에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에게나 쥐에게나 잠자는 시간에 뭔가를 먹는 일은 그리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간이 하는 일은 참 다양하지만 굵직한 세 가지만 들자면 첫째는 영양소를 처분하는 물질대사, 둘째는 독소 제거 그리고 마지막으로 담즙산을 만드는 일이다. 앞의 두 가지는 간단히 살펴보았으니 잠시 담즙산의 정체를 파헤쳐보자. 잡도리가 서툰 고기나 생선을 먹다가 쓴맛을 느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쓴맛의 정체가 바로 담즙산이다. 간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간세포가 콜레스테롤을 담즙산으로 바꾼다. 이렇게 만들어진 담즙산은 필요할 때까지 담낭에 보관된다. 음식물이 들어오면 담낭은 십이지장으로 담즙산을 보내 지방의 소화를 돕는다. 물에 녹지 않는 지방을 감싸는 계면활성 효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최근 담즙산이 대장에 상주하는 세균에 의해 대사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앞에서 보았듯 소화를 돕는 담즙산은 지방산이 흡수될 때 다시 간으로 돌아간다. 순환하는 셈이다. 하지만 일부 담즙산은 대장까지 흘러간다. 여러 종류의 담즙산은 공교롭게도 살균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 양이 늘면 세균으로서는 달가울 리가 없다. 따라서 대장 세균은 담즙산을 무해한 물질로 바꾸거나 아예 담즙산을 적게 만들도록 간에 위협을 가한다. 이렇듯 담즙산은 대장 세균의 숫자와 종류, 다시 말해 장내 세균생태계를 조절하는 막중한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생물학자들 대부분은 장내 세균이 ‘대사 기관’이라는 데 동의한다. 집단으로서 장내 세균은 소장에서 미처 소화하지 못한 섬유질을 분해하여 우리 인간이 쓰는 에너지의 10%를 충당한다. 게다가 필수 비타민을 만들어 공급하기도 하고 각종 대사체를 만들어 인간의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몸 안에 있지만 출입구가 열린 소화기관은 엄밀한 의미에서 몸 밖이다. 따라서 세균도 몸 밖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 세균은 숙주가 조금이라도 해찰하면 몸 안으로 곧장 들어와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려 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도 담즙산은 한층 빛을 발한다. 세균이 날뛰지 못하도록 소화기관 장벽을 담즙산이 굳건히 지켜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즙산은 간의 엄중함을 재조명하는 고맙고도 쓴 생체물질이다.

인간은 입으로 음식물을 씹어 넘기면서 우리 자신과 몸속 세균을 먹여 살린다. 해부학적 위치와 생리적 기능 측면에서 간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아침에 눈을 떠 기지개를 켜면서 오른손으로 간을 한번 만져 보자. 낮에 분주히 움직이려 간은 밤새 근사를 모았다. 당신의 간은 밤새 안녕하셨는가?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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