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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최근 미국이나 영국에서 사람의 몸속에 베리칩이라 불리는 전자칩을 심는 일이 크게 늘어나면서 논쟁이 일고 있다. 그동안 애완용 동물이나 가축들의 관리를 위해 전자 인식표로 사용되던 이 칩을 이제 인간의 몸속에도 심고 있기 때문이다. 베리칩(verichip)은 ‘확인용 칩’(verification chip)의 약어이며 무선주파수 발생기인 RFID 칩의 일종으로 생체조직에 심을 수 있도록 쌀알 크기 정도로 만들어져 있다. 그런 까닭에 주사기를 통해 간단하게 인체에 주입할 수 있으며, 별도의 제거 수술을 받지 않는 한 몸속에 영원히 남게 된다.


생체주입형 무선인식(RFID) 마이크로칩 (서울=연합뉴스) 애완동물의 건강상태, 혈통, 소유자 정보 등을 담아 몸에 삽입하는 생체주입형 무선인식(RFID) 마이크로칩 모습. 연합뉴스


이 칩에는 개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전자 정보 또는 고유 번호가 기본적으로 저장돼 있다. 하지만 이 칩은 무선으로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개인 정보가 저장된 외부의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는 순간 이 칩을 통해 개인의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신분에 관한 신상정보뿐 아니라, 계좌 등 금융거래 정보, 유전자와 같은 생체 정보, 질환 및 진료 기록과 같은 의료 정보 등을 모두 이 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GPS와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든 개인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이런 연유로 이 칩은 인간의 몸에 이식되어 개인의 신분확인, 건강관리, 자산관리 등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가령 미 CIA에 근무하는 김씨는 보안지역을 통과할 때 더 이상 신분증, 지문 또는 홍체 인식 없이도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다. 보안지역에 설치된 스캐너가 김씨의 몸속에 있는 베리칩으로부터 무선 전자신호를 받아 자동으로 김씨의 신분을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쇼핑하기를 좋아하면서 줄서기는 몹시 귀찮아하던 박씨는 더 이상 계산대 앞에 길게 줄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됐다. 계산대 옆 출구를 나서는 순간 그곳에 설치된 스캐너가 박씨의 신분을 확인함과 동시에 박씨가 구매한 물품들에 심어진 RFID칩으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물품 정보를 확인해 곧바로 자동으로 전자결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 혈압과 심장질환으로 병원 출입이 잦은 노인 이씨는 이제 진료를 받기 위해 거쳐야 할 복잡한 등록 절차 없이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씨 몸에 내장된 베리칩을 스캔함으로써 유전정보를 포함한 생체정보 그리고 그동안의 진료 기록들을 즉각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상 술자리가 많은 중견기업의 CEO인 최씨는 최근 모 클럽의 VIP고객으로 등록했다. 그 클럽의 VIP고객은 입장에서부터 제공 서비스 그리고 계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몸속의 베리칩을 통해 자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생활의 편의성 때문에 이 칩을 이식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동전의 양면 가운데 한 면일 뿐이다. 동전의 다른 면에서 본다면 이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전자 감시로 나아갈 수 있다. 우선 개인의 고유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누구든 타인의 몸속에 심어있는 베리칩을 동의없이 몰래 스캔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개인의 중요한 모든 정보가 쉽게 유출될 수 있다. 이렇게 유출된 정보는 개인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거니와 차별을 강요하는 등 인간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데 충분히 악용될 수 있다. 가령 개인의 건강이나 병력 기록을 포함한 신상 정보의 유출은 개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다.



다음으로 개인의 사생활 역시 심각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높다. RFID칩은 본질적으로 식별장치이지만 GPS와 연결되는 경우 추적도 가능하다. 이럴 경우 이 장치를 인식할 수 있는 리더기 또는 스캐너가 설치된 곳을 지날 때면, 개인의 행적은 소리없이 추적되고 그 기록은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보들이 어떤 이유로든 특정 집단의 서버로 모이게 된다면 ‘빅 브러더’의 등장과 함께 개인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가 가능해진다. 베리칩을 몸속에 이식한 사람 누구이건 언제 어디에 있었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개인 정보를 수집해 감시할 수 있다.



베리칩 이식은 현재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언젠가 정부나 기업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강제로 추진할 수도 있다. 가령 기업의 경우 생산성 향상과 생산관리의 효율성 증대를 목적으로 자료 조사 차원에서 근로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이 칩을 통해 수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2010년 3월 미국 의회에서는 ‘건강보험개혁법’이 통과됐는데, 그 법안 내용 가운데 건강보험제도를 강하게 추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 국민에게 베리칩을 이식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013년까지 준비기간을 갖고 2016년까지 유예기간을 거쳐 2017년부터 강제로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명분이건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 수집과 일상적인 감시는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한다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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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