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481)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음모 한스 로슬링의 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장이 운항 중 깜빡 졸아 비행기 사고가 났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꾸벅 존 바로 그 기장을 처벌해 조종간을 맡기지 않는 것만으로 장차 다른 기장이 조는 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항 일정이 과도해 휴식시간을 갖기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 살피고, 역할분담의 장벽이 높아 부기장이 기장을 돕지 못한 것은 아닌지를 조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책임자를 찾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책임질 누군가를 찾아 처벌하고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넘어가는 상황이 이어지면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에 나오는 다른 얘기다. 여전히 큰 문제인 말라리아에 대한 연구를 거대 제약회사가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수업 중 들려주자, ..
똥 누는 시간 12초 새에게는 이빨이 없다. 껍데기에 탄산칼슘이 풍부한 알을 낳느라 이빨을 잃었다는 가설도 있고, 만드는 데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드는 이빨에 투자하는 대신 새끼를 빠르게 부화하고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키는 일이 새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가설도 등장했다. 최근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부리와 이빨을 가진 약 1억년 전 익티오르니스 공룡의 화석을 자세히 분석한 뒤 뇌를 발달시키기 위해 새가 턱의 근육과 이빨을 포기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무를 파고 벌레를 먹거나 껍데기를 깨고 연한 조갯살을 먹는 데 부리만으로도 충분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에게는 방광도 없다. 물통을 몸 안에 싣고 다니면 비행하는 데 에너지가 더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들의 콩팥은 단백질 대사 과정의 부산물인 질..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닮은꼴인 코로나 진단과 알츠하이머 진단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일을 미루다가 큰 노력을 들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의미다. 미뤘을 때 문제가 가장 심각해지는 것 중 하나가 건강이다. 더욱이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비용이 늘어나면서 병을 사전에 또는 조기에 진단하고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병의 진행을 사전에 막는 것을 예방의학이라고 한다. 예방의학이 가능하려면 조기진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알츠하이머병처럼 신경세포들이 서서히 죽어가, 나중에야 증상이 뚜렷해지는 신경퇴행성 질환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을까? 리 간(Li Gan) 등이 2018년 출간한 네이처 신경과학 논문에 따르면, 신경퇴행성 질환에서는 단백질들이 비정상적으로 뭉치는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므로 비정상적으로 뭉치는 단백질을 ..
대사공학과 합성생물학의 미래 빨간 장미, 노란 장미, 분홍 장미, 흰 장미 등 장미는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세시대부터 수많은 육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란색의 장미는 만들 수가 없었기에 파란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었다. 염색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파란 장미들만 있던 상황에서, 1990년대 일본의 산토리사와 호주의 플로리젠사가 파란 장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피튜니아에서 파란색을 낼 수 있는 유전자를 장미에 도입하고 색에 영향을 미치는 액포의 pH 등을 조정하는 조작을 통해 2004년 드디어 세계 최초로 파란 장미를 만들었다. 파란 장미의 꽃말이 ‘기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생명체의 대사회로를 설계하고 만들고 바꾸어 원하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는 공학을 대사공학이라고 한다. 1990년대 ..
[요리에 과학 한 스푼]때론 채움보단 비움 아내가 낙지볶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까다롭게 고르고 골랐겠지만 아무래도 해산물이다 보니 스멀스멀 퍼지는 비린내는 어쩔 수 없습니다. 낙지를 다듬던 아내가 밀가루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밀가루를 뿌리고 낙지를 다듬자 신기하게도 비린내가 사라집니다. 밀가루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구멍이 많이 존재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다공질(多孔質) 구조라 하는데, 밀을 제분하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며 생긴 작은 구멍들입니다. 이 다공질 구조는 낙지 표면의 수분을 흡수하고, 이때 트리메틸아민(TMA)과 같은 비린내의 원인 성분들 또한 함께 제거됩니다. 마치 깊은 함정에 빠진 것처럼 작은 구멍 안으로 들어간 해로운 성분들은 그 안에 갇혀 버립니다. 미세한 구멍들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해 자세..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꼰대 세상에는 두 종류의 꼰대가 있다. 꼰대라는 것을 아는 꼰대와 그것도 모르는 꼰대. 두 번째가 더 문제다.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아무거나 다 시켜! 난, 짜장면!”을 외치는 직장 상사와 비슷하다. 훌쩍 50대 중반에 들어선 나도 물론 꼰대다. 주변 대학 교수 중 꼰대가 특히 많다. 꼰대에도 중증과 경증이 있다면, 교수는 분명한 중증 꼰대다. 법원 판사, 병원 의사도 마찬가지다. 정보 비대칭성이 커 상대가 반박하거나 토 달기 어려운 직업일수록 꼰대가 되기 쉽다. 가만히 속으로 삭이며 틀린 말을 참고 들어줄 뿐인데, 상대가 가만히 있으니 자기가 옳은 말만 한다고 믿는다. 결국 꼰대라는 안정적인 고정점(stable fixed point)에 도달한다. 꼰대가 많은 회의는 코미디 코너 ‘봉숭아 학당’을 닮았다..
빼앗긴 봄날의 꿈 머잖아 알알이 붉은 열매를 매단 채로 산수유꽃이 필 것이다. 꽉 닫혀 있어야 할 ‘북극 냉장고’ 문이 지구온난화로 슬쩍 열리면서 미국 텍사스주에 보기 드문 폭설이 내렸지만 그래도 꿋꿋이 봄은 온다. 봄의 출현을 알리듯 꽃봉오리가 벌고 노란 우산을 펼친 듯 20여개의 꽃잎을 일제히 드러내는 산수유의 모습은 가히 장관(壯觀)이다. 동아시아 원산인 산수유는 지구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후 거의 7000만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꽃을 피워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잎 없이 꽃을 피운다. 산수유처럼 광합성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성질 급한 식물들은 안타깝게도 작년에 쌓아둔 식량을 덜어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른 봄꽃을 찾는 꿀벌들은 먼 거리를 움직이며 적은 양일망정 꿀을 모은다. 곤충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잠자는 뇌 꿈처럼 멀기만 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코로나19와 함께 갑자기 찾아왔다. 저녁 모임이 줄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가라앉으면서 고요하게 집 안에 머물다 일찍 잠드는 날이 늘었다. 잠자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앙투안 아다만티디스 등의 2019년 논문을 참고하여 수면에 대해 알아보자.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한 느낌을 주는 수면제를 만들 수만 있다면 떼돈을 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약이 조만간 등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뇌가 잠들고 깨어나는 메커니즘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한 이론에서는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마치 스위치처럼 조절된다고 본다. 시상하부에서 수면을 촉진하는 신경세포 그룹과, 깨어남을 촉진하는 신경세포 그룹이 있는데, 이 둘이 서로 경쟁하면서 잠자..
배양육과 대체육 나는 2018년 1월 말 다보스포럼 중 저녁식사를 겸한 아주 흥미로운 세션에 토론주재자로 참여하였다. 그날 제공된 음식은 고기 파스타였는데 여기 들어간 고기는 미국 임파서블푸드사의 대체육이었다. 임파서블푸드의 CEO 패트릭 브라운이 이 식물성 단백질 성분으로 만들어진 대체육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고 맛을 보았다. 맛과 식감이 실제 고기와 상당히 유사하였다. 예전에 맛이 없고 식감도 영 아니올시다였던 식물성고기와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세션 종료 후 브라운 박사에게 육류 맛을 내기 위한 핵심이 뭐냐고 물었더니 사람을 포함한 동물에서 산소 전달에 필수적인 헴(heme)이었다고 한다. 임파서블푸드사는 대두로부터 헴을 포함한 레그헤모글로빈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를 클로닝하여 효모에 도입해 생산하였다. 이렇..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역설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 우리의 직관과 상식에 어긋날 때, 이를 역설이라 한다. 결론은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허점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역설이 더 재미있다. 역설(逆說)의 영어 단어 paradox에서 para는 반대 혹은 비정상을 뜻하고 dox는 의견 혹은 생각이라는 뜻이다. 역(逆)은 para에, 설(說)은 dox에 일대일 대응한다. 흥미롭게도 para는 가깝다는 뜻도 있다. 역설은 참에 가까워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참은 아닌, 직관에 반하는 주장이다. 얼핏 봐서는 틀린 것을 찾기 어려운. 학생 때 들은 재미있는 역설이 떠오른다. 흰 돌, 검은 돌, 많은 바둑알이 마구 섞여 있는 통에서 내가 몇 개의 바둑알을 집어내도 이들 모두가..
[요리의 과학 한 스푼]미생물과 요리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화덕에 넣고 구워야 할 신선한 밀가루 반죽을 그만 밤새 방치해두었습니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반죽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요리사는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반죽으로 빵을 한번 만들어보기로 했는데 그 결과는 대성공.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풍미와 부드러운 식감은 누군가 마치 마법을 부린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빵이라 부르는 요리는 수천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법사의 정체는 도무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작았기 때문입니다. 17세기 현미경이 발명된 뒤 비로소 발견된 이 마법사를 우리는 미생물이라 부릅니다...
행복한 숨 쉬기 서해가 지척인 남도의 들녘에 어린아이가 바람을 맞고 있다. 고개를 들고 지그시 눈을 감은 아이는 이내 손바닥을 편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천천히 반복한다. 약 20년 전 미국으로 이사 가느라 아버지 산소에 잠시 들렀을 때 두 돌배기 아들의 모습이다. 봄뜻이 완연했고 대도시와 사뭇 다른 시골 공기의 신선함을 어린아이도 몸소 만끽했음에 틀림없다. 행복하게 숨을 쉬는 일은 내게 바로 저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코로나19가 해를 넘기면서 유모차 비닐 덮개 안에 마스크를 쓴 젖먹이들을 간혹 보게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미안하기 짝이 없다. 아직 발걸음도 채 떼지 않은 저 아이들 세대에게는 숨을 잘 쉬는 일의 절박함이 더 커질 것이다. 인간은 보통 1분에 약 17번 숨을..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인공지능의 윤리 인공지능의 활용이 늘어나면서 윤리 문제도 잦아지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고, 작년부터 ‘네이처’에는 표정 인식에 대한 논의가 자주 보인다. 표정은 감정을 나타낸다고 여기곤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으로 표정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 특정한 이슈에 대한 입장, 법정 판결,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표정에서 정말 감정을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모든 문화권에서 동일하다는 가정이 한때는 주류였지만, 그렇지 않다는 연구도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표정을 통한 감정 표현은 상황과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지난달 코웬(Cowen) 등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탄소중립 추진 전략 전 세계는 기후변화를 넘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온실가스 감축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탄소중립(net zero) 정책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 미국, 중국, 일본 등 70여개국이 2050년 혹은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도 지난해 10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하고 12월에는 정부의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세계 각국이 이렇게 선언했지만 현재 석탄, 원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의존한 에너지 소비와 산업 구조를 보면 이를 달성하기가 만만치 않다. 혹자는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말을 하나 만들자면, ‘탄소 거의 중립(almost net zero)’이라도 달성하게 되면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풍경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2015년 드라마 에서 본 명대사다. 같은 사람이어도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위치가 달라지면 세상을 보는 눈도 변한다는 의미다. 한 사람이 보는 풍경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 누적된 삶의 경험이 천양지차인 두 사람이 보는 풍경의 차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도 떠오른다. 참과 거짓을 가르는 기준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제각각 다른 기준을 갖는다는, 진리의 상대성에 대한 주장이다. 프로타고라스가 한 이 말에 등장하는 인간은 단수형이어서, 인간이라는 유(類)를 뜻하지 않는다. 각자가 주장하는 각자의 진리만이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기도 하다. 서있는 곳이 달..
배추와 인간 눈 덮인 고깔 모양 움 안에서 꺼낸 통배추를 반으로 가르면 하얗고 노란 색조가 완연하다. ‘가운데 갈비’란 뜻을 담아 중륵(中肋)이라 불리는 두툼하고 흰 조직엔 수용성 탄수화물이 풍부하다. 중륵을 감싸는 조직인 내엽(blade)은 당근처럼 카로틴이 풍부해 색이 노랗다. 김치의 주재료이지만 생으로도 즐겨 먹는 통배추는 어찌 보면 과일과 닮았다. 둘 다 광합성 부산물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대신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때문이다. 날이 서늘해지면 배추는 안으로 조직을 채우면서 엽록소가 만든 설탕을 과당과 포도당으로 분해해 당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단맛을 선택했다지만 배추는 무슨 까닭으로 중륵에 당을 저장하는 것일까? 배추는 씨를 퍼뜨리고자 단맛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한편 당은 식물이 추위를 견..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과학을 소통하는 더 나은 방법 내가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 이유는 뇌과학이 악용되기보다 선용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면 어려운 것 같지만, 우리말로 풀어 쓰면 그냥 ‘과학 소통’이다. 좋은 소통은 상대의 배경지식과 입장을 이해한 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양쪽의 욕구를 충족하고, 상호 간의 오해를 풀면서 이해를 늘린다. ‘과학 소통’도 마찬가지다. 과학과 대중이 서로의 오해를 풀고 이해를 높이며, 필요한 과학적 사실을 정확히 전할 수 있어야 좋은 ‘과학 소통’이다. 그래서 ‘과학 소통’은 어려운 과학을 쉽게 풀어서 대중에게 하향식으로 전하는 ‘과학 대중화’보다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다. ‘과학 소통’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어가는데, 올해만큼 과학 소통의 중요성을 통감한 적이 없다. 코로나19를 치료..
올해 떠오른 ‘10대 기술’ 매년 중국 톈진과 다롄에서 번갈아 가면서 개최되던 세계경제포럼의 하계 다보스포럼이 코로나19로 인해 개최되지 않았다. 대신 올해는 온라인으로 변화의 선구자 서밋을 개최했고, 나도 폐막 기조세션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 세션에선 클라우스 슈밥 회장의 마무리 발언을 포함해 지난 10일 발표된 10대 떠오르는 기술들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2년부터 매년 10대 떠오르는 기술들을 선정해 발표해 왔다. 올해도 흥미롭고 파괴력이 상당할 기술들이 선정됐다. 나도 참여하여 해설한 내용을 요약해 본다. 첫 번째는 고통 없는 주사와 진단을 위한 마이크로니들이 선정됐다. 마이크로니들은 신경을 안 건드리고 피부 내로 들어가므로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약물 투여뿐 아니라 피검사 등을 가능케 하여 병원에 가지 ..
늦출 수 없는 바이오파운드리 반도체산업은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이다. 반도체가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크게 설계, 생산, 패키징 및 조립, 품질검사 그리고 판매 및 유통의 과정이 있다. 실제 웨이퍼를 생산 가공하는 설비들을 갖춘 팹(fab)은 제조설비의 약자로서 이를 갖추는 데만도 수조원의 많은 돈이 든다. 이러한 팹을 갖추고 반도체 설계는 직접 하지 않으며 다른 기업이 설계한 반도체의 생산만을 전담하는 기업을 파운드리라고 부르며, 반대로 설계만을 하는 기업을 팹리스라고 한다. 반도체산업에서의 파운드리와 유사한 개념으로 바이오 분야에는 바이오파운드리가 있다. 바이오제품에는 치료제, 백신, 친환경 석유화학 대체 화학물질, 다양한 기능의 천연물질, 바이오플라스틱 등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바이오파운드리는 이런 제품들을 직..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병아리 새끼나 개를 어미 삼아 쫓아다니는 오리 새끼를 본 기억이 있다 해도 말이다. 왜 비둘기 새끼는 보기 어려울까? 아마 그 이유는 둥지를 잘 숨기는 데다 새끼가 자랄 때까지 한곳에 머무르는 비둘기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닭처럼 가축화되진 않았지만 비둘기는 인간 집단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생명체다. 본디 절벽이나 암벽에 구멍을 내고 둥지를 트는 습성이 있던 비둘기는 개구쟁이들의 눈길을 피해 아파트나 빌딩 구석에 은밀하고 안온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비둘기는 새끼에게 액상 치즈처럼 노랗고 점도가 높은 젖을 먹인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암수 비둘기 모두 젖을 공급할 수 있는 까닭에 새..
[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융합전략, 생명공학 강국의 발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뜨겁다. 오래전 유럽에서는 생명공학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색깔로 구분하였다. 의학·생명에 관련된 생명공학은 우리의 피 색을 나타내는 레드(red) 바이오텍, 농업·식품과 관련된 생명공학은 나뭇잎 색인 그린(green) 바이오텍, 산업 화학물질 및 소재 생산과 환경에 관련된 생명공학은 화이트(white) 바이오텍으로 부른다. 바이오 시장 규모는 어디까지 포함하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전 세계 레드, 그린, 화이트 바이오텍 시장 규모는 약 1800조원으로 추정되고 급속히 성장 중이다. 우리나라의 바이오 시장 규모는 34조원 정도로 전 세계 시장의 2%가 안 되는 상황이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
[사설]한 걸음 더 나아간 우주과학기술, 한국형 시험발사체 성공 한국형 우주발사체인 ‘누리호’의 시험발사체 발사가 성공했다. 한국항공우주원은 28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한 “시험발사체 엔진이 당초 목표했던 140초 이상 연소했다”고 발표했다. 시험발사체의 발사 성공은 엔진의 연소시간으로 평가하는데, 이번 발사체는 목표 연소시간을 넘어 정상 추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번 시험발사체에 장착된 75t급 엔진은 한국 기술로 개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발사체 엔진 기술 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번 발사 성공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우주개발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1996년 우주발사체를 자체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후 20여년 만에 얻은 결실이다. 발사체의 엔진 관련 기술은 어느 나라든 해외 이전을 꺼리는 핵심 분야다. 이에 한국 연구..
[기고]톈궁 1호 추락이 주는 시사점 지난 주말 중국 최초의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 1호의 추락은 세계 각국의 이목을 끌었다. 통제 불능 상태가 된 톈궁 1호가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예측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톈궁 1호 잔해는 우리 시간으로 4월2일 오전 9시16분경 남태평양 해상에 아무 피해 없이 흩어져 떨어졌다. 톈궁 1호는 지난 2년 동안 지구 저궤도에서 마하 20이 넘는 속도로 선회하며 지구 중력에 이끌려 고도를 서서히 낮추었다. 고도 80~100㎞의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톈궁 1호는 엄청난 대기 마찰열과 충격으로 인해 불에 타 분해되며 흩어졌다. 불에 타지 않은 일부 잔해물은 그대로 바다로 추락했다. 대기권 진입부터 해상으로 낙하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잔해물의 무게에 따라 몇 분에서 몇십 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1..
[기고]우주개발, 일관되게 추진해야 지난 6일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화성으로 쏘아올린 ‘팰컨 헤비’가 화제다. 1973년 달로 향한 새턴V 이후 가장 대규모 로켓이다. 민간 기업이 개발한 초대형 발사체가 전기차를 싣고 우주로 날아오르는 모습에 많은 외신들은 ‘대담한 도전’이라며 찬사를 보냈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제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한 직후여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정부의 강력한 비전 제시와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1950년대부터 우주개발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 아폴로 프로젝트로 불리는 달 탐사를 위해 수학, 과학 교육시스템까지 전면적으로 개편해 우주개발에 매달렸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은 우주 분야뿐만 아니라 미국의 기술과 산업 전반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이후 50년 이상을 긴 호흡으로 ..
랜섬웨어와 4차 산업혁명 한순간 디지털 인류는 멈춰서야 했다. 한 어머니는 컴퓨터에 저장해둔 여덟 살 딸과의 추억이 담긴 모든 사진을 강탈당했다. 어떤 회사 직원은 랜섬웨어로 사업상 필요한 파일을 잃어버려 해고당할까봐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악랄한 범죄자들에게는 인정사정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수익성만 좋다면 그들은 변종을 거듭하는 진화된 랜섬웨어를 만들 것이다. 며칠 전 사상 최대의 랜섬웨어가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150개국에서 20여만개의 프로토콜(IP)을 공격했다.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랜섬웨어는 개인보다 기업이나 병원 등을 표적으로 한다. 기업들은 데이터 몸값을 지불할 돈이 있기 때문이다. 랜섬웨어는 영국의 40여개 병원과 프랑스의 르노자동차, 미국 페덱스 등을 공격했다. 사상 최대 랜섬웨어 유포를 지켜보면..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 얼추 10만개에 달하는 우리 머리카락의 평균수명은 대략 5년이다. 이 머리카락 한 가닥을 기다란 원통이라고 해보자. 몇 올의 머리털을 세로로 나란히 세우면 폭이 1㎜가 될 수 있을까? 이는 머리카락의 직경이 얼마쯤 되겠느냐는 질문과 같다. 한국인 머리칼의 평균 직경은 80마이크로미터(㎛)다. 그러므로 약 13개의 머리카락을 일렬로 세우면 1㎜가 된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세포는 어떤가? 주먹 쥔 손등을 뚫어지게 본다한들 피부세포가 보일 리 만무하다. 인간의 눈은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를 보지 못한다. 인간이 가진 세포의 평균 직경이 머리카락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얼마나 작을까? 인간의 세포 약 다섯 개를 나란히 세워야만 머리카락 하나 정도의 폭이 된다. 세포(cell..
잎 없이 꽃을 피운다는 건 가을 잎이 봄꽃보다 붉다는 한시 구절을 들어가며 사람들은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여기서 봄꽃은 붉은 매화쯤 될 것이다. 봄의 꽃, 가을의 단풍 둘 다 ‘붉지만’ 쓰임새는 분명 다르다. 매화꽃은 벌을 불러들이지만 가을 단풍은 하릴없이 떨어질 뿐이다. 하지를 지나 낮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활엽수 잎은 푸름을 버릴 채비를 한다. 붉은 잎은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겠다는 식물의 결연한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런 식물의 계절성을 열역학적으로 표현하면 ‘봄은 가을이 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정도가 될 것이다. 가을 햇빛은 화학에너지 형태(탄수화물)로 저장되지 않고 다만 잠시 단풍잎을 따뜻하게 덥힐 뿐이다. 가을은 저절로 봄이 될 수 없다. 잘린 도마뱀 꼬리가 다시 도마뱀이 ..
스티브 잡스와 이재용 삼성전자(이하 삼성)는 스마트폰 경쟁에서 계속 선두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일찌감치 4차 혁명에 나선 구글 등 유수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는 걸까. 소니나 노키아, IBM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의 위기를 점치는 이들도 있지만 갤럭시8 판매가 시작되는 4월 이후가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은 갤럭시8에 4차 혁명의 화두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인공지능 비서 기능을 탑재했다. 인수한 ‘빅스비’라는 인공지능회사의 기술력 등이 선보이게 되면 그 경쟁력에 대한 성적표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디지털 변혁에 적응하기 위해 구글을 비롯해 유수의 기업들이 IT 생태계를 통째로 갈아치우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생태계가 경쟁이 ..
‘귀지’의 생물학 20세기 초반 비타민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던 영국의 프레더릭 홉킨스는 식물을 연구하는 동료 과학자들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배설기관이 따로 없는 식물을 ‘더럽다’고 여긴 까닭이다. 장차 아파트가 들어설, 한바탕 땅을 뒤집어 놓은 척박한 곳에 자리 잡은 버드나무를 의 저자 페터 볼레벤은 개척자 식물이라고 칭했다. 몸피가 허연 자작나무도 또한 개척자 식물이다. 개척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버드나무와 자작나무는 강한 햇살과 목마름을 기꺼이 버티고 견딘다. 그리고 수시로 나무껍질을 떨구어 손상된 세포나 조직을 버린다. 나무껍질은 배설기관이다. 수정을 끝내고 하릴없이 떨어지는 꽃잎도 가을 저물어 떨구는 이파리도 마찬가지로 배설기관이다. 질소와 같은 필수적인 영양소를 몸통에 남긴 채 나무껍질도, 낙엽도 하릴없이 땅으로 ..
인공지능 통제불능 시대 오나 며칠 전 밤새 내린 눈 때문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일찍 나와서인지 지하철 안은 생각보다는 덜 붐볐다. 승객 대부분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그들은 예외 없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야릇한 침묵 속에 스마트폰에 무표정하게 고정된 시선, 그곳에 인간의 생명 같은 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생동감과 착각한 건 아니다. 그들은 마치 목적 없이 내달리는 유령열차에 몸을 맡긴 인공지능 로봇처럼 무미건조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의 말이 떠올랐다. “인류의 현존하는 가장 큰 위협은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은 핵무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인간이 디지털 초지능을 위한 생물학적 장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비슷한 말을 했다. “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