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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운동하다 손가락을 다쳤다. 러닝머신에서 신나게 팔을 흔들며 뛰다가 손잡이에 왼손을 부닥쳤다. 약지랑 새끼손가락이 부드득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마치 손가락 관절을 꺾으면 뚝 하고 나는 소리랑 비슷해서 사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가니 그제야 손가락이 붓기 시작하고 아프기 시작했다. 꽤 아팠지만 손가락뼈가 부러졌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뼈가 부러지면 정신을 잃고 쓰러질 정도로 아프지 않겠나. 마침 바쁜 일이 몰려 있어서 집에서 붕대로 고정하고 다니다가 열흘 만에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눈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손가락뼈가 두 동강 나 있었다. 석고 깁스를 하고 3주를 보냈는데 이 작은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막연히 상상하던 고통과 실제 느끼는 고통이 참 다르다는 것이었다. 손가락 중에서도 맨 끝 두 개인데 정상적인 모습과 기능으로 돌아오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의외로 주변에 손가락을 다친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경험이 제각각이었다. 철심을 박아 몇 주 지냈더니 손가락이 굳어버렸다느니, 그냥 놔두니까 손가락 모양이 어그러져버렸다느니. 의사들 중에도 수술을 강력히 권장하는 경우가 있었고 수술과 보존치료 중에서 환자가 선택하게 놔두는 경우도 있었다. 골절 치료는 당장의 처치만이 아니라 재활이 중요한데 재활의 고통이 부상의 고통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같은 골절 치료 후에도 회복 정도가 크게 다른 것은 연령, 나이, 성별에 따른 물리적인 회복 속도의 차이만이 아니라 재활의 고통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둘째 애가 자전거 사고로 쇄골이 부러지면서 수술을 받았다. 정형외과를 세 군데 들러 의견을 들어본 후 결국 수술하기로 했는데 사고가 난 금요일부터 수술이 잡힌 월요일 사이 인터넷을 폭풍처럼 헤매서 비슷한 사례와 논문을 찾아보았다. 쇄골 골절 수술은 농담으로 정형외과 의사들이 심심하면 한다고 할 정도로 흔한 수술인데 사실 쇄골이 워낙 저절로 잘 붙는 뼈라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수술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둘째 애가 이 웬만한 경우에 속한 것이었다. 국내외 골절학회 논문을 수십 편 내려받아 읽다보니 엑스레이랑 CT스캔에 나온 영문 약자들이 낯익고 수술 동의서 쓰는 와중에 간호사가 설명해주는 수술 과정과 부작용도 다 읽어본 내용이었다. 쇄골 골절에 관한 한 돌팔이 의사 수준이 되어 있었다.


버나드 라운, 예프게니 차초프_경향DB


수술하기로 해놓고 여전히 주저하던 차에 금요일 진찰한 의사가 수술복을 입고 나타났다. 내가 여전히 망설이는 걸 눈치챘는지 이런 얘길 꺼냈다. 자기도 며칠 전에 애가 갑자기 맹장염에 걸려 맹장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비로소 자식이 수술할 때 부모의 심정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고. 금요일 진찰 때에는 이런 사소한 수술 갖고 왜 호들갑을 떠는지 기막혀 하는 표정이었는데 월요일에는 똑같은 의사가 눈빛이 달라진 것이다. 매일 살을 찢고 빨간 피를 보는 의사의 입장이 아니라, 아무리 쉬운 수술이라도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말을 건넨 것이었다. 순간 확신이 섰다. 이런 마음을 이해하는 의사라면 믿을 수 있겠다. 설사 의료사고가 난다고 해도.

의사가 고통을 치료하는 전문가이지만 환자와 그 가족은 고통을 경험하는 전문가이다. 의사는 수많은 임상 통계를 통해 어떤 병에 어떤 치료 방법을 쓸 것인지 도출하지만, 환자는 아무리 확실한 진단과 치료 방법도 자신에게는 어긋날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사람마다 물리적인 고통을 느끼고 치료 과정의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고통의 전문가인 환자의 말을 듣지 않고는 아무리 과학적인 통계와 기술과 장비도 그 고통을 제대로 가늠하고 치유할 수 없다.

하버드대 심장병 명예교수이자 198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버나드 라운은 수많은 의과대학에서 필독서로 읽히는 <치유의 예술을 찾아서>라는 저서에서 의학적인 기술보다 의사의 언어가 환자에게 희망을 불어넣음을 새삼 강조한다. 실제로 환자의 언어를 듣는 의사가 치료의 성공률도 높다. 그런데 요즘 병원에는 수천만원짜리 의료장비를 들여놓았지만 정작 환자의 눈을 보며 환자가 얘기해주는 고통을 이해하기보다 의료기기에 나온 숫자를 컴퓨터에서 확인하는 걸 진단이라고 착각한다. 물론 이것은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라운의 말처럼 현대 의학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의료기술과 제도가 고통을 경험하는 전문가의 말을 점점 무시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소영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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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