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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궤도 통신위성, 별들의 전쟁 1992년 KAIST 인공위성연구소는 우리별 1호를 개발해 발사했다. 인공위성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인공위성 보유 국가 대열에 합류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우리별, 차세대 소형 위성, 다목적 실용 위성 시리즈 등 다양한 지구 관측용 인공위성들을 개발·발사했고 위성을 수출할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예산 등의 한계로 통신위성 개발에는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2010년 천리안 1호를 발사했으나 통신 전용의 인공위성이 아닌 기상관측, 해양관측 그리고 공공통신을 위한 복합기능의 정지궤도 인공위성이었다. 또한 국내 유일하게 위성통신 상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정지궤도 무궁화위성은 총 4기로 모두 해외에서 수입해 운용 중이다. 그러다 보니 민간 수요가 가장 많고 국가 기간망으로 활용이 가능하..
[요리에 과학 한 스푼]양념장의 또 다른 비밀 보기만 해도 얼큰한 해물탕 한상이 차려졌습니다. 바지락, 꽃게, 새우, 가리비, 전복 등등, 바로 내가 해산물 대표라 자랑이라도 하듯 커다란 냄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마늘, 생강에 주인장의 특별한 비법 몇 가지가 더해져 만들어졌을 양념장 때문인지 요리는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모든 요리가 그러하듯 탕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것 또한 우선은 신선한 식재료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양념도 빼놓을 수 없죠. 양념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상으로 이끌어내고 때로는 보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장만의 맛깔난 솜씨는 대부분 여기서 결정됩니다.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과학자 입장에서 보면 해물탕이 맛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열이라 할 수 있..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순환’이 만든 혁명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elestium)’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회전 혹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환을 뜻하는 영어 revolution에 해당하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 있다. 지구중심설(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지동설)로 인간이 바라본 우주의 모습이 급변하게 된 것을 과학사에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한다. 태양이 중심인 행성 운동의 순환(revolution)이 만든 혁명(revolution)이다. 머리를 들어 올려본 하늘에는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것이 많다. 밤에 본 달의 모습은 약 한 달을 주기로 다시 반복한다. 우리가 한 달을 한 달이라고 하는 이유다. 유심..
호박에 줄 그어 수박 만들기 철 지난 바닷가는 황량하고 쓸쓸하다. 백로(白露) 지나 수온이 23도 아래로 떨어진 해수욕장은 폐장한 지 오래다. 체온과 10도 이상 차이가 나면 저체온증이 찾아올 수 있는 까닭에 사람들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우리는 백사장 한 모퉁이에서 의외의 기쁨과 마주치기도 한다. 가녀린 수박 넝쿨에서 주먹만 한 수박을 발견했을 때다. 분명 수박 씨앗은 여름 한 철 사람 위장관의 소화액 세례를 듬뿍 받고 서둘러 모래밭에 뿌리를 내렸을 게다. 이울어 가는 태양빛은 수박을 온전히 키우지 못하겠지만 수박 껍질에는 짙은 초록빛 띠가 선명하다. 박과 사촌인 수박은 약 1500만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했다. 멜론이나 오이, 호박은 그 전에 분기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침팬지와 공통 조상에서 사람속 생명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위드 코로나’의 문제 설정 공학은 목표를 달성할 수단을 제공한다. 예컨대 날씨가 더울 때면 선풍기 등 체온을 낮출 수단을 제공한다. 공학 덕분에 우리는 수천년 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기적을 매일 누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공학으로 난관을 타개하려 할 때 반드시 선행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1) 어떤 문제를 풀지, (2) 한계 조건이 무엇인지, (3)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가 목표인지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너무 더워서 일하기 힘든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경우의 문제는, 방호복 때문에 구급대원들의 체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계 조건은 구급대원의 활동성을 보장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면서도 체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이 비싸지 않아야 하며 사용법도 쉬울수록 좋다. 문제가..
[장대익의 진화]왜 접종받고자 하는가?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공헌으로 노벨 물리학상(1965년)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이 언젠가 시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우리 시인들은 꽃을 보고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를 쓰기도 하죠. 과학은 이 꽃을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이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는 없어요. 과학은 인문이 주는 인생의 가치, 실존, 의미에 대해 침묵합니다.” 촌철살인의 과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우리 과학자들도 이 꽃에서 시인 여러분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비슷하게 느낍니다. 정말 아름답죠.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여기서 무언가를 더 봅니다. 가령 꽃잎이 난 위치와 순서에 주목하는 과학자는 거기서 피보나치수열을 찾아내곤 하죠. 하하.” 이것은 과학이 제공하는 ‘플러스알파’ 효과다. 과학..
미생물 식품 최근 나는 제자들과 미생물 식품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풍부히 발휘한 논문을 게재하였는데 이를 요약하여 다뤄보고자 한다.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세계 인구가 2050년에는 100억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식량위기가 큰 걱정거리다. 식량 공급을 늘리기 위한 산림 등의 경작지화는 기후위기를 심화시켜 역으로 식량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아이러니를 만들고 있다. 특히 육류 수요 증가에 따른 축산업의 확대는 가축에 의한 곡물 소비와 이산화탄소 및 메탄과 같은 온실가스의 배출을 늘림으로써 식량 및 기후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대체 식품의 확보가 필요하다. 미생물은 지속 가능한 미래 식량 자원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키워서 먹는 데까지 수개월에서 ..
[요리에 과학 한 스푼]빛으로 편리하게 익히자 오늘 요리는 햄버거 스테이크입니다. 잘 다져진 돼지고기, 소고기, 양파 그리고 계란물과 빵가루를 섞고 치대어 패티를 만듭니다. 공기를 충분히 제거해 주어야 구울 때 부서지지 않습니다. 저는 두툼한 패티를 선호합니다. 육즙이 풍부한 속살과 바삭하게 잘 구워진 표면이 조화를 이루죠. 하지만 조리하는 과정에서 매우 신경을 써야 합니다. 두툼한 안쪽까지 열이 골고루 전달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너무 오래 가열하다 보면 표면이 타 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안쪽이 제대로 익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으니 언제 불을 꺼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약 안쪽을 미리 살짝 익혀놓는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표면을 바삭하게 잘 굽는 데만 신경쓰면 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이 응용되는데, 오븐에 살짝 굽기도..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주체 많은 물리학자의 생각에는 공통점이 있다. 객체와 주체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나뉘고, 내가 본다고 유리창 너머 객체의 상태가 변할 리 없다고 믿는다. 주체와 독립된 객체로서의 대상이 있고, 주체의 인식은 객체의 객관적인 속성을 충실히 반영한다는 믿음이다. 내가 보나 안 보나 달은 규칙적으로 모습이 바뀌고, 뉴턴 이전에도 사과는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땅으로 떨어졌다. 세상 속 주체의 위치를 비우고 그곳에 무엇을 놓아도 우주에는 바뀌는 것이 전혀 없다. 내가 보지 않아도 달은 그곳에 있다. 주체-객체 독립성이라는 나의 오랜 확신이 요즘 줄어들고 있다. 확률의 주관성을 말하는 베이지언(Bayesian) 통계학의 부상, 시간의 흐름이 주체의 인식 능력의 한계에서 비롯할 가능성, 관찰 주체가 정보를 얻는 과정을 고..
입속의 붉은 잎 요플레 뚜껑 뒤를 핥을 때 필요한 기관은 혀다. 풍선껌을 한껏 부풀릴 때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을 하려고 입술에 침을 바르는 순간에도 혀가 없었다면 어찌해야 했을지 난감하다. 아이들은 겨끔내기로 혀를 동그랗게 말 수 있는지 장난치며 논다. 혀는 약 3000개의 미뢰를 가진 맛을 느끼는 감각기관이지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운동기관이기도 하다. 혀가 8종류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근육의 양쪽 끝 모두가 뼈에 닿지 않는 유일한 기관이어서 우리는 자유로운 혀끝이 코에 닿게 할 수도 있다. 혀는 입속에 들어 있다. 입이 없다면 혀가 있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소화기관의 최전선에 있는 동물의 입은 턱과 이빨을 갖추고 입안으로 들어온 먹잇감을 꽉 눌러 붙잡아 초주검을 만들어서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는 ..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시도도 시작도 하지 말 것 어느새 8월이다. 2021년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연초의 다짐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연초의 다짐을 지키긴커녕 기억도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을까? 8월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그동안 수십번 새해를 맞았지만 새해의 다짐을 그 해 1월 말까지라도 지킨 경우조차 드물 것이다. 이처럼 우리 대부분은 유리 세공품처럼 섬세하고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다. ‘드라마를 딱 한 편만 봐야지(혹은 게임을 딱 한 판만 해야지)’ 하고는 멈추지 못해서 늦게 잠들며, 매일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은 종종 작심삼일에 그친다. 이렇게 실낱같은 의지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아편, 코카인 같은 마약이다. 중독성 약물들은 의사결정과 관련된 뇌 부위의 작동 방식을 바꿔서 약물 섭취를 반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
생체 모방 공학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앙골라 남부에 위치한 나미브 사막에는 일년에 10~20㎜ 정도밖에 비가 오지 않는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생물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 이른 아침 물기를 머금은 옅은 안개가 이 나미브 사막에 사는 동식물들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분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하지만 안개가 하도 옅어서 자체적으로는 응축되기 힘들다. 나미브 사막에 사는 딱정벌레는 진화를 통해 등에 친수성(물과의 친화력 높음) 돌기와 소수성(물과 친화력 낮음) 흐름관을 만들었다. 친수성 돌기에 모인 2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지름의 물방울들이 점점 커지면 물을 잡아두는 힘보다 아래로 흐르는 힘이 커져서 등의 흐름관을 따라 내려가 딱정벌레의 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15년 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요리에 과학 한 스푼]물 부으면 되살아나는 식재료 오늘은 아이에게 돈가스를 만들어주려 합니다. 돼지 등심을 두드려 부드럽게 만들고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차례로 입혀 기름에 튀겨냅니다. 이제 연한 된장국을 만들 차례입니다. 그런데 냉장고에 보관된 채소의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쓰고 남은 것을 보관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대비책은 있습니다. 동결건조된 채소를 따로 보관해 두고 있으니까요. 동결건조란 수분을 함유한 식재료를 얼린 후 건조하는 가공법을 말합니다. 원래는 혈액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으로 1930년대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이후 식품산업에서도 응용된 것입니다. 건조 식품은 미생물에 의한 부패가 지연되어 보관성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결건조는 여기에 더해 원상 회복력 또한 우수합니다. 물이 첨가되면 식..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논문 지금껏 적지 않은 수의 물리학 논문을 썼다. 그래도 여전히 무척 어렵다. 과학 논문을 펼치면 제목과 저자 목록 바로 아래에 ‘초록’이라고 불리는 논문 요약부분이 보인다. 다른 이의 논문을 살펴볼 때 나는 먼저 초록을 잠깐 읽는다. 초록이 재밌으면, 본문을 꼼꼼히 읽기 시작한다. 제목과 함께 논문 저자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 초록일 수밖에. 지금까지 본 가장 재밌는 초록 1등은 바로 ‘Abstract’ 아래에 적힌 딱 하나의 문장이었다. “Yes, but some parts are reasonably concrete.” “네, 추상적인 것 맞아요. 그런데 논문 일부분은 그래도 어느 정도 구체적이랍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초록을 읽고 웃음을 터뜨렸다. ‘논문 초록’이라는 뜻과 ‘추상적인’이라는 뜻..
영화 의 생물학적 모티프인 냄새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퀴퀴함’일 것이다. 주인공 가족이 사는 반지하방 벽지에 시커멓게 달라붙은 곰팡이 포자 냄새는 콧속 점막을 타고 올라와 뇌에서 불편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곰팡이는 습도가 60% 이하인 곳에서는 잘 살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습도는 40~60% 사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이긴 하지만 습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온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이 끓거나 어는 온도를 가리키는 도구를 만들고 그 사이를 100개 간격으로 나눈 온도계를 사용한 역사도 500년에 지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과학자들은 열이 운동과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상호 전환할 수 있는 이들 에너지양을 온도로 표현할 수 있었다. 점심시..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사회경제적인 지위와 뇌 발달 35억~43억년 전, 지구에 최초로 생명이 출현한 후 지구 환경은 끊임없이 변했다. 이에 따라 살아남는 데 필요한 능력 또한 변했다. 지구를 다녀간 모든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성공을 위해 절실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노력’이라고 판단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노력을 기울이고 적합한 능력을 획득한 생물종만이 살아남았다. 생물 개체가 보유한 생존 능력의 적합성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 같은 유전자도 환경에 따라서 장점이 되거나 단점이 되었다. 한편 유전자는 개체가 생존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반응의 범위를 제한하기는 했으나 매 순간 어떤 반응을 할지 결정하지는 않았다. 유전자의 발현은 개체가 경험하는 환경에 따라 변했고, 신경계를 가..
분야별 탄소 배출과 대응 현재 약 500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세계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탄소중립정책을 추진 중이다. 따라서 어디서 얼마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를 살펴보고 각 분야에 맞는 감축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6년 클라이미트워치와 세계자원연구소의 자료를 바탕으로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가 잘 정리한 데이터를 통해 알아보자. 산업생산, 수송, 건물 냉난방 등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전체 배출량의 73.2%였다. 농업, 산림과 토지 이용으로 배출된 온실가스는 18.4%였으며, 산업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에 의해 발생되는 온실가스를 제외하고 직접적인 산업생산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5.2%였다. 또 시멘트산업에서 3%, 화학산업에서 2.2%, 매립지와 하수처..
[요리에 과학 한 스푼]맛있는 라면의 비밀은 ‘열 관리’ 제 아들은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을 좋아합니다. 아내도 라면만큼은 제가 한 수 위라고 인정하죠. 라면을 잘 끓이는 법에 대해 물으면, 저는 ‘중요한 것은 열관리’라고 답합니다. 특히 라면처럼 조리 시간이 짧은 경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요리는 일종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반응에는 에너지, 즉 열이 필요합니다. 라면과 수프를 물에 넣는다고 요리가 완성되지는 않죠. 열이 가해져야 물질의 확산, 호화반응, 단백질 변성 등과 같은 반응들이 시작됩니다. 각각의 요리에는 저마다 적절한 조리 온도가 있습니다. 온도가 낮으면 기대했던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온도가 너무 높으면 엉뚱한 다른 반응들 때문에 요리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온도를 적절하게 맞춘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온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이해 “그럴 수도 있지. 다 이해해.” 실수한 사람을 위로할 때 하는 말이다. 사정을 헤아려 보니 당신의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내가 당신을 이해한 순간이다. 이해했다고 해서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은 또 아니다. 동의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해’의 영어 단어 ‘understand’에는, 겸허한 마음으로 당신이 있는 곳 아래(under) 서는(stand) 것이 올바른 이해의 자세라는 뜻이 담겼다. 상대보다 낮은 곳에 한 번씩 번갈아 서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위아래 구별 없이 나란히 함께 서 있는 장면이 이해가 이루어진 다음의 모습이다. 어쩌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둘 사이 교감과 공감의 출발점이 될 공통의 나무 그늘을 찾았다는 뜻..
하루살이의 춤 하루살이의 군무(群舞)를 본 적이 있는가? 오랫동안 동서양 사람들의 눈에 고작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미물로 낙인찍힌 하루살이는 물 근처에 사는 까닭에 수서곤충으로 분류된다. 하루살이 애벌레는 맑고 차가운 민물에서 아가미로 숨을 쉬고 여러 차례 탈바꿈을 거듭하면서 몸집을 키운다. 이들 애벌레가 물을 박차고 나와 날개를 펼치는 순간은 대개 초여름날 어스름할 무렵이다. 하루살이가 날 저무는 시간을 노린 이유는 날개가 완전히 성숙하려면 하루를 더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포식자들의 눈을 피하는 한편 어둡고 적요한 틈을 타 날개 근육에 힘을 끌어모을 시간을 벌려는 의도다. 그러므로 이즈음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하루살이를 보거든 그 ‘하루’살이가 이름과 달리 험한 지상에서 간밤을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로봇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 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회사에서 2016년에 만든 4족 보행 로봇 ‘스폿’을 기억하시는가? ‘스폿’이 지잉지잉 소리를 내며 산길을 걸어가는 영상이 한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유명해졌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 중국의 한 스타트업이 ‘스폿’과 비슷하게 생긴 ‘알파도그’라는 로봇을 출시했다. 이 로봇의 입문용 모델의 출시가는 약 630만원으로 8300만원 선인 ‘스폿’에 비해 무척 저렴했으며, 지금은 가격이 더 내려가 중국에서 270만원 선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알파도그’는 출시 한 달 만에 1800대 이상 팔렸다. 물론 ‘알파도그’는 여전히 고가이고, 굳이 사야 할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포드가 중산층을 위한 자동차를 내놓았을 때도, 애플이 가정용 컴퓨터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
단백질 공학 DNA는 대부분 생명체의 유전물질로서 복제되어 후손에게 전해진다. DNA는 전사과정을 통해 RNA가 되고, RNA 중 mRNA는 번역을 통해 단백질이 된다. 어릴 적 생물 수업 시간에 배운 이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를 기억할 것이다. 즉 단백질은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기반하여 20종류의 아미노산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효소(enzyme), 구조 단백질, 신호전달 단백질 등 세포 안과 밖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들 중 효소와 단백질 공학을 통한 효소의 개량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자. 효소는 세포 내외에서 일어나는 반응에서 촉매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화학촉매와 비교하여 반응의 특이성과 선택성이 높고, 반응이 화학촉매반응과는 달리 상온 상압이나 체온과 같이 마일드한 조건에..
[요리에 과학 한 스푼]걸쭉함의 미<味>학 아내가 해물 칼국수를 끓인다고 합니다. 저는 밥이 먹고 싶지만, 아들이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메뉴 선정은 아들에게 우선권이 있으니까요. 각종 해물을 넣고 우려낸 맑은 육수에 면을 넣어 끓이던 아내가 깊은 탄식을 내지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본 냄비 안은 난감한 상황입니다. 맑아야 할 국물은 탁해졌고 면은 퉁퉁 불어 있습니다. 평소라면 미리 면을 삶아내고 찬물에 잘 씻은 후 끓는 육수에 넣었을 덴데, 그날따라 서두르다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래도 먹을 만하다 위로하기는 했지만, 아내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밀가루가 사용되는 요리에서는 호화반응이란 것이 일어나는데, 이는 밀가루의 전분이 물을 흡수하고 가열되면서 걸쭉해지는 현상입니다. 전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마치 그물과 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꼼짝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영화에서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할 때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는 모양을 우리는 ‘꼼짝’이라고 한다. 용의자가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이 신분증일 수도, 권총일 수도 있다. 어떤 행동도 허락하지 않는 “꼼짝 마”로 불확실성의 여지를 아예 없애는 것이 낫다. 물리학자인 내게 ‘꼼짝’의 크기는 위치 정보의 불확실성이다. 자연이 허락한 가장 낮은 온도가 절대영도다. 섭씨온도 눈금으로 영하 273.15도에 해당하는 낮은 온도다. 유한한 온도에서 기체분자는 마구잡이 열운동을 해서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 절대로 0보다 작을 수 없고, 따라서 기체의 평균 운동에너지에 비례하는 절대온도도 절대로 0보다 작을 수 없다. 온도를 점점 낮추는 과정을 ..
이백예순 날 살기 위하여 인간은 바다를 버리고 좁고 건조한 육상에 정착한 성급하고 무모한 조상의 자손이다. 2004년 시카고대학 해부학자 닐 슈빈은 북극 엘스미어 섬에서 발이 있는 물고기 화석을 찾아내 바다와 뭍을 잇는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했다. 뼈와 근육으로 구성된 물고기 지느러미는 닭의 날개, 인간의 팔과 그 기원이 같은 상동 기관이다. 재담을 즐기는 사람들은 엄마의 말을 거꾸로 듣는 자식 물고기가 뭍에 오르는 그림을 그리고 씩 웃었지만 사실 그들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바다전갈과 같은 맹폭한 포식자를 피해 또는 지각 변동으로 바다가 높이 솟아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물고기 조상들은 육상으로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사나운 소를 길들여 인간 집단으로 끌어들이는 데 2000년 넘게 걸렸다는 연구 결과에서..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감정에 대한 이해 마음의 온갖 현상들 중에서 정서만큼 흥미를 끄는 것도 드물다. 뇌과학에서도 오랫동안 정서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왔는데, 특히 공포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공포는 많은 동물종에 보존되어 있고, 관측이 수월하며(예: 벌벌 떠는 시간을 통해 공포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도 중요하기(예: PTSD, 포비아)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뉴욕대의 조셉 르두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공포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르두 교수는 오랫동안 공포와 불안에 대해 연구했으며, 공포 학습과 기억의 신경생리학적 기전을 밝힌 공로로 2013년 미국 국립과학원의 회원이 된 뇌과학자다. 먼저 공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대부분은 ‘두려움’이라는 불유쾌한 느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의식적인 자각은 공포 반응..
메타버스 200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싸이월드를 기억하는가? 스마트폰으로의 빠른 환경 변화와 세계화에 뒤처지며 페이스북 등 국제적인 SNS에 밀려 사라졌던 싸이월드가 메타버스 기반의 싸이월드Z로 돌아온다고 한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와 현 세상을 의미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로, 가상현실보다 확장되어 마치 현실세계와 유사하게 모든 경제, 사회, 문화활동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한다. 초고속 네트워크에서 가상, 증강, 확장현실,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보다 현실감 있는 가상세계의 구현과 실생활 같은 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최근 인기 있는 메타버스로 미국의 에픽게임즈가 개발한 포트나이트와 전 세계 10대들이 열광하는 로블록스가 있다. 3억5000만명이 ..
[요리에 과학 한 스푼]잘 변해야 맛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동태찌개입니다. 먼저 동태를 물에 씻고 비늘을 제거한 후 아가미와 배에 칼집을 넣어 내장을 제거합니다.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저는 특히 이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참 운이 좋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알이 들어 있네요. 알을 잘 떼어내어 흐르는 물에 헹구고 찬물에 담가 놓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조리입니다. 저만의 비밀 레시피 양념으로 국물을 내고 4등분한 동태, 각종 야채, 그리고 깜짝 선물인 알을 넣고 팔팔 끓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알은 소금물에 담가 뒀어야 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도 괜찮기는 하지만, 더 훌륭한 요리가 될 기회를 놓쳤으니 아쉽기만 합니다. 소금물에 알을 담가 두면 좀 더 탱글탱글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자연 텃밭을 가꾸며 떠오른 생각을 적은 조선시대 윤현(尹鉉)의 칠언절구가 있다. 뾰족한 마늘 싹, 가는 부추 잎, 아욱과 파의 파란 새싹이 돋는 것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 시인은 무사자연귀유사(無事自然歸有事)라고 적었다. 정민은 에서 “일없는 자연에서 도리어 일 많으니”로 새겼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자연에서 저절로 놀라운 생장이 일어나는 것에 감탄한 글귀다. 매년 봄 목련이 피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감동해 경이감을 느낀다. 봄은 늘 기적처럼 저절로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때맞춰 변하는 자연을 보며 우리는 매번 감탄한다. 하지만 자연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기나긴 겨울 지난한 과정을 묵묵히 이어갔기에 때맞춰 목련이 피어난다. 창공의 새도 저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둥..
유월을 안고 사월에 피는 꽃 모란꽃이 피었다. 이제 곡우(穀雨)를 지나 4월 하순에 접어든다. 봄비 덕에 겨울을 넘긴 보리가 푸르름을 더하고 그루터기 남은 논에 물이 찰 즈음이다. 한 열흘 더 지나면 여름에 들고(立夏) 소나무는 연둣빛 새 가지를 한 뼘 더 키울 게다. 시나브로 푸르게 어두워질 한 해의 익숙한 모습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시인의 노랫말에 ‘유월을 안고’ 핀다는 모란이 4월에 꽃을 피웠다. 몇 해 전 학회 참석차 부산의 한 대학을 찾았을 때도 4월에 핀 모란꽃을 보았으니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삼수갑산 가까운 북녘 아닌 경남 마산 출신, 김용호의 시집 이 출간된 1956년 당시 6월에 피던 모란이 70년이 지나지 않아 4월에 꽃을 피운다? 그렇다면 대체 모란의 봄은 어디로 갔을까? 최근 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