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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꼼짝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영화에서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할 때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는 모양을 우리는 ‘꼼짝’이라고 한다. 용의자가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이 신분증일 수도, 권총일 수도 있다. 어떤 행동도 허락하지 않는 “꼼짝 마”로 불확실성의 여지를 아예 없애는 것이 낫다. 물리학자인 내게 ‘꼼짝’의 크기는 위치 정보의 불확실성이다.

 

자연이 허락한 가장 낮은 온도가 절대영도다. 섭씨온도 눈금으로 영하 273.15도에 해당하는 낮은 온도다. 유한한 온도에서 기체분자는 마구잡이 열운동을 해서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 절대로 0보다 작을 수 없고, 따라서 기체의 평균 운동에너지에 비례하는 절대온도도 절대로 0보다 작을 수 없다. 온도를 점점 낮추는 과정을 이어가면 결국 고전역학을 따르는 기체분자의 운동에너지가 0이 되는 절대영도에 도달하게 되고, 이보다 더 낮은 온도는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거꾸로 절대온도의 상한은 없다. 기체분자의 운동에너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값은 한계가 없다는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온도에 바닥은 있어도 천장은 없다.

 

열역학의 발전 초기, 현실의 여러 기체의 부피를 일정한 1기압의 대기압에서 온도를 바꿔가면서 측정한 실험이 있다. 넓은 온도의 영역에서 온도가 낮아지면 기체의 부피는 온도에 대해 직선의 함수꼴로 줄어드는데, 이 직선을 연장해서 기체의 부피가 0이 되는 온도를 추정하면, 산소나 질소 등 어떤 종류의 기체를 가지고 실험해도 같은 온도에서 부피가 0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없다고 가정한 것이 이상기체다. 이상한 기체가 아니라 이상적인 기체라는 뜻이기는 하지만, 이런 이상기체는 현실에는 없으니 이상한 기체라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상기체의 분자가 한곳에서 꼼짝 못하게 하는 온도가 바로 절대영도다. 절대영도에서 이상기체의 부피는 0으로 수렴하고, 이상기체의 분자는 운동에너지가 0이 되어 꼼짝달싹 못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온도에서 압력을 주어 풍선의 부피를 점점 줄여 가면, 기체분자가 관찰될 수 있는 위치의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큰 풍선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기체분자는 그 공간 안 어디서나 발견될 수 있어 위치의 불확실성이 크지만, 풍선의 부피를 크게 줄이면 당연히 위치의 불확실성도 큰 폭으로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풍선의 부피가 0으로 수렴하는 극한에 도달하면, 모든 기체분자는 좁은 공간 안에서 꼼짝 못하는 상태가 된다. 풍선의 부피를 줄이는 여러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풍선 안 기체의 온도가 압축의 과정에서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이 바로 등온압축이다. 등온압축으로 부피가 줄어들면 기체의 압력은 부피에 반비례해서 거꾸로 늘어난다. 바로 유명한 보일의 법칙이다. 압력은 힘을 면적으로 나눈 것이어서, 작아진 풍선 안 높은 압력으로 기체분자는 더 큰 힘으로 풍선을 바깥으로 밀어내려 한다. 꼼짝 못하게 하려면 밖에서 더 큰 힘으로 강제해야 하고, 이렇게 꼼짝 못하게 된 내부는 밖을 향해 더 크게 반발한다.

 

양자역학을 따르는 입자 하나도 위치의 불확실성 정도를 줄일 수 있다. 방법도 간단하다.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더 정확히 측정하면 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위치의 불확실성 정도가 운동량의 불확실성 정도와 서로 반비례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위치의 불확실성을 줄일수록 운동량의 불확실성 정도는 거꾸로 늘어난다. 정확히 한 위치에서 측정한 입자는 얼마든지 큰 운동량을 가질 수 있어서, 다음 측정 때 도대체 어디에 있을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공간상 한 점에서 관찰한 입자는 다음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된다.

 

꼼짝하지 못하게 한다고 꿈쩍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꼼짝하지 못하게 하면 내부의 압력이 커져 더 큰 반발력을 만들어 내고, 양자역학을 따르는 입자는 운동량의 불확실성이 늘어나 다음에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게 한다. 강한 힘으로 강제해 꼼짝하지 못하는 사회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5월 광주를 기억하며 미얀마를 생각한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