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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노벨상 수상자 110명이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를 상대로 작성한 편지 한 통이 화제를 모았다. 크게 두 가지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무려 110명이나 되는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뜻을 모은 일 자체가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편지에 서명한 인물들은 대부분 물리, 화학, 생리의학 등 과학 분야의 수상자들이었다. 생명의 설계도라 불리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공로로 1962년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88)은 최고령자로 이름을 올렸다. 다음으로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의 주장이 과학기술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유전자변형농작물(GMO), 특히 황금쌀의 보급에 대해 그동안 그린피스가 펼쳐온 반대활동을 중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황금쌀이 상용화되지 못한 이유가 마치 그린피스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편지에 나타난 주장에는 물론 과학적 판단이 담겨 있다. 그간의 학계 논의를 검토한 결과 GMO가 인체와 생태계에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판단과 시장 유통에 대한 사회적 판단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GMO는 기존의 농민은 물론 이를 섭취하는 소비자의 이해관계와 복잡하게 연관돼 있는 존재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편지가 안전성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선에서 그치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

 

황금쌀은 베타카로틴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외래 유전자가 도입된 쌀을 의미한다. 베타카로틴은 우리 몸에서 비타민A로 전환된다. 이론적으로는 밥을 먹으면서 비타민A도 충당할 수 있다. 현재 황금쌀 개발의 선두주자는 필리핀에 위치한 국제쌀연구소이다. 필리핀 정부는 자국민의 상당수가 식량부족은 물론 비타민A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금쌀 개발을 적극 추진해 왔다.

 

하지만 필리핀 내에서 반대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황금쌀 자체의 건강 위해성 문제는 차치하고 당장 필리핀 농가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표출됐다.

 

황금쌀 재배가 대규모로 진행되면 그동안 쌀과 각종 야채를 생산해오던 지역 농민들의 터전이 사라질 수 있다. 종자에 대한 특허권을 다국적 기업이 보유할 경우 황금쌀의 혜택은 결국 기업 위주로 주어질 수 있다. 황금쌀의 종자가 인근 전통 농가로 전파되는 오염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있었다. 전통 야채 시장의 활성화를 비롯한 여러 대안을 통해 비타민A 결핍증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데 굳이 황금쌀을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20138월에는 이 같은 우려들이 상징적으로 반영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제쌀연구소가 관리하는 시험재배지에 필리핀 농민들이 모여 항의 시위를 벌이면서 황금쌀 품목을 뿌리째 뽑아버렸다.

 

그런데 황금쌀이 이제껏 상용화되지 못한 이유는 반대 여론 때문이 아니다. 황금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시기는 이미 20여년 전이다. GMO가 상업적으로 재배되려면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승인은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원칙적으로 그린피스나 필리핀 농부의 반대로 승인이 지연되지는 않는다.

 

지난 6월 초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은 황금쌀의 승인이 이뤄지지 못한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승인 절차에 필요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점이 문제이지, 그린피스 같은 환경단체의 반대활동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먼저 황금쌀을 재배했을 때 농민이 이익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수확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황금쌀을 섭취했을 때 실제로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비타민A가 몸에서 생성돼 비타민A 결핍증을 개선할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황금쌀을 수확한 후 오랫동안 보관하거나 조리하는 과정에서 베타카로틴이 잘 보존되는지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다고 했다.

 

연구진의 책임연구자는 황금쌀에 대해 우호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황금쌀 개발의 취지에 동의하고 있기에 아직까지 황금쌀이 제대로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그린피스에 편지를 보냈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그린피스의 응대는 간단했다. 20여년간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황금쌀을 과장해 알려서는 안 되며 영양실조와 질병퇴치를 위해 다양한 대안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례적인 집단 입장표명이 생각보다 조용히 잊혀질지 모르겠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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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