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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과학교육, 무엇을 담느냐가 핵심

2018학년도부터 초중등 교육과정이 크게 바뀔 예정이다. 정부안의 핵심은 문이과 구별을 없애는 통합형 교육과정이다. 미래 지식기반 융합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 학생들이 다양한 시각과 지식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를 위해, 과학교육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듣는 ‘통합과학’이 차세대를 위한 기초 과학소양 제공을 담당하게 되고, 전문적인 심화 내용은 기성세대의 귀에 익숙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교과목이 나누어 맡게 된다.

정부안의 전체적인 구도는 바람직해 보인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받게 될 과학교육에 문과적 내용과 이과적 내용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교육과정을 모든 학생이 배우는 공통 부분과 학생들마다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들을 수 있는 심화 부분으로 나눈 것 역시,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을 높이고 대학처럼 상급 교육기관에 가서 필요한 지식과 인지능력을 선택적으로 계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물론 실제 교육 현장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상당할 것이다. 현재도 중등 교육과정에서 원칙적으로는 학생들마다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학교마다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과목을 제한하거나 심한 경우 거의 지정하다시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선택과목의 교사를 채용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거니와, 수능이나 대학입시와 얼마나 연계가 가능한지에 따라 특정 과목에 대한 학생들과 학교의 선호가 극적으로 영향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안의 구체적 내용을 놓고도 논란이 많다. 제일 쟁점이 되는 사항은 정부가 공언한 20% 학습량 감축 부분이다. 일부 학부모 단체와 시민단체는 학생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새로운 교육 과정에서 학습량 감축이 가시적으로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비해 과학계는 대체적으로 현재도 제대로 된 대학 교육을 받기 부적합한 수준의 학생이 다수 입학하는 상황에서, 현재보다 20% 교육 내용을 줄인다면 과학기술 혁신에 크게 좌우되는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크나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논쟁의 초점이 잘못 잡혀 있다. 우선 교과서 내용의 양과 학생의 학습량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 관계가 없다. 현재처럼 거의 모든 학생이 일류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한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교과 내용을 아무리 줄여도 학생들의 학습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아무리 교과서를 쉽게 만들어도 학습자를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 분류해야만 하는 현 상황에서는, 쉬운 내용을 엄청나게 어렵게 꼬아놓은 (비교육적) 문제를 출제해서 그 ‘난관’을 모두 극복한 학생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교과 내용을 줄이면 학생들이 공부에 덜 부담을 느끼고 보다 자유롭게 학창 시절을 즐기게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 환상이다.

그럼에도 현재 과학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과학 성적은 전체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지만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흥미도는 늘 바닥에 머문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는 분명 현재 과학 교육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 교육과정도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와 비교하면 실험도 강조되고 탐구 활동도 많이 추가되는 등 좀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개선되었다. 그럼에도 현대 과학적 세계관의 근간을 이루는 양자역학, 통계역학, 상대성 이론 등의 내용이나 빅뱅 및 인플레이션 우주론, 별의 진화 및 우주의 미래, 나노과학기술, 분자생물학 등의 내용은 빠져 있거나 간단하게만 서술되어 있다. 또한 과학 연구와 사회와의 관계,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해 시민이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와 같은 성찰적 내용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내용은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 시민으로서의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공통 과학 소양에 해당된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까지 과학을 싫어하던 학생들도 대학에 들어와 좋은 교양과학 강의를 통해 과학의 묘미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이런 방식으로 과학을 ‘재미있는’ 과목으로 만들 수도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달 10일 과학의 날을 맞아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자 우표'를 발행했다. (출처 : 경향DB)


이런 내용이 과학 교과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모든 이를 위한 ‘통합과학’에는 과감하게 필요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 중인 과학 교육과정 개정 작업의 핵심은 어떤 내용을 새로운 교육과정에 담을 것인가이지 얼마나 줄일 것인지가 아니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