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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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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에 줄 그어 수박 만들기 철 지난 바닷가는 황량하고 쓸쓸하다. 백로(白露) 지나 수온이 23도 아래로 떨어진 해수욕장은 폐장한 지 오래다. 체온과 10도 이상 차이가 나면 저체온증이 찾아올 수 있는 까닭에 사람들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우리는 백사장 한 모퉁이에서 의외의 기쁨과 마주치기도 한다. 가녀린 수박 넝쿨에서 주먹만 한 수박을 발견했을 때다. 분명 수박 씨앗은 여름 한 철 사람 위장관의 소화액 세례를 듬뿍 받고 서둘러 모래밭에 뿌리를 내렸을 게다. 이울어 가는 태양빛은 수박을 온전히 키우지 못하겠지만 수박 껍질에는 짙은 초록빛 띠가 선명하다. 박과 사촌인 수박은 약 1500만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했다. 멜론이나 오이, 호박은 그 전에 분기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침팬지와 공통 조상에서 사람속 생명체..
입속의 붉은 잎 요플레 뚜껑 뒤를 핥을 때 필요한 기관은 혀다. 풍선껌을 한껏 부풀릴 때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을 하려고 입술에 침을 바르는 순간에도 혀가 없었다면 어찌해야 했을지 난감하다. 아이들은 겨끔내기로 혀를 동그랗게 말 수 있는지 장난치며 논다. 혀는 약 3000개의 미뢰를 가진 맛을 느끼는 감각기관이지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운동기관이기도 하다. 혀가 8종류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근육의 양쪽 끝 모두가 뼈에 닿지 않는 유일한 기관이어서 우리는 자유로운 혀끝이 코에 닿게 할 수도 있다. 혀는 입속에 들어 있다. 입이 없다면 혀가 있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소화기관의 최전선에 있는 동물의 입은 턱과 이빨을 갖추고 입안으로 들어온 먹잇감을 꽉 눌러 붙잡아 초주검을 만들어서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는 ..
영화 의 생물학적 모티프인 냄새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퀴퀴함’일 것이다. 주인공 가족이 사는 반지하방 벽지에 시커멓게 달라붙은 곰팡이 포자 냄새는 콧속 점막을 타고 올라와 뇌에서 불편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곰팡이는 습도가 60% 이하인 곳에서는 잘 살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습도는 40~60% 사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이긴 하지만 습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온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이 끓거나 어는 온도를 가리키는 도구를 만들고 그 사이를 100개 간격으로 나눈 온도계를 사용한 역사도 500년에 지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과학자들은 열이 운동과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상호 전환할 수 있는 이들 에너지양을 온도로 표현할 수 있었다. 점심시..
하루살이의 춤 하루살이의 군무(群舞)를 본 적이 있는가? 오랫동안 동서양 사람들의 눈에 고작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미물로 낙인찍힌 하루살이는 물 근처에 사는 까닭에 수서곤충으로 분류된다. 하루살이 애벌레는 맑고 차가운 민물에서 아가미로 숨을 쉬고 여러 차례 탈바꿈을 거듭하면서 몸집을 키운다. 이들 애벌레가 물을 박차고 나와 날개를 펼치는 순간은 대개 초여름날 어스름할 무렵이다. 하루살이가 날 저무는 시간을 노린 이유는 날개가 완전히 성숙하려면 하루를 더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포식자들의 눈을 피하는 한편 어둡고 적요한 틈을 타 날개 근육에 힘을 끌어모을 시간을 벌려는 의도다. 그러므로 이즈음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하루살이를 보거든 그 ‘하루’살이가 이름과 달리 험한 지상에서 간밤을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
이백예순 날 살기 위하여 인간은 바다를 버리고 좁고 건조한 육상에 정착한 성급하고 무모한 조상의 자손이다. 2004년 시카고대학 해부학자 닐 슈빈은 북극 엘스미어 섬에서 발이 있는 물고기 화석을 찾아내 바다와 뭍을 잇는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했다. 뼈와 근육으로 구성된 물고기 지느러미는 닭의 날개, 인간의 팔과 그 기원이 같은 상동 기관이다. 재담을 즐기는 사람들은 엄마의 말을 거꾸로 듣는 자식 물고기가 뭍에 오르는 그림을 그리고 씩 웃었지만 사실 그들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바다전갈과 같은 맹폭한 포식자를 피해 또는 지각 변동으로 바다가 높이 솟아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물고기 조상들은 육상으로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사나운 소를 길들여 인간 집단으로 끌어들이는 데 2000년 넘게 걸렸다는 연구 결과에서..
유월을 안고 사월에 피는 꽃 모란꽃이 피었다. 이제 곡우(穀雨)를 지나 4월 하순에 접어든다. 봄비 덕에 겨울을 넘긴 보리가 푸르름을 더하고 그루터기 남은 논에 물이 찰 즈음이다. 한 열흘 더 지나면 여름에 들고(立夏) 소나무는 연둣빛 새 가지를 한 뼘 더 키울 게다. 시나브로 푸르게 어두워질 한 해의 익숙한 모습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시인의 노랫말에 ‘유월을 안고’ 핀다는 모란이 4월에 꽃을 피웠다. 몇 해 전 학회 참석차 부산의 한 대학을 찾았을 때도 4월에 핀 모란꽃을 보았으니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삼수갑산 가까운 북녘 아닌 경남 마산 출신, 김용호의 시집 이 출간된 1956년 당시 6월에 피던 모란이 70년이 지나지 않아 4월에 꽃을 피운다? 그렇다면 대체 모란의 봄은 어디로 갔을까? 최근 들어 ..
똥 누는 시간 12초 새에게는 이빨이 없다. 껍데기에 탄산칼슘이 풍부한 알을 낳느라 이빨을 잃었다는 가설도 있고, 만드는 데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드는 이빨에 투자하는 대신 새끼를 빠르게 부화하고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키는 일이 새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가설도 등장했다. 최근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부리와 이빨을 가진 약 1억년 전 익티오르니스 공룡의 화석을 자세히 분석한 뒤 뇌를 발달시키기 위해 새가 턱의 근육과 이빨을 포기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무를 파고 벌레를 먹거나 껍데기를 깨고 연한 조갯살을 먹는 데 부리만으로도 충분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에게는 방광도 없다. 물통을 몸 안에 싣고 다니면 비행하는 데 에너지가 더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들의 콩팥은 단백질 대사 과정의 부산물인 질..
빼앗긴 봄날의 꿈 머잖아 알알이 붉은 열매를 매단 채로 산수유꽃이 필 것이다. 꽉 닫혀 있어야 할 ‘북극 냉장고’ 문이 지구온난화로 슬쩍 열리면서 미국 텍사스주에 보기 드문 폭설이 내렸지만 그래도 꿋꿋이 봄은 온다. 봄의 출현을 알리듯 꽃봉오리가 벌고 노란 우산을 펼친 듯 20여개의 꽃잎을 일제히 드러내는 산수유의 모습은 가히 장관(壯觀)이다. 동아시아 원산인 산수유는 지구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후 거의 7000만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꽃을 피워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잎 없이 꽃을 피운다. 산수유처럼 광합성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성질 급한 식물들은 안타깝게도 작년에 쌓아둔 식량을 덜어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른 봄꽃을 찾는 꿀벌들은 먼 거리를 움직이며 적은 양일망정 꿀을 모은다. 곤충이..
행복한 숨 쉬기 서해가 지척인 남도의 들녘에 어린아이가 바람을 맞고 있다. 고개를 들고 지그시 눈을 감은 아이는 이내 손바닥을 편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천천히 반복한다. 약 20년 전 미국으로 이사 가느라 아버지 산소에 잠시 들렀을 때 두 돌배기 아들의 모습이다. 봄뜻이 완연했고 대도시와 사뭇 다른 시골 공기의 신선함을 어린아이도 몸소 만끽했음에 틀림없다. 행복하게 숨을 쉬는 일은 내게 바로 저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코로나19가 해를 넘기면서 유모차 비닐 덮개 안에 마스크를 쓴 젖먹이들을 간혹 보게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미안하기 짝이 없다. 아직 발걸음도 채 떼지 않은 저 아이들 세대에게는 숨을 잘 쉬는 일의 절박함이 더 커질 것이다. 인간은 보통 1분에 약 17번 숨을..
배추와 인간 눈 덮인 고깔 모양 움 안에서 꺼낸 통배추를 반으로 가르면 하얗고 노란 색조가 완연하다. ‘가운데 갈비’란 뜻을 담아 중륵(中肋)이라 불리는 두툼하고 흰 조직엔 수용성 탄수화물이 풍부하다. 중륵을 감싸는 조직인 내엽(blade)은 당근처럼 카로틴이 풍부해 색이 노랗다. 김치의 주재료이지만 생으로도 즐겨 먹는 통배추는 어찌 보면 과일과 닮았다. 둘 다 광합성 부산물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대신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때문이다. 날이 서늘해지면 배추는 안으로 조직을 채우면서 엽록소가 만든 설탕을 과당과 포도당으로 분해해 당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인간은 단맛을 선택했다지만 배추는 무슨 까닭으로 중륵에 당을 저장하는 것일까? 배추는 씨를 퍼뜨리고자 단맛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한편 당은 식물이 추위를 견..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병아리 새끼나 개를 어미 삼아 쫓아다니는 오리 새끼를 본 기억이 있다 해도 말이다. 왜 비둘기 새끼는 보기 어려울까? 아마 그 이유는 둥지를 잘 숨기는 데다 새끼가 자랄 때까지 한곳에 머무르는 비둘기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닭처럼 가축화되진 않았지만 비둘기는 인간 집단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생명체다. 본디 절벽이나 암벽에 구멍을 내고 둥지를 트는 습성이 있던 비둘기는 개구쟁이들의 눈길을 피해 아파트나 빌딩 구석에 은밀하고 안온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비둘기는 새끼에게 액상 치즈처럼 노랗고 점도가 높은 젖을 먹인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암수 비둘기 모두 젖을 공급할 수 있는 까닭에 새..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 얼추 10만개에 달하는 우리 머리카락의 평균수명은 대략 5년이다. 이 머리카락 한 가닥을 기다란 원통이라고 해보자. 몇 올의 머리털을 세로로 나란히 세우면 폭이 1㎜가 될 수 있을까? 이는 머리카락의 직경이 얼마쯤 되겠느냐는 질문과 같다. 한국인 머리칼의 평균 직경은 80마이크로미터(㎛)다. 그러므로 약 13개의 머리카락을 일렬로 세우면 1㎜가 된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세포는 어떤가? 주먹 쥔 손등을 뚫어지게 본다한들 피부세포가 보일 리 만무하다. 인간의 눈은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를 보지 못한다. 인간이 가진 세포의 평균 직경이 머리카락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얼마나 작을까? 인간의 세포 약 다섯 개를 나란히 세워야만 머리카락 하나 정도의 폭이 된다. 세포(cell..
잎 없이 꽃을 피운다는 건 가을 잎이 봄꽃보다 붉다는 한시 구절을 들어가며 사람들은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여기서 봄꽃은 붉은 매화쯤 될 것이다. 봄의 꽃, 가을의 단풍 둘 다 ‘붉지만’ 쓰임새는 분명 다르다. 매화꽃은 벌을 불러들이지만 가을 단풍은 하릴없이 떨어질 뿐이다. 하지를 지나 낮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활엽수 잎은 푸름을 버릴 채비를 한다. 붉은 잎은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겠다는 식물의 결연한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런 식물의 계절성을 열역학적으로 표현하면 ‘봄은 가을이 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정도가 될 것이다. 가을 햇빛은 화학에너지 형태(탄수화물)로 저장되지 않고 다만 잠시 단풍잎을 따뜻하게 덥힐 뿐이다. 가을은 저절로 봄이 될 수 없다. 잘린 도마뱀 꼬리가 다시 도마뱀이 ..
‘귀지’의 생물학 20세기 초반 비타민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던 영국의 프레더릭 홉킨스는 식물을 연구하는 동료 과학자들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배설기관이 따로 없는 식물을 ‘더럽다’고 여긴 까닭이다. 장차 아파트가 들어설, 한바탕 땅을 뒤집어 놓은 척박한 곳에 자리 잡은 버드나무를 의 저자 페터 볼레벤은 개척자 식물이라고 칭했다. 몸피가 허연 자작나무도 또한 개척자 식물이다. 개척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버드나무와 자작나무는 강한 햇살과 목마름을 기꺼이 버티고 견딘다. 그리고 수시로 나무껍질을 떨구어 손상된 세포나 조직을 버린다. 나무껍질은 배설기관이다. 수정을 끝내고 하릴없이 떨어지는 꽃잎도 가을 저물어 떨구는 이파리도 마찬가지로 배설기관이다. 질소와 같은 필수적인 영양소를 몸통에 남긴 채 나무껍질도, 낙엽도 하릴없이 땅으로 ..
생물학 제1법칙은 ‘고귀함’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생물학 제1법칙으로부터 얘기의 실마리를 풀어보자. 너무 당연하다고 여긴 탓인지 교과서에서조차 법칙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지만 나는 ‘어미아비 없는 자식은 없다’는 명제가 생물학의 으뜸 법칙이라고 본다. 이 법칙의 면면을 살펴보기 위해 족보를 예로 들어보자. 가령 경주 김씨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을 시조로 한다. 족보는 시조로부터 시작해서 아래쪽 방향으로 내려오는 계보를 그린다. 보학이 흔히 차용하는 방식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특정 계보의 생물학적 반감기는 7세대 정도라고 한다. 풀어 말하면 7세대가 지나서도 나의 후손이 생존할 가능성은 50%라는 말이다. 보학을 송두리째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얘기를 접하면 시조 한 구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