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학오디세이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순환’이 만든 혁명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elestium)’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회전 혹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환을 뜻하는 영어 revolution에 해당하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 있다. 지구중심설(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지동설)로 인간이 바라본 우주의 모습이 급변하게 된 것을 과학사에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한다. 태양이 중심인 행성 운동의 순환(revolution)이 만든 혁명(revolution)이다.

 

머리를 들어 올려본 하늘에는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것이 많다. 밤에 본 달의 모습은 약 한 달을 주기로 다시 반복한다. 우리가 한 달을 한 달이라고 하는 이유다. 유심히 관찰하면 해가 아침에 뜨는 방향과 정오에 바라본 해의 높이는 일 년을 주기로 또 규칙적으로 되풀이된다. 우리가 한 해를 한 해라고 하는 이유다. 봄에 씨 뿌려 가을에 거두는 농사도 그렇다. 올해 뿌린 씨가 작년 뿌린 씨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봄에 뿌린 씨가 무럭무럭 자라 가을에 거두는 벼의 모습도 한 해를 주기로 반복한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낳고 그렇게 낳아 기른 아이가 세월이 지나 다음 세대의 부모가 된다. 세상 속 많은 것은 순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지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순환하지 않는 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열역학과 통계역학에 자주 등장하는 열기관도 순환한다. 한 번의 순환 과정 중 밖에서 열을 전달받고 그 열의 일부를 유용한 일의 형태로 바꿔 외부로 전달하는 것이 열기관이다. 열기관이 100의 내부에너지로 시작해 한 번의 순환에서 내부에너지가 1씩 줄면 100번의 순환 뒤에는 밑천이 떨어져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처음과 나중이 다르면 순환을 지속할 수 없어서, 우리는 매번 다시 처음 상태로 돌아오는 열기관만을 이용할 수 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한 걸음 내디뎌 도달한 곳에서 내 몸이 출발한 곳과 다르면, 머나먼 천리길 여정을 한 걸음의 연속 과정으로 걸어갈 수 없다. 멀리 가려면 매번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팔을 움직여 물체를 들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먹은 밥, 밥을 지은 쌀알에 닿고, 결국 태양빛으로 시작한 광합성에 도달한다. 이 글을 내가 쓰는 것도 결국 태양이 있어 가능하다. 열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나도 태양에너지로 작동하는 열기관인 셈이다. 태양에서 유입된 에너지가 지구 위에서 이리저리 전달되며 세상 만물의 변화와 순환을 만든다. 지구의 기온 상승은 들어온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보다 많기 때문이 아니다. 지구에 들어온 복사에너지는 온갖 열역학적 과정을 거쳐 다시 밖으로 나가기 전 대기권에 머문다. 대기 중 온실기체의 양에 무관하게 지구에 들어온 에너지는 지구에서 나가는 에너지와 같지만, 더 많은 온실기체는 더 높은 온도에서 지구의 열평형을 만든다. 산업혁명 이후 끊임없이 인간이 배출한 온실기체로 계속해서 오르는 지구의 기온은 미래의 지구를 새로운 열평형 상태로 몰아갈 것이 분명하다. 높은 온도에서 이루어진 미래의 평형상태에서도 지구는 지속된다. 하지만 그 상태로 지구를 몰아붙인 우리 인간이 온도가 오른 미래에 지금처럼 생존하기는 어렵다.

 

지속 가능성이 요즘 중요한 화두다. 먼 미래에도 현재의 우리 모습이 지속되려면 순환이 필수다. 1%의 경제성장률이면 많은 이가 경기침체를 말하지만, 이렇게 낮은 성장률도 1000년을 이어가면 무려 2만배로 경제가 성장한다. 경제든, 인구든, 영원한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먼 미래를 상상한다. 사람들의 삶의 질을 경제성장률로 측정하는 것이 오래전 과거가 된 미래, 양적인 성장 없어도 모든 이의 행복이 지속되는 미래를 떠올린다. 배출한 만큼 흡수하고, 만든 만큼 소비하는, 모든 영역의 넷제로 없이 인류의 오랜 지속은 불가능하다.

 

우리 앞에 놓인 미래가 지금처럼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정치 시스템의 크나큰 혁신이 당장 필요하다. 모든 것이 지속되는 순환의 미래를 위해 성장에 익숙한 우리 삶의 모든 방식을 바꿔야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순환(revolution)이 만든 혁명(revolution)을 다시 기억한다. 순환에 기반한 변혁이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바뀌지 않으려면 바꿔야 한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