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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까마귀 온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수원에 까마귀 떼가 나타났다. 2016년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에 첫 모습을 드러냈던 까마귀가 벌써 몇 년째 찾아든다. 울산이나 김제처럼 사방으로 너른 들녘에서 나락이나 지렁이를 먹던 까마귀는 밤이면 근처 나무숲에 잠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울산 태화강변 대나무숲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숲과 논을 오가며 겨울을 지낸 까마귀는 다음해 3월이면 어김없이 날개를 틀어 번식 장소인 북으로 향한다. 수원 까마귀도 그럴 것이다.

 

강남 갔던 제비는 삼월삼짇날쯤에 한반도를 찾는다. 붉은 목에 배가 흰 어미 제비는 부산히 벌레를 날라 서너 마리의 새끼를 먹여 살린다. 봄에 한국을 찾는 제비는 여름 철새이다. 겨울 철새인 까마귀는 시베리아나 만주에서 여름을 나고 한반도나 일본에서 월동한다. 사실 모든 생명체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기후도 온화한 절기에 맞춰 새끼를 키우려 한다. 이러한 생식의 계절성은 철새 진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새의 이동은 거의 전적으로 북반구에서 관찰된다. 온대기후에다 광활한 대륙에서 공급되는 식량이 겨울이면 줄어드는 탓에 다양한 종류의 새가 먹이를 찾아 남쪽으로 날아온다. 하지만 가볍고 정교한 추적장치가 발달하기 전까지 철새의 경로를 정확히 밝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제비가 온다는 강남이 어디인지 알게 된 것도 최근 일이다. 2019년 우포생태원 연구팀은 탐지장치를 단 새의 비행경로를 분석한 결과 제비가 제주도,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월동했다고 보고했다. 그렇게 제비는 1년에 약 1만4000㎞를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결과는 제비 한 마리에서 얻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에겐 국경이 없고 같은 새를 두 번 잡기란 결코 쉽지 않다.

 

1만종이 넘는 새 중 먹잇감이나 새끼 낳을 곳을 찾아 정기적으로 이동하는 개체는 얼추 4000종이 넘고 제비처럼 먼 거리를 비행하는 새도 1600종에 달한다. 그중 단연 백미는 툰드라 극제비갈매기다. 이들은 알래스카나 캐나다 북쪽 언저리에서 여름을 나고 겨울에 남극까지 날아간다. 북반구 겨울이 남반구에선 여름이다. 극제비갈매기는 매년 두 여름을 찾아 지구의 두 끝단을 하염없이 오간다. 떠날 때와 찾아갈 장소를 잊지 않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긴 비행을 앞둔 철새는 가볍고 장기간 보관에 유리한 지방질로 배를 채운다. 중간 기착지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는 며칠이고 잠도 자지 않은 채 대개 밤을 도와 비행한다. 새로 단장한 깃털이 상하고 닳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이는 빙하가 물러간 뒤 북으로 서식지를 넓혀간 조류의 생물학적 숙명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인공조명에 길을 잃고 유리창에 부딪쳐 죽는 새도 적지 않다.

 

추위를 피하거나, 같은 말이겠지만 먹이를 구하러 까마귀가 남하했다. 그중 일부가 화성이나 오산, 수원에 새롭게 터를 마련했다. 이제 봄이 오면 모든 까마귀가 한국을 떠나리라 예측하지만 사실 까마귀는 부분 이동 철새이다. 수원에 까마귀가 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2018년 생물학자 타운센드팀은 까마귀 49마리를 생포해 탐지기가 든 띠를 부착한 뒤 새의 동선을 파악했다. 미국 메인주 북쪽 여기저기서 알을 부화하고 새끼를 키우던 까마귀들은 결속력이 강하고 배타적인 소규모 가족 공동체를 이뤘다. 겨울이 오자 이들은 평균 571㎞를 날아 뉴욕 남부 올버니 근교에 대규모로 집결했다. 자세히 관찰한 결과, 늙거나 약한 까마귀 무리는 봄이 와도 남쪽 주거지에 줄곧 머물거나 짧은 거리만을 움직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비율은 거의 20%에 이르렀다.

 

수원 사례에서 보듯,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은 까마귀 떼가 도시로 몰려든다는 사실이다. 까치 무리에 섞여 까마귀는 쓰레기 봉지를 뜯고 고기 살점이 붙은 닭 다리를 탐닉한다. 이런 오작(烏鵲) 양동작전을 펼쳐 까마귀는 도시 쓰레기장 주변에서 영양소의 약 40%를 충당한다. 굳이 멀리 논두렁을 찾아 차디찬 흙에 발을 딛지 않아도 좋을 새로운 삶의 양식은 금방 까마귀 무리에 퍼진다. 열섬현상으로 겨울밤 기온이 올라간 것도 까마귀가 도시를 찾는 큰 이유다. 도심에는 포식자인 올빼미도 없다. 밝고 따뜻한 인간의 겨울 도시는 까마귀를 부른다. 도시에서 겨울을 나는 까마귀 수는 더더욱 늘 것이다. 지금도 도심 전깃줄을 횃대 삼아 어둠의 장막을 친 수천의 수원 까마귀가 일제히 묽은 똥과 진흙을 흩뿌린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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