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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김범준의 옆집물리학]‘투명’한 세상을 기다리며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깊은 물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기 어려운 사람의 속마음을 비교한 속담이다. 사람의 몸은 물과 달라 가시광선을 투과하지 못하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물론 사람 몸이 투명해도 그 안 속마음이 눈에 보일 리 없지만.

 

한 길 사람 속을 보는 방법이 있다. 파장이 짧은 엑스선을 이용하면 조직마다 다른 투과율 차이를 이용해 몸 안을 흑백사진으로 볼 수 있다. 유리가 투명하다 하지만 이것도 보는 방법에 따라 다르다. 차 안에서 앞 유리를 통해 맨눈으로 원자폭탄 실험을 바라보았다는 리처드 파인먼의 일화가 기억난다. 우리가 눈으로 볼 때 이용하는 가시광선에 투명한 유리도 짧은 파장의 전자기파는 잘 투과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물도 그렇다. 가시광선으로 보면 투명한 열 길 물속도 자외선이나 적외선에는 불투명하다. 물의 광학적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태양은 가시광선 영역대에서 가장 큰 복사에너지를 지구로 보내고, 따라서 지구 식물의 광합성은 이 영역의 빛을 주로 이용한다. 또 물은 가시광선 영역의 전자기파를 잘 투과하니, 물속 식물은 태양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생명이 물에서 처음 시작할 수 있었던 과학적 근거다. 열 길 물속이나 한 길 사람이나, 한 치 두께 유리나,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투명도가 달라진다. 투명하게 잘 보려면 보는 방법을 잘 고를 일이다.

 

열 길 물과 한 길 사람을 비교한 속담은 빛의 투과율에 관한 물리학 얘기가 당연히 아니다. 그래도 흥미로운 것이 있다. 광학적 물성이 정의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왜 우리는 사람의 시각 인식에 비유하는 걸까? 영화 <아바타>에서 본 멋진 대화가 떠오른다. 사랑에 빠진 외계인 여성이 인간 남성의 눈을 직시하며 “I see you”를 말하는 장면이다. 한 길이라는 길이의 단위로는 결코 측정할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방법은 가시광선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이다.

 

투명한 호수도, 혼탁한 호수도 있다. 깊지 않은 호수의 투명도에 대한 이야기를 마틴 셰퍼의 <급변의 과학>에서 읽었다. 투명한 물은 바닥까지 햇빛을 전달해 수생식물이 잘 자라고, 수서곤충과 물고기 등 수많은 생명은 이에 의지해 살아간다. 투명한 호수에 유입된 유기물은 건강한 생태계가 분해해 맑은 물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현재의 투명은 미래의 여전한 투명을 가능케 한다. 혼탁한 호수는 거꾸로다. 바닥에 햇빛이 잘 닿지 않아 생태환경이 만들어지기 어렵고, 현재의 혼탁은 미래의 혼탁으로 이어진다.

 

호수에는 투명하고 혼탁한 두 종류의 안정적인 평형상태가 있다. 투명한 물은 어느 정도의 오염에도 계속 투명도를 유지하지만, 한번 혼탁해진 물은 다시 투명해지기 어렵다. 이런 경우, 하나에서 다른 평형상태로 옮겨가는 상전이는 급격히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책의 우리말 제목이 <급변의 과학>인 이유다. 유입되는 유기물을 조금 줄인다고 혼탁한 호수가 투명한 호수로 천천히 바뀌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나긴 노력이 쌓이면 변화는 갑자기 올 수 있다. 어렵게 도달한 투명한 평형상태는 웬만한 양의 오염물이 유입되어도 이를 극복해 투명한 상태를 유지한다.

 

잘 몰랐던 혼탁한 세상이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고 있다. 더 많은 정보를 가져 힘도 더 센 이들이 모인 어두운 세상 구석에서 온갖 썩은 악취가 풍겨 나오는 느낌이다.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몸살을 보며 미래의 투명한 세상을 애써 상상한다. 혼탁한 세상을 투명한 세상으로 바꾸는 노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악취가 심해도 꼭 필요한 일이다. 투명해진 호수가 오염을 스스로 이겨내 투명성을 유지하듯이, 투명한 사회는 내부 자정효과를 만들어 편법과 불공정이라는 미래의 혼탁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투명해진 세상 곳곳을 비추는 밝은 빛은 어두운 그늘을 없애, 세상이 계속 투명성을 유지하게 만들 수 있다. 썩은 바닥이 드러나 혼탁해진 지금의 세상을 보며, 미래에 올 투명한 세상을 기다린다.

 

잘 봐야 바꿀 수 있다. 구석구석을 살피는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투명해진 세상은 미래의 오염도 막아낸다. 안 보이면 결국 썩게 된다. 현재의 악취에 눈감고 코 막지 말고, 더 깊이 드러내 더 투명해진 세상이 더 빨리 오기를. 힘 있어 더 가진 이들의 음울한 한 길 사람 속도 열 길 물처럼 투명하게 드러나는 미래를 미리 손꼽아 기다린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