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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이한승의 '바이오매니아'

"나는 과학자다" - 노래도 과학도 숫자로 평가하는 세상

이한승 (신라대 바이오식품소재학과)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인기다. 덕분에 나도 TV 예능을 돈 내고 보기 시작했다. 평소에 TV를 보지 않던 몇몇 지인들도 나가수는 챙겨본다고 한다. 같은 시간대의 정통 라이브 음악프로인 <열린 음악회>가 못 누린 호사를 나가수가 누리는 이유는 뭘까?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말대로 나가수는 좋은 음악을 감상하게할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심판이자 평가자로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평가를 남과 나누고 싶어지게 한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때론 나가수가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느낌과 감정을 점수화하는 '나는 가수다'


나가수도 매번 경연의 순위를 가지고 왈가왈부가 있다. 순번은 뒤가 좋고, 고음을 좀 질러줘야 하고, 이런 장르는 안좋고, 조용한 편곡은 안되고 등등 나가수에서 살아남기 위한 법칙들도 나온다. 어찌 보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평가 항목에 자신의 스타일을 맞추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과도한 경쟁은 제도의 허점을 찾게 만드는 법이니까.

평가는 힘들다. 공정한 평가는 더욱 힘들다. 교수들이 가장 많이 받는 요청은 각종 평가에 와달라는 것이다. 이유는 전문성 때문이지만 사실 교수들도 자기 옆방 교수가 무엇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아무튼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모든 것을 점수화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모두가 심사받고 심사하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경쟁을 통해 비교당하는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주말 예능에서까지 각종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난무하는 것이 한편으론 씁쓸하다. 

철밥통이라고 놀림당하던 교수들도 이젠 승진과 재임용을 위한 점수를 따야 살아남는다. 강의 평가 점수, 주당 4일 이상 강의 여부, 학생 상담 점수, 영어강의 점수, 사이버/온라인 강의 점수, 학과 평가 점수, 교수 연수 참석 점수, 교수 학습법 참여 점수 등등 그 항목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래, 이런 것은 나태한 교수들 정신 차리라고 만든 장치라고 치자. (그렇다고 나태한 교수들이 정신 차리는 것을 보긴 힘들고 대다수 교수들을 쓸데없는 일에 약삭빠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연구 업적도 공정한 평가를 위해 점수화를 한다. 그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소위 SCI(Science citation index)의 피인용 지수(Impact Factor)다. 논문도 "SCI 급 저널(SCI 등재지)"에 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좋은 저널 = 피인용 지수가 높은 저널“이라는 등식이 굳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분야 불문하고 몇 점짜리 저널인가가 중요하다. ”그 논문”의 질은 그 논문이 실린 “그 저널”이 보증한다.

콜럼비아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다 실험실 폭발사고 후 전공을 바꿔 계량서지학(Bibliometrics)을 창시했다는 유진 가필드(Eugene Garfield)가 "Citation Indexes for Science“라는 제목으로 과학 저널 Science에 논문을 낸 것이 1955년이다. 그 후 그는 ISI(Institute for Scientific Information)라는 무슨 연구소와 혼동하기 쉬운 이름의 ”사설 회사“를 설립하였고 지금의 톰슨 로이터 (Thompson Reuters)로 이어지고 있다. 이 영리 회사에서 매년 발행하는 것이 JCR(Journal Citation Report)이고 거기에 각 저널의 점수(피인용 지수)가 공개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매년 그 점수에 관심을 갖는다. 심지어 교수 임용시에 자기가 낸 논문이 실린 저널의 점수를 적도록 하고 그것을 정량 평가하는 곳도 있다.

2009년 SCI impact factor Top 20 저널


분야에 따라서 피인용 지수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가에서는 그런 세부적인 것을 다 감안하기가 힘들다. 어느 회의에서 한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우리 분야 최고 SCI 저널의 피인용 지수는 0.7입니다.” 하지만 다른 회의에서 다른 교수님의 말씀은 이렇다. “피인용 지수가 5도 안되는 저널의 논문은 다 배제시켜야 합니다.” 물론 위의 두 분의 세부 전공 분야는 다르다. 하지만 같은 대학에서 업적 평가는 같은 자연계열 방식으로 받는다.

요즘 대부분의 대학에선 연구 업적 평가에 피인용 지수를 곱해서 점수를 매기고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심지어 CNS 저널에 논문을 내면 수억을 주는 곳도 생겼다고 한다. CNS라고 해서 Central nervous system(중추신경계)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소위 임팩트 팩터가 제일 높다는 Cell, Nature, Science 저널을 말한단다. (물론 피인용지수가 더 높은 리뷰나 의학저널들도 있다) 그런데 Cell은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Nature나 Science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저널이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세포생물학 하는 사람만 낼 수 있는 저널인데 단지 임팩트 팩터가 높다는 이유로 Nature나 Science와 나란히 세워 놓다니 이건 뭔가 어색하다.

과학 저널의 Central nervous system(중추신경계)라는 Cell, Nature, Science


물론 과학계에서 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평가에 SCI 점수가 유용한 한 방법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계량화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좀 더 다양한 방식과 비인기 분야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나가수가 목청 큰 사람만살아남지 말아야 하듯이 말이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지나칠 정도로 비교와 경쟁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필자 이한승 교수는

1969년 서울 출생. 1989년 연세대 식품공학과에 입학하여 계속 같은 과에서 공부하면서 학과가 식품생물공학과를 거쳐 생명공학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였고 1998년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동경대학, (주)제노포커스, 미국 죠지아대학 등을 떠돌며 포닥으로 세계일주를 계획했으나 2007년 여름부터 부산의 신라대학교 바이오식품소재학과에 임용되어 재직중이다. 유전자 분석(BLAST)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인터넷 세계에 입문하여 15년 가까이 홈페이지와 블로그(http://www.leehanseung.com)로 세상과 소통해 왔으며 극한미생물에 관심이 많아 극한미생물연구회를 섬기고 있다.   

 

  • 나구라 2011.06.18 05:20

    심사도 평가도 숫자로 하는 세상에서 '세상'이란 한국을 말합니다. 분명 미국제도를 베낀다고 그랬을텐데 항상 껍질만 짧게 베끼는 나라이니까 그만 탱자가 되지요. 의약분업도 그렇고, 대학입시도 그렇고, 일반약품 슈퍼에서 판다는 것도 그렇고, 그런 제도가 정착된 미국에서 제도를 유지하는 여러가지 힘(이해관계)의 균형, 역사적 배경, 실제적인 이유 같은 것은 보지않고,그냥 '내가 여행하다 봤는데 편하더라' 말하는 유력자가 여행하다가 혹은 미국에서 살았다고 볼 수 없는 유학시 보고 들은 것을 피상적로 베꼈으니 그렇지요. 모두 한국적 탱자입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박정희의 유신이 대국민 사기극인 것처럼.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수들은 척 보면 압니다.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그래서 한국에서처럼 뭔 저널에는 몇점 하는 그런 "개지랄"않해도, 할 필요도 없고, 누구를 뽑아야 하는지, 어떤 대우를 해야 하는지 안답니다. 당연히 한국과 같은 현란하게 점수화하는데 목메이지도 않고, 합리적으로 돌아가지요. 1편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인 저널에 실려 평생 밥값을 한 교수도 있고, 500편을 써내도 종이낭비만 하는 한심한 교수도 있고, 공부한 사람은 누가 누군지 보입니다.

  • 채진석 2011.06.22 16:29

    이교수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교육과 연구에 관해 가지고 있는 철학이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현재 대학 총장님들 중에는 자신이 속한 대학의 일간지 평가 순위를 올리는데 많은 힘을 쏟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교육이나 연구에 대한 철학이나 비전 제시는 없이 순위만 올리려고 하면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합니다.

    이런 문제점들 중의 하나가 바로 SCI 게재 편수로만 연구 실적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국내 논문지들 중에는 논문이 투고되지 않아서 논문지 발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니 도대체 모국어로 된 논문은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영어로 된 논문만을 실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어떤 철학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중하위권 대학의 경우 대학 순위를 10등 20등 올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결과에 관심을 가져 줄까요?

    그보다는 오히려 한 대학이 가지고 있는 교육과 연구에 대한 철학을 공고히 하고, 대학의 비전을

    널리 홍보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요?

    대학의 순위보다는 대학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자신만의 브랜드로 승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biotechnology.tistory.com 바이오매니아 2011.07.09 18:32

      감사합니다. 평가란 그 대상의 능력을 측정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경쟁이 심하면 평가지표에 맞춰서 그 부분만 발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300개가 넘는다는데 어느 한 군데도 우린 그런 것보다 우리 길을 가련다, 이러고 나오는 곳이 없는 것이 좀 안타깝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