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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음모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장이 운항 중 깜빡 졸아 비행기 사고가 났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꾸벅 존 바로 그 기장을 처벌해 조종간을 맡기지 않는 것만으로 장차 다른 기장이 조는 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항 일정이 과도해 휴식시간을 갖기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 살피고, 역할분담의 장벽이 높아 부기장이 기장을 돕지 못한 것은 아닌지를 조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책임자를 찾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책임질 누군가를 찾아 처벌하고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넘어가는 상황이 이어지면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팩트풀니스>에 나오는 다른 얘기다. 여전히 큰 문제인 말라리아에 대한 연구를 거대 제약회사가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수업 중 들려주자, 한 학생이 제약회사 사장의 면상을 한 대 갈겨주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사장 혼자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제약회사 이사들을 갈겨주는 것이 더 낫고, 이어서 이들의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회사에 투자한 스웨덴 은퇴기금 이사들이 얼굴을 얻어맞아야 할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은퇴기금이 투자한 이유는 바로 질문한 학생 할머니의 연금 때문이다. 결국, 말라리아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할머니 때문이다. 학생은 할머니를 찾아뵙고 할머니를 비난해야 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어떤 일이든 그 배후에 행위자가 있다는 믿음은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모두에게 장착된 생각의 모듈이라고 진화심리학은 말한다. 벼락은 누군가를 벌하는 하늘의 징벌이고, 봄비는 싹을 틔우기 위해 내린다. 결과가 있었으니 원인을 제공한 행위자가 있고, 행위자의 의도가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이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익숙한 오랜 사고 패턴이다. 행위자 가설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큰일이 생겼을 때 좋은 일이면 누구 덕이고, 나쁜 일이면 누구 탓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은 당시의 대통령 덕이고, 외환위기도 대통령 탓이다. 아니다. 복잡한 세상사 대부분은 누구 탓도, 누구 덕도 아닌, 연결된 모두의 행위의 결과다.

 

행위자 가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음모론으로 이어진다. 과거 자연재해의 행위자인 하늘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악한 누군가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음모론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음모론을 자주 만들어, 다른 이들의 오래된 생각의 모듈에 호소한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과관계의 사슬이 만들어낸 현재의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때, 누군가 탓할 사람과 조직을 찾아 비난하는 것은 음모론을 믿는 이의 마음의 평정에만 도움이 될 뿐이다.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백신이 사실 위험한데 안전하다고 사람들을 속이는 나쁜 이들이 있다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왜 그럼 그런 얘기가 신문에 보도되지 않느냐고 되물으면, 언론도 모두 한통속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과학자의 얘기도 통하지 않는다. 왜? 과학자도 모두 저쪽 편이니까. 세상의 참모습이 자기가 믿는 모습과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옳고 세상이 그르다고 믿으려 한다. 하지만, 나쁜 마음을 먹고 음모를 꾸미는 사악한 행위자가 없어도 세상은 잘못될 수 있다. 브라질에서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 나비를 잡는다고 토네이도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얽히고설킨 연결 관계가 아닌, 연결망 속 작은 구성요소에서 원인을 찾는 엉뚱한 상상이 음모론이다.

 

악당이 아니라 시스템에 주목하는 것이 미래의 문제를 방지하는 더 좋은 방법이다. 예상치 못한 폭우로 큰 홍수 피해가 일어났을 때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책임질 누군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다음 홍수에 대비해 제방을 쌓는 것이어야 한다. 세상은 악당과 영웅이 바꾸지 않는다. 아니, 우리 모두가 악당이자 영웅이다. 평범한 여럿의 연결된 노력이 세상을 바꾼다. 음모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