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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세상의 ‘마찰’ 보며, 떠올리는 미래의 폭주
자연에는 딱 네 종류의 상호작용이 있다. 해 주위를 도는 지구의 운동은 중력이 만들고, 겨울날 차문 손잡이의 짜릿함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서로를 강하게 밀치는 전자기력을 이기고 양성자 여럿이 오밀조밀 원자핵 안에 모여 있을 수 있는 것은 강한 핵력 덕분이다. 강한 핵력이 없다면 원자핵도, 원자도, 세상의 온갖 물질도, 그리고 나도 없다. 한편, 약한 핵력은 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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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불멸의 꿈
혈액 도핑을 아는가? 이 행위는 승리를 바라는 운동선수가 자신의 혈관에서 일정량의 피를 뽑았다가 몇 주 뒤 수혈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줄어든 혈구를 벌충하고자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가 부지런히 소임을 다하면 혈구의 수는 머잖아 정상으로 회복된다. 이때 자가 수혈로 적혈구 수가 늘면 운동 능력이 최대 20%까지 향상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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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경험, 겪고 나면 달라진다
듣고 읽어 알기는 어려워도 직접 겪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겪은 과거의 경험은 머릿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나를 바꾼다. 우리 각자뿐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그렇다. 함께 겪은 모두의 경험은 우리 사회를 바꾼다. 1980년 광주, 2014년 세월호 등이 그렇다. 겪고 나서 마주한 세상은 겪기 전과 달라진다. 여럿이 공유한 시공간의 한곳에서 함께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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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우리 엄마 젖을 다오
북한강 중간께의 청평에는 안전 유원지가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처음 만나는 집은, 낮에는 음식점이고 밤에는 사이키 조명 아래 춤을 출 만한 공간도 있었다. 그러니 종업원 중에는 덩치 큰 친구도 있었는데, 듣기로는 씨름 선수 출신이라고 했다. 오가는 손조차 뜸한, 비 오는 어느 날 나는 그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참외 줄랴 참외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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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질량 작을수록 쉽게 움직이고 쉽게 멈춘다
같은 힘으로 밀어도 쉽게 움직이는 물체와 잘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있다. 커다란 바위는 아무리 밀어도 꿈쩍하지 않지만, 크기가 작은 바위는 조금은 움직일 수 있고, 이보다 더 작은 돌멩이는 슬쩍 밀어도 쉬이 움직인다. 힘으로 밀 때 물체가 안 움직이려고 뻗대는 정도가 물리학의 질량이다. 물질의 양이 많으면 질량도 크다. 작은 당구공이 커다란 볼링공보다 쉽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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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지표면의 유일한 생산자, 잎
봄인가 싶어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사위가 어둡다. 나무 잔가지 사이의 빈틈이 하루가 다르게 채워진다. 그에 따라 화려한 사치재인 꽃은 사위어 가거나 어둠 속에 잠긴다. 한 이십 년도 더 된 어느 봄날, 성산동 굴다리 지나 수색, 화전을 향해 가다 서오릉 표지판을 보고 샛길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서 나는 내 인생의 또 다른 봄을 보았다. 봄은 채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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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진동수가 같아야 공명도 크다
아이 그네를 밀어주던 때가 생각난다. 그네는 앞으로 갔다가 내가 있는 뒤쪽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앞으로 막 움직일 때 그네를 미는 것이 좋다. 이렇게 반복하면 그네는 점점 더 높이 오르고 아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이보다 내가 더 즐거웠던 시간이다. 이렇게 그네를 밀어주는 것은 물리학의 ‘공명’과 관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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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무심한 질소
기다림은 인간의 일이고 행성의 움직임은 우주의 일이라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계절은 바뀔 게고 그렇게 봄은 왔다. 봄이 오니 서둘러 산수유가 노랗게 꽃을 틔웠고 벚꽃도 곧 필 것이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뜻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그 소임을 다한 꽃이 지면 열매를 키우는 몫은 잎이 전담한다. 하늘 높이 태양이 떠오르면 식물은 일제히 기공(氣孔)을 열고 이산화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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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물리학의 단열, 세상 속 단절
어릴 때 사용한 유리 보온병을 기억한다. 안쪽 유리병을 바깥 유리병이 둘러싸고 있는데 둘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둘 사이의 안쪽 면은 거울처럼 도금해놓기도 했다. 바닥에 떨어지면 잘 깨져 낭패를 본 적도 많았다. 왜 유리 보온병은 잘 깨졌을까? 얼굴을 비춰 볼 수도 없는데 왜 거울처럼 도금을 했을까?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딱 붙여 놓으면 온도가 높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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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당신의 간은 밤새 안녕하십니까
간은 붉다. 들고 나는 피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쉴 때 간은 우리 몸에 필요한 전체 산소의 약 20%를 쓴다. 유난히 붉은 색조를 띠는 기관은 산소와 피의 요구량이 크다고 보면 대체로 틀림이 없다. 콩팥과 심장도 그런 곳이다. 이들 두 기관과 달리 간에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혈관이 연결된다. 산소를 듬뿍 담고 심장에서 출발한 신선한 피는 간에 들어오는 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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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세상 모든 것은 확률로 돌아간다
가만히 손에서 놓은 돌멩이는 아래로 떨어질까? 영화 속 유령처럼 사람이 스르륵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 을까?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걸까? 내가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안 걸리는 걸까? 과학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런데 100%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주선 안이라면 제자리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으니, 아래로 떨어지는 돌멩이도 상황이 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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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밤 긴 겨울엔 나우 자자
소나무는 양지바른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소나무가 이 추운 겨울날 푸른 잎을 매달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동지 지나 아직 짧은 햇살일망정 광합성에 쓰려는 사철 푸른 나무의 시도가 사뭇 애처롭다. 하지만 광합성 작업에는 햇볕 말고 물도 필요하므로 땅 아래 소나무 뿌리로 흐르는 물이 얼어 있으면 안 된다. 누런 솔가리로 아랫도리를 감싼 소나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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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상식도 바뀌지만 ‘방향’은 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지식이 ‘상식’이다. 손에서 가만히 놓은 돌멩이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것, 지구가 둥글다는 것, 그리고 백신이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상식이다. 이런 상식에 많은 이가 동의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또 아니다. 돌멩이가 저절로 하늘로 치솟는다고 믿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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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지구에는 배설기관이 없다
바다는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원시 지구 안 마그마에서 분출한 수증기가 지표면 온도 하강에 따라 비로 떨어져 내리며 바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생명과 상상력의 원천인 바다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아주 오래전 오랜 기간에 걸쳐 벌어진 사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우리는 지구를 달걀에 빗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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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신경기술을 통한 신경과학 발전
필자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경향신문 지면에 칼럼을 써왔다. 시의성이 있거나,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소재(예: 동물 사이의 공감 등)를 연구한 논문 중에서도 ‘네이처’나 ‘사이언스’급 저널에 실린 논문을 주로 소개해왔다. 하필이면 이들 저널에 실린 논문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가 깊고 피인용지수가 높은 이 저널들의 엄격한 동료 평가제도와 책임감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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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까마귀 온다
수원에 까마귀 떼가 나타났다. 2016년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에 첫 모습을 드러냈던 까마귀가 벌써 몇 년째 찾아든다. 울산이나 김제처럼 사방으로 너른 들녘에서 나락이나 지렁이를 먹던 까마귀는 밤이면 근처 나무숲에 잠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울산 태화강변 대나무숲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숲과 논을 오가며 겨울을 지낸 까마귀는 다음해 3월이면 어김없이 날개를 틀어 번식 장소인 북으로 향한다. 수원 까마귀도 그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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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앞사람이 쌓은 것을 딛고 진전하는 세상
자신의 연구를 동료 연구자에게 소개하는 역량과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소개하는 역량은 다르다. 그래서 뇌과학 연구를 하면서 대중을 위한 저술도 활발히 하는 과학자는 많지 않다. BBC 다큐멘터리 <더 브레인(The brain)>을 제작한 데이비드 이글먼,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들, 오랫동안 공포와 불안을 연구해 온 조지프 르두 정도다. 얼마 전 조지프 르두를 줌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EBS에서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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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2021년 떠오르는 10대 기술
세계경제포럼이 ‘2021년 떠오르는 10대 기술’을 16일 발표했다. 올해로 10번째를 맞이한 이 리스트에는 예년과 같이 흥미로운 기술들이 포함되었다. 첫 번째는 탈탄소 기술이다. 휘발유나 경유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꾸는 잘 알려진 것 이외에도 탄소중립 에어컨디셔너, 저탄소 시멘트, 신재생에너지, 고기 없는 단백질 등이 총체적으로 빠르게 개발돼 적용되어야 한다고 제시되었다. 두 번째는 자체 영양 제공 식용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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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잘 섞음의 원리
요리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섞음’일 것입니다. 여러 식재료들을 알맞게 준비하고 잘 섞어주면서 최상의 맛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식재료가 고체라면 서로 섞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액체 상태인 경우라면 조금은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과학에서는 ‘Likes dissolve likes’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역해보면 ‘비슷한 것들은 비슷한 것들을 녹인다’ 정도가 되겠네요. 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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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낙엽, 비워서 채우려는 나무의 안간힘
가을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 캠퍼스는 가을 풍경이 정말 멋지다. 교목인 은행나무가 환한 노란빛으로 온통 꽃핀 듯 변하고 교내 여러 나무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색색이 물든다. 가을에 접어들어 단풍으로 물든 나무는 오래지 않아 낙엽을 떨군다. 더운 날씨가 일년 365일 이어지는 열대의 나무는 잎을 떨굴 필요 없고, 추운 날씨만 이어지는 고위도 지역 상록수는 약한 햇빛을 일 년 내내 이용하려 사시사철 푸르다. 우리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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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인간은 왜 개와의 평화협정 위반할까
“개껍닥 갖다 고구마 줘라”라는 엉터리 말에도 나는 소쿠리를 들고 봉당 개밥그릇으로 향하곤 했다. 어릴 적 일이다. 두 귀가 늘어지고 반가우면 등 뒤로 말린 꼬리를 부산히 흔들며 다가서던 개와 나는 마당이 좁도록 뛰며 종일 함께 놀았다. 날이 저물어 서녘 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뜨면 종지에 약지와 중지를 넣고 개밥이 너무 차거나 뜨겁지 않은지 혹은 간이 맞는지 확인하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학교 다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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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번역청을 세워주세요
전공인 수학·과학을 제외하면, 중·고등학교 교과목 중 살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영어다. 영어는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온갖 자료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한국어를 쓰지 않는 수많은 이들에게 나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작은 나라 한국에 태어났으면서도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고, 내 성과를 인정받게 해준 것은 영어였다. 그래서인지 상당수 직장에서 영어 실력을 요구하고, 많은 사람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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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의학과 공학 융합의 꽃, 디지털치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구이기도 하지만 건강한 사회를 구현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4차산업혁명 시대로 대변되는 엄청난 속도의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의료와 제약업계도 변혁을 불러오고 있으며 디지털치료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코로나19는 심각한 공중보건위기가 언제든지 올 수 있으며 이동 및 접촉이 용이치 않거나 권장되지 않는 조건에서 진단과 치료가 정보통신기술의 도움을 받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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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천연 주스가 더 맛없는 이유
화장실 가기가 힘들다는 아내를 위해 직접 과일 주스를 만들었습니다. 오렌지, 자몽, 키위 등 신선한 과일을 준비하고 물을 조금 첨가한 후 믹서기로 가는 단순한 방식인데요. 즙만 짜내는 것보다는 변비에 효과가 더 좋습니다. 이왕 하는 김에 아들 것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시중에 파는 주스처럼 건더기는 걸러내고 즙만 담았죠. 그런데 아들 표정이 영 좋지 않습니다. 과일 주스맛이 아니라고 하네요. 좋은 과일만 엄선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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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투명’한 세상을 기다리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깊은 물과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기 어려운 사람의 속마음을 비교한 속담이다. 사람의 몸은 물과 달라 가시광선을 투과하지 못하니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물론 사람 몸이 투명해도 그 안 속마음이 눈에 보일 리 없지만. 한 길 사람 속을 보는 방법이 있다. 파장이 짧은 엑스선을 이용하면 조직마다 다른 투과율 차이를 이용해 몸 안을 흑백사진으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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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RNA 세상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딱 세 집단으로 나뉜다. 세균, 고세균 그리고 진핵세포이다. 세균과 고세균을 뭉뚱그려 원핵세포라고 하면 이제 생명체는 둘 중 하나에 속한다. 대장균은 원핵세포이고 그보다 덩치가 훨씬 큰 데다 뒷발로 걷는 인간은 진핵세포 소속이다. 문자 그대로 진핵(眞核)세포는 핵이 있는 생명체를 일컫는다. 술 빚는 효모와 남산 위 소나무에는 핵이 있는 반면 원핵세포에는 핵이라 부를 만한 구조가 없다. 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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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몸과 생각의 에너지 조율
한낮이면 35도를 넘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다. 일교차가 10도 가까이 벌어졌고 한두 달만 더 지나면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이다. 환경이 크게 변하는 데 반해 신체의 내부는 그렇지 않다.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위해서는 체온, 삼투압, 혈압, 혈당 등의 조건이 일정한 범위에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뇌는 이와 같은 항상성의 유지에도 관여하고 있다. 체온, 혈압, 혈당 등은 기계처럼 고정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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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저궤도 통신위성, 별들의 전쟁
1992년 KAIST 인공위성연구소는 우리별 1호를 개발해 발사했다. 인공위성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인공위성 보유 국가 대열에 합류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우리별, 차세대 소형 위성, 다목적 실용 위성 시리즈 등 다양한 지구 관측용 인공위성들을 개발·발사했고 위성을 수출할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예산 등의 한계로 통신위성 개발에는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2010년 천리안 1호를 발사했으나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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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양념장의 또 다른 비밀
보기만 해도 얼큰한 해물탕 한상이 차려졌습니다. 바지락, 꽃게, 새우, 가리비, 전복 등등, 바로 내가 해산물 대표라 자랑이라도 하듯 커다란 냄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마늘, 생강에 주인장의 특별한 비법 몇 가지가 더해져 만들어졌을 양념장 때문인지 요리는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모든 요리가 그러하듯 탕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것 또한 우선은 신선한 식재료입니다. 그리고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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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순환’이 만든 혁명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elestium)’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회전 혹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환을 뜻하는 영어 revolution에 해당하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 있다. 지구중심설(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지동설)로 인간이 바라본 우주의 모습이 급변하게 된 것을 과학사에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 한다. 태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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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호박에 줄 그어 수박 만들기
철 지난 바닷가는 황량하고 쓸쓸하다. 백로(白露) 지나 수온이 23도 아래로 떨어진 해수욕장은 폐장한 지 오래다. 체온과 10도 이상 차이가 나면 저체온증이 찾아올 수 있는 까닭에 사람들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우리는 백사장 한 모퉁이에서 의외의 기쁨과 마주치기도 한다. 가녀린 수박 넝쿨에서 주먹만 한 수박을 발견했을 때다. 분명 수박 씨앗은 여름 한 철 사람 위장관의 소화액 세례를 듬뿍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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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위드 코로나’의 문제 설정
공학은 목표를 달성할 수단을 제공한다. 예컨대 날씨가 더울 때면 선풍기 등 체온을 낮출 수단을 제공한다. 공학 덕분에 우리는 수천년 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기적을 매일 누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공학으로 난관을 타개하려 할 때 반드시 선행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1) 어떤 문제를 풀지, (2) 한계 조건이 무엇인지, (3)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가 목표인지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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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장대익의 진화]왜 접종받고자 하는가?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공헌으로 노벨 물리학상(1965년)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이 언젠가 시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우리 시인들은 꽃을 보고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를 쓰기도 하죠. 과학은 이 꽃을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이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는 없어요. 과학은 인문이 주는 인생의 가치, 실존, 의미에 대해 침묵합니다.” 촌철살인의 과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우리 과학자들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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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미생물 식품
최근 나는 제자들과 미생물 식품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풍부히 발휘한 논문을 게재하였는데 이를 요약하여 다뤄보고자 한다.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세계 인구가 2050년에는 100억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식량위기가 큰 걱정거리다. 식량 공급을 늘리기 위한 산림 등의 경작지화는 기후위기를 심화시켜 역으로 식량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아이러니를 만들고 있다. 특히 육류 수요 증가에 따른 축산업의 확대는 가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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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빛으로 편리하게 익히자
오늘 요리는 햄버거 스테이크입니다. 잘 다져진 돼지고기, 소고기, 양파 그리고 계란물과 빵가루를 섞고 치대어 패티를 만듭니다. 공기를 충분히 제거해 주어야 구울 때 부서지지 않습니다. 저는 두툼한 패티를 선호합니다. 육즙이 풍부한 속살과 바삭하게 잘 구워진 표면이 조화를 이루죠. 하지만 조리하는 과정에서 매우 신경을 써야 합니다. 두툼한 안쪽까지 열이 골고루 전달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너무 오래 가열하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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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주체
많은 물리학자의 생각에는 공통점이 있다. 객체와 주체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나뉘고, 내가 본다고 유리창 너머 객체의 상태가 변할 리 없다고 믿는다. 주체와 독립된 객체로서의 대상이 있고, 주체의 인식은 객체의 객관적인 속성을 충실히 반영한다는 믿음이다. 내가 보나 안 보나 달은 규칙적으로 모습이 바뀌고, 뉴턴 이전에도 사과는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땅으로 떨어졌다. 세상 속 주체의 위치를 비우고 그곳에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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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입속의 붉은 잎
요플레 뚜껑 뒤를 핥을 때 필요한 기관은 혀다. 풍선껌을 한껏 부풀릴 때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을 하려고 입술에 침을 바르는 순간에도 혀가 없었다면 어찌해야 했을지 난감하다. 아이들은 겨끔내기로 혀를 동그랗게 말 수 있는지 장난치며 논다. 혀는 약 3000개의 미뢰를 가진 맛을 느끼는 감각기관이지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운동기관이기도 하다. 혀가 8종류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근육의 양쪽 끝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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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시도도 시작도 하지 말 것
어느새 8월이다. 2021년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연초의 다짐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연초의 다짐을 지키긴커녕 기억도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을까? 8월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그동안 수십번 새해를 맞았지만 새해의 다짐을 그 해 1월 말까지라도 지킨 경우조차 드물 것이다. 이처럼 우리 대부분은 유리 세공품처럼 섬세하고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다. ‘드라마를 딱 한 편만 봐야지(혹은 게임을 딱 한 판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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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생체 모방 공학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앙골라 남부에 위치한 나미브 사막에는 일년에 10~20㎜ 정도밖에 비가 오지 않는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생물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 이른 아침 물기를 머금은 옅은 안개가 이 나미브 사막에 사는 동식물들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분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하지만 안개가 하도 옅어서 자체적으로는 응축되기 힘들다. 나미브 사막에 사는 딱정벌레는 진화를 통해 등에 친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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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물 부으면 되살아나는 식재료
오늘은 아이에게 돈가스를 만들어주려 합니다. 돼지 등심을 두드려 부드럽게 만들고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차례로 입혀 기름에 튀겨냅니다. 이제 연한 된장국을 만들 차례입니다. 그런데 냉장고에 보관된 채소의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쓰고 남은 것을 보관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대비책은 있습니다. 동결건조된 채소를 따로 보관해 두고 있으니까요. 동결건조란 수분을 함유한 식재료를 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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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논문
지금껏 적지 않은 수의 물리학 논문을 썼다. 그래도 여전히 무척 어렵다. 과학 논문을 펼치면 제목과 저자 목록 바로 아래에 ‘초록’이라고 불리는 논문 요약부분이 보인다. 다른 이의 논문을 살펴볼 때 나는 먼저 초록을 잠깐 읽는다. 초록이 재밌으면, 본문을 꼼꼼히 읽기 시작한다. 제목과 함께 논문 저자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 초록일 수밖에. 지금까지 본 가장 재밌는 초록 1등은 바로 ‘Abstract’ 아래에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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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땀
영화 <기생충>의 생물학적 모티프인 냄새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퀴퀴함’일 것이다. 주인공 가족이 사는 반지하방 벽지에 시커멓게 달라붙은 곰팡이 포자 냄새는 콧속 점막을 타고 올라와 뇌에서 불편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곰팡이는 습도가 60% 이하인 곳에서는 잘 살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습도는 40~60% 사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이긴 하지만 습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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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사회경제적인 지위와 뇌 발달
35억~43억년 전, 지구에 최초로 생명이 출현한 후 지구 환경은 끊임없이 변했다. 이에 따라 살아남는 데 필요한 능력 또한 변했다. 지구를 다녀간 모든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성공을 위해 절실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노력’이라고 판단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노력을 기울이고 적합한 능력을 획득한 생물종만이 살아남았다. 생물 개체가 보유한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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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분야별 탄소 배출과 대응
현재 약 500억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세계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탄소중립정책을 추진 중이다. 따라서 어디서 얼마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를 살펴보고 각 분야에 맞는 감축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2016년 클라이미트워치와 세계자원연구소의 자료를 바탕으로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가 잘 정리한 데이터를 통해 알아보자. 산업생산, 수송, 건물 냉난방 등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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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맛있는 라면의 비밀은 ‘열 관리’
제 아들은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을 좋아합니다. 아내도 라면만큼은 제가 한 수 위라고 인정하죠. 라면을 잘 끓이는 법에 대해 물으면, 저는 ‘중요한 것은 열관리’라고 답합니다. 특히 라면처럼 조리 시간이 짧은 경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요리는 일종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반응에는 에너지, 즉 열이 필요합니다. 라면과 수프를 물에 넣는다고 요리가 완성되지는 않죠. 열이 가해져야 물질의 확산, 호화반응, 단백질 변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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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이해
“그럴 수도 있지. 다 이해해.” 실수한 사람을 위로할 때 하는 말이다. 사정을 헤아려 보니 당신의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내가 당신을 이해한 순간이다. 이해했다고 해서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은 또 아니다. 동의하지 않아도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해’의 영어 단어 ‘understand’에는, 겸허한 마음으로 당신이 있는 곳 아래(under) 서는(stand) 것이 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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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하루살이의 춤
하루살이의 군무(群舞)를 본 적이 있는가? 오랫동안 동서양 사람들의 눈에 고작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미물로 낙인찍힌 하루살이는 물 근처에 사는 까닭에 수서곤충으로 분류된다. 하루살이 애벌레는 맑고 차가운 민물에서 아가미로 숨을 쉬고 여러 차례 탈바꿈을 거듭하면서 몸집을 키운다. 이들 애벌레가 물을 박차고 나와 날개를 펼치는 순간은 대개 초여름날 어스름할 무렵이다. 하루살이가 날 저무는 시간을 노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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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로봇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
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회사에서 2016년에 만든 4족 보행 로봇 ‘스폿’을 기억하시는가? ‘스폿’이 지잉지잉 소리를 내며 산길을 걸어가는 영상이 한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유명해졌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 중국의 한 스타트업이 ‘스폿’과 비슷하게 생긴 ‘알파도그’라는 로봇을 출시했다. 이 로봇의 입문용 모델의 출시가는 약 630만원으로 8300만원 선인 ‘스폿’에 비해 무척 저렴했으며, 지금은 가격이 더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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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단백질 공학
DNA는 대부분 생명체의 유전물질로서 복제되어 후손에게 전해진다. DNA는 전사과정을 통해 RNA가 되고, RNA 중 mRNA는 번역을 통해 단백질이 된다. 어릴 적 생물 수업 시간에 배운 이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를 기억할 것이다. 즉 단백질은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기반하여 20종류의 아미노산이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효소(enzyme), 구조 단백질, 신호전달 단백질 등 세포 안과 밖에서 다양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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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걸쭉함의 미<味>학
아내가 해물 칼국수를 끓인다고 합니다. 저는 밥이 먹고 싶지만, 아들이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메뉴 선정은 아들에게 우선권이 있으니까요. 각종 해물을 넣고 우려낸 맑은 육수에 면을 넣어 끓이던 아내가 깊은 탄식을 내지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본 냄비 안은 난감한 상황입니다. 맑아야 할 국물은 탁해졌고 면은 퉁퉁 불어 있습니다. 평소라면 미리 면을 삶아내고 찬물에 잘 씻은 후 끓는 육수에 넣었을 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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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꼼짝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영화에서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할 때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는 모양을 우리는 ‘꼼짝’이라고 한다. 용의자가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이 신분증일 수도, 권총일 수도 있다. 어떤 행동도 허락하지 않는 “꼼짝 마”로 불확실성의 여지를 아예 없애는 것이 낫다. 물리학자인 내게 ‘꼼짝’의 크기는 위치 정보의 불확실성이다. 자연이 허락한 가장 낮은 온도가 절대영도다. 섭씨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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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이백예순 날 살기 위하여
인간은 바다를 버리고 좁고 건조한 육상에 정착한 성급하고 무모한 조상의 자손이다. 2004년 시카고대학 해부학자 닐 슈빈은 북극 엘스미어 섬에서 발이 있는 물고기 화석을 찾아내 바다와 뭍을 잇는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했다. 뼈와 근육으로 구성된 물고기 지느러미는 닭의 날개, 인간의 팔과 그 기원이 같은 상동 기관이다. 재담을 즐기는 사람들은 엄마의 말을 거꾸로 듣는 자식 물고기가 뭍에 오르는 그림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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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감정에 대한 이해
마음의 온갖 현상들 중에서 정서만큼 흥미를 끄는 것도 드물다. 뇌과학에서도 오랫동안 정서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왔는데, 특히 공포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공포는 많은 동물종에 보존되어 있고, 관측이 수월하며(예: 벌벌 떠는 시간을 통해 공포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도 중요하기(예: PTSD, 포비아)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뉴욕대의 조셉 르두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공포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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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메타버스
200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싸이월드를 기억하는가? 스마트폰으로의 빠른 환경 변화와 세계화에 뒤처지며 페이스북 등 국제적인 SNS에 밀려 사라졌던 싸이월드가 메타버스 기반의 싸이월드Z로 돌아온다고 한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메타와 현 세상을 의미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로, 가상현실보다 확장되어 마치 현실세계와 유사하게 모든 경제, 사회, 문화활동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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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잘 변해야 맛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동태찌개입니다. 먼저 동태를 물에 씻고 비늘을 제거한 후 아가미와 배에 칼집을 넣어 내장을 제거합니다.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저는 특히 이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참 운이 좋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알이 들어 있네요. 알을 잘 떼어내어 흐르는 물에 헹구고 찬물에 담가 놓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조리입니다. 저만의 비밀 레시피 양념으로 국물을 내고 4등분한 동태, 각종 야채,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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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자연
텃밭을 가꾸며 떠오른 생각을 적은 조선시대 윤현(尹鉉)의 칠언절구가 있다. 뾰족한 마늘 싹, 가는 부추 잎, 아욱과 파의 파란 새싹이 돋는 것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 시인은 무사자연귀유사(無事自然歸有事)라고 적었다. 정민은 <우리 한시 삼백수: 7언절구 편>에서 “일없는 자연에서 도리어 일 많으니”로 새겼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자연에서 저절로 놀라운 생장이 일어나는 것에 감탄한 글귀다. 매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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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유월을 안고 사월에 피는 꽃
모란꽃이 피었다. 이제 곡우(穀雨)를 지나 4월 하순에 접어든다. 봄비 덕에 겨울을 넘긴 보리가 푸르름을 더하고 그루터기 남은 논에 물이 찰 즈음이다. 한 열흘 더 지나면 여름에 들고(立夏) 소나무는 연둣빛 새 가지를 한 뼘 더 키울 게다. 시나브로 푸르게 어두워질 한 해의 익숙한 모습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시인의 노랫말에 ‘유월을 안고’ 핀다는 모란이 4월에 꽃을 피웠다. 몇 해 전 학회 참석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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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변화에 대비하는 재미난 상상
세상은 코로나19로 멈춘 듯하면서도 부지런히 바뀌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고요히 계속되던 비대면,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코로나19로 인해 급속히 진전됐다. 카톡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대면 만남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줌 화상회의는 일상이 되었으며, 클럽하우스라는 새로운 모델도 부상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우리에게 충격을 안겼던 인공지능도 성큼성큼 발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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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재활용과 새활용
전 세계가 환경 문제와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버려지던 제품이나 물질을 다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 재활용(recycling)은 분리수거 등의 활동을 통해 익숙하다. 약 20년 전 제시된 개념인 업사이클링(upcycling)은 지난 수년간 매우 빠르게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지는 제품에 새로운 가치와 용도를 부여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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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요리는 균형이다
먹다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습니다. “당신 과학자 맞아? 뚜껑은 덮어야지!”라고 말이죠. 사실 냉장고 안에서는 음식의 건조가 빨리 진행됩니다. 냉장고라는 밀폐된 공간은 낮은 온도로 인해 공기 부피가 줄어드는데, 그러면 내부 압력이 낮은 상태가 되고, 여기에 수분을 머금은 음식이 들어오면 증발이 쉽게 일어나게 됩니다. 압력이 낮아진 공기에는 수분이 증발해 들어갈 공간이 많이 생겨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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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음모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기장이 운항 중 깜빡 졸아 비행기 사고가 났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꾸벅 존 바로 그 기장을 처벌해 조종간을 맡기지 않는 것만으로 장차 다른 기장이 조는 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운항 일정이 과도해 휴식시간을 갖기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 살피고, 역할분담의 장벽이 높아 부기장이 기장을 돕지 못한 것은 아닌지를 조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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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똥 누는 시간 12초
새에게는 이빨이 없다. 껍데기에 탄산칼슘이 풍부한 알을 낳느라 이빨을 잃었다는 가설도 있고, 만드는 데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드는 이빨에 투자하는 대신 새끼를 빠르게 부화하고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지키는 일이 새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가설도 등장했다. 최근 미국 예일대학교 연구진은 부리와 이빨을 가진 약 1억년 전 익티오르니스 공룡의 화석을 자세히 분석한 뒤 뇌를 발달시키기 위해 새가 턱의 근육과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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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과학 칼럼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닮은꼴인 코로나 진단과 알츠하이머 진단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일을 미루다가 큰 노력을 들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는 의미다. 미뤘을 때 문제가 가장 심각해지는 것 중 하나가 건강이다. 더욱이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비용이 늘어나면서 병을 사전에 또는 조기에 진단하고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병의 진행을 사전에 막는 것을 예방의학이라고 한다. 예방의학이 가능하려면 조기진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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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대사공학과 합성생물학의 미래
빨간 장미, 노란 장미, 분홍 장미, 흰 장미 등 장미는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중세시대부터 수많은 육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란색의 장미는 만들 수가 없었기에 파란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었다. 염색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파란 장미들만 있던 상황에서, 1990년대 일본의 산토리사와 호주의 플로리젠사가 파란 장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피튜니아에서 파란색을 낼 수 있는 유전자를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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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과학 칼럼
[요리에 과학 한 스푼]때론 채움보단 비움
아내가 낙지볶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까다롭게 고르고 골랐겠지만 아무래도 해산물이다 보니 스멀스멀 퍼지는 비린내는 어쩔 수 없습니다. 낙지를 다듬던 아내가 밀가루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밀가루를 뿌리고 낙지를 다듬자 신기하게도 비린내가 사라집니다. 밀가루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구멍이 많이 존재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다공질(多孔質) 구조라 하는데, 밀을 제분하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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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꼰대
세상에는 두 종류의 꼰대가 있다. 꼰대라는 것을 아는 꼰대와 그것도 모르는 꼰대. 두 번째가 더 문제다.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아무거나 다 시켜! 난, 짜장면!”을 외치는 직장 상사와 비슷하다. 훌쩍 50대 중반에 들어선 나도 물론 꼰대다. 주변 대학 교수 중 꼰대가 특히 많다. 꼰대에도 중증과 경증이 있다면, 교수는 분명한 중증 꼰대다. 법원 판사, 병원 의사도 마찬가지다. 정보 비대칭성이 커 상대가 반박하거나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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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빼앗긴 봄날의 꿈
머잖아 알알이 붉은 열매를 매단 채로 산수유꽃이 필 것이다. 꽉 닫혀 있어야 할 ‘북극 냉장고’ 문이 지구온난화로 슬쩍 열리면서 미국 텍사스주에 보기 드문 폭설이 내렸지만 그래도 꿋꿋이 봄은 온다. 봄의 출현을 알리듯 꽃봉오리가 벌고 노란 우산을 펼친 듯 20여개의 꽃잎을 일제히 드러내는 산수유의 모습은 가히 장관(壯觀)이다. 동아시아 원산인 산수유는 지구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후 거의 7000만년 동안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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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잠자는 뇌
꿈처럼 멀기만 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코로나19와 함께 갑자기 찾아왔다. 저녁 모임이 줄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가라앉으면서 고요하게 집 안에 머물다 일찍 잠드는 날이 늘었다. 잠자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앙투안 아다만티디스 등의 2019년 논문을 참고하여 수면에 대해 알아보자.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한 느낌을 주는 수면제를 만들 수만 있다면 떼돈을 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약이 조만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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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배양육과 대체육
나는 2018년 1월 말 다보스포럼 중 저녁식사를 겸한 아주 흥미로운 세션에 토론주재자로 참여하였다. 그날 제공된 음식은 고기 파스타였는데 여기 들어간 고기는 미국 임파서블푸드사의 대체육이었다. 임파서블푸드의 CEO 패트릭 브라운이 이 식물성 단백질 성분으로 만들어진 대체육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고 맛을 보았다. 맛과 식감이 실제 고기와 상당히 유사하였다. 예전에 맛이 없고 식감도 영 아니올시다였던 식물성고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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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역설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이 우리의 직관과 상식에 어긋날 때, 이를 역설이라 한다. 결론은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허점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역설이 더 재미있다. 역설(逆說)의 영어 단어 paradox에서 para는 반대 혹은 비정상을 뜻하고 dox는 의견 혹은 생각이라는 뜻이다. 역(逆)은 para에, 설(說)은 dox에 일대일 대응한다. 흥미롭게도 para는 가깝다는 뜻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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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요리의 과학 한 스푼]미생물과 요리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화덕에 넣고 구워야 할 신선한 밀가루 반죽을 그만 밤새 방치해두었습니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반죽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요리사는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반죽으로 빵을 한번 만들어보기로 했는데 그 결과는 대성공.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풍미와 부드러운 식감은 누군가 마치 마법을 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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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행복한 숨 쉬기
서해가 지척인 남도의 들녘에 어린아이가 바람을 맞고 있다. 고개를 들고 지그시 눈을 감은 아이는 이내 손바닥을 편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천천히 반복한다. 약 20년 전 미국으로 이사 가느라 아버지 산소에 잠시 들렀을 때 두 돌배기 아들의 모습이다. 봄뜻이 완연했고 대도시와 사뭇 다른 시골 공기의 신선함을 어린아이도 몸소 만끽했음에 틀림없다. 행복하게 숨을 쉬는 일은 내게 바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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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인공지능의 윤리
인공지능의 활용이 늘어나면서 윤리 문제도 잦아지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고, 작년부터 ‘네이처’에는 표정 인식에 대한 논의가 자주 보인다. 표정은 감정을 나타낸다고 여기곤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으로 표정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 특정한 이슈에 대한 입장, 법정 판결,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표정에서 정말 감정을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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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탄소중립 추진 전략
전 세계는 기후변화를 넘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온실가스 감축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탄소중립(net zero) 정책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 미국, 중국, 일본 등 70여개국이 2050년 혹은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도 지난해 10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하고 12월에는 정부의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세계 각국이 이렇게 선언했지만 현재 석탄, 원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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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풍경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2015년 드라마 <송곳>에서 본 명대사다. 같은 사람이어도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위치가 달라지면 세상을 보는 눈도 변한다는 의미다. 한 사람이 보는 풍경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 누적된 삶의 경험이 천양지차인 두 사람이 보는 풍경의 차이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도 떠오른다. 참과 거짓을 가르는 기준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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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배추와 인간
눈 덮인 고깔 모양 움 안에서 꺼낸 통배추를 반으로 가르면 하얗고 노란 색조가 완연하다. ‘가운데 갈비’란 뜻을 담아 중륵(中肋)이라 불리는 두툼하고 흰 조직엔 수용성 탄수화물이 풍부하다. 중륵을 감싸는 조직인 내엽(blade)은 당근처럼 카로틴이 풍부해 색이 노랗다. 김치의 주재료이지만 생으로도 즐겨 먹는 통배추는 어찌 보면 과일과 닮았다. 둘 다 광합성 부산물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대신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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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과학을 소통하는 더 나은 방법
내가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 이유는 뇌과학이 악용되기보다 선용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면 어려운 것 같지만, 우리말로 풀어 쓰면 그냥 ‘과학 소통’이다. 좋은 소통은 상대의 배경지식과 입장을 이해한 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양쪽의 욕구를 충족하고, 상호 간의 오해를 풀면서 이해를 늘린다. ‘과학 소통’도 마찬가지다. 과학과 대중이 서로의 오해를 풀고 이해를 높이며,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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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올해 떠오른 ‘10대 기술’
매년 중국 톈진과 다롄에서 번갈아 가면서 개최되던 세계경제포럼의 하계 다보스포럼이 코로나19로 인해 개최되지 않았다. 대신 올해는 온라인으로 변화의 선구자 서밋을 개최했고, 나도 폐막 기조세션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 세션에선 클라우스 슈밥 회장의 마무리 발언을 포함해 지난 10일 발표된 10대 떠오르는 기술들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2년부터 매년 10대 떠오르는 기술들을 선정해 발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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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늦출 수 없는 바이오파운드리
반도체산업은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이다. 반도체가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크게 설계, 생산, 패키징 및 조립, 품질검사 그리고 판매 및 유통의 과정이 있다. 실제 웨이퍼를 생산 가공하는 설비들을 갖춘 팹(fab)은 제조설비의 약자로서 이를 갖추는 데만도 수조원의 많은 돈이 든다. 이러한 팹을 갖추고 반도체 설계는 직접 하지 않으며 다른 기업이 설계한 반도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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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비둘기 새끼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병아리 새끼나 개를 어미 삼아 쫓아다니는 오리 새끼를 본 기억이 있다 해도 말이다. 왜 비둘기 새끼는 보기 어려울까? 아마 그 이유는 둥지를 잘 숨기는 데다 새끼가 자랄 때까지 한곳에 머무르는 비둘기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닭처럼 가축화되진 않았지만 비둘기는 인간 집단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생명체다. 본디 절벽이나 암벽에 구멍을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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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융합전략, 생명공학 강국의 발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뜨겁다. 오래전 유럽에서는 생명공학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색깔로 구분하였다. 의학·생명에 관련된 생명공학은 우리의 피 색을 나타내는 레드(red) 바이오텍, 농업·식품과 관련된 생명공학은 나뭇잎 색인 그린(green) 바이오텍, 산업 화학물질 및 소재 생산과 환경에 관련된 생명공학은 화이트(white) 바이오텍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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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과학 칼럼
[사설]한 걸음 더 나아간 우주과학기술, 한국형 시험발사체 성공
한국형 우주발사체인 ‘누리호’의 시험발사체 발사가 성공했다. 한국항공우주원은 28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한 “시험발사체 엔진이 당초 목표했던 140초 이상 연소했다”고 발표했다. 시험발사체의 발사 성공은 엔진의 연소시간으로 평가하는데, 이번 발사체는 목표 연소시간을 넘어 정상 추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번 시험발사체에 장착된 75t급 엔진은 한국 기술로 개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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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과학 칼럼
[기고]톈궁 1호 추락이 주는 시사점
지난 주말 중국 최초의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 1호의 추락은 세계 각국의 이목을 끌었다. 통제 불능 상태가 된 톈궁 1호가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예측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톈궁 1호 잔해는 우리 시간으로 4월2일 오전 9시16분경 남태평양 해상에 아무 피해 없이 흩어져 떨어졌다. 톈궁 1호는 지난 2년 동안 지구 저궤도에서 마하 20이 넘는 속도로 선회하며 지구 중력에 이끌려 고도를 서서히 낮추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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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과학 칼럼
[기고]우주개발, 일관되게 추진해야
지난 6일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화성으로 쏘아올린 ‘팰컨 헤비’가 화제다. 1973년 달로 향한 새턴V 이후 가장 대규모 로켓이다. 민간 기업이 개발한 초대형 발사체가 전기차를 싣고 우주로 날아오르는 모습에 많은 외신들은 ‘대담한 도전’이라며 찬사를 보냈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제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한 직후여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정부의 강력한 비전 제시와 지속적인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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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원의 IT세상
랜섬웨어와 4차 산업혁명
한순간 디지털 인류는 멈춰서야 했다. 한 어머니는 컴퓨터에 저장해둔 여덟 살 딸과의 추억이 담긴 모든 사진을 강탈당했다. 어떤 회사 직원은 랜섬웨어로 사업상 필요한 파일을 잃어버려 해고당할까봐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악랄한 범죄자들에게는 인정사정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수익성만 좋다면 그들은 변종을 거듭하는 진화된 랜섬웨어를 만들 것이다. 며칠 전 사상 최대의 랜섬웨어가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150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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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
얼추 10만개에 달하는 우리 머리카락의 평균수명은 대략 5년이다. 이 머리카락 한 가닥을 기다란 원통이라고 해보자. 몇 올의 머리털을 세로로 나란히 세우면 폭이 1㎜가 될 수 있을까? 이는 머리카락의 직경이 얼마쯤 되겠느냐는 질문과 같다. 한국인 머리칼의 평균 직경은 80마이크로미터(㎛)다. 그러므로 약 13개의 머리카락을 일렬로 세우면 1㎜가 된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세포는 어떤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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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잎 없이 꽃을 피운다는 건
가을 잎이 봄꽃보다 붉다는 한시 구절을 들어가며 사람들은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여기서 봄꽃은 붉은 매화쯤 될 것이다. 봄의 꽃, 가을의 단풍 둘 다 ‘붉지만’ 쓰임새는 분명 다르다. 매화꽃은 벌을 불러들이지만 가을 단풍은 하릴없이 떨어질 뿐이다. 하지를 지나 낮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활엽수 잎은 푸름을 버릴 채비를 한다. 붉은 잎은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겠다는 식물의 결연한 선언에 다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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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원의 IT세상
스티브 잡스와 이재용
삼성전자(이하 삼성)는 스마트폰 경쟁에서 계속 선두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일찌감치 4차 혁명에 나선 구글 등 유수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는 걸까. 소니나 노키아, IBM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의 위기를 점치는 이들도 있지만 갤럭시8 판매가 시작되는 4월 이후가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은 갤럭시8에 4차 혁명의 화두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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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귀지’의 생물학
20세기 초반 비타민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던 영국의 프레더릭 홉킨스는 식물을 연구하는 동료 과학자들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배설기관이 따로 없는 식물을 ‘더럽다’고 여긴 까닭이다. 장차 아파트가 들어설, 한바탕 땅을 뒤집어 놓은 척박한 곳에 자리 잡은 버드나무를 <나무수업>의 저자 페터 볼레벤은 개척자 식물이라고 칭했다. 몸피가 허연 자작나무도 또한 개척자 식물이다. 개척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버드나무와 자작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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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원의 IT세상
인공지능 통제불능 시대 오나
며칠 전 밤새 내린 눈 때문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일찍 나와서인지 지하철 안은 생각보다는 덜 붐볐다. 승객 대부분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그들은 예외 없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야릇한 침묵 속에 스마트폰에 무표정하게 고정된 시선, 그곳에 인간의 생명 같은 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생동감과 착각한 건 아니다. 그들은 마치 목적 없이 내달리는 유령열차에 몸을 맡긴 인공지능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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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생물학 제1법칙은 ‘고귀함’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생물학 제1법칙으로부터 얘기의 실마리를 풀어보자. 너무 당연하다고 여긴 탓인지 교과서에서조차 법칙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지만 나는 ‘어미아비 없는 자식은 없다’는 명제가 생물학의 으뜸 법칙이라고 본다. 이 법칙의 면면을 살펴보기 위해 족보를 예로 들어보자. 가령 경주 김씨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을 시조로 한다. 족보는 시조로부터 시작해서 아래쪽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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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교양, 취미, 과학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세련된 몸가짐과 적절한 외국어 실력, 다양한 문화지식, 그리고 국제정치에 대한 해석과 진단, 동서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이해, 클래식 음악의 유명 피아니스트별, 지휘자별 특성과 구별법 등등? 이런 교양인과 시간을 보내면 주워듣고 배울 것이 많아 재미있다. 세상이 교양인으로 가득 차면 평화가 넘쳐날 것 같은데 실상을 별로 그렇지 못하다. 점잖은 교양인들이 음풍을 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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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과학의 아나키즘
지난주 학교 앞에 다리 하나가 열렸다. 카이스트 정문에서 대전 시내에 곧바로 이어지는 다리로 융합의 다리, 과학의 다리 등 우여곡절 작명 과정 끝에 ‘카이스트교’로 개통됐다. 다리 중간에 과학자 기념 공간이 있는데 한 편에는 세계적인 과학자 넷, 다른 편에는 한국 과학자 셋의 흉상이 놓였다. 일부러 한국 과학자 흉상 자리를 하나 남겨 놓았는데 미래의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서란다. 포스텍에도 학생들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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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엔트로피와 햄버거
엔트로피라는 물리학 용어가 있다. 다른 전문 용어와 달리 엔트로피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 있는 개념이기에 비교적 익숙하다. 엔트로피는 흔히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질서가 없고 혼란스러울수록 엔트로피가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릇에 콩과 팥을 잘 섞어 놓은 상태가 콩과 팥을 깔끔하게 분리해 놓은 상태보다 엔트로피가 높다. 하지만 엔트로피를 무질서의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대강만 맞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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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성찰이 필요한 ‘생명공학의 질주’
“무엇을 상상해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다. 아니 그 이상이다.” 10년 전부터 세계 생명공학계에서 줄곧 들려온 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생명공학 기법이 개발되고, 이를 적용한 실험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생명체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작업이 그 중심에 있다. 변형의 대상에 농산물과 가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작은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출범한 합성생물학 분야였다. 말 그대로 생명체를 합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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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몇 명이 모였나 세어보자
한 주제로 모인 군중의 수는 사안의 시급성이나 지지 세력의 위력을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각 진영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군중 수는 다르게 보이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많았으면 하는 쪽과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쪽에서 내놓는 집계는 이 때문에 항상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일정 공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의 수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하는 이유에는 정치적 진영논리가 아닌 현실적인 요구도 있다. 저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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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시인을 위한 물리학
캠벨 수프 캔을 나란히 늘어놓은 그림으로 유명한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스스로를 ‘심오하게 피상적인’(deeply superficial)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그가 죽기 일년 전 제작한 자화상에 딸려 있는 표현이다. 이 자화상은 워홀 사진 네 장을 실크스크린으로 겹쳐 인쇄해 평면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3D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해석에 따라 ‘deeply’는 그냥 ‘매우’처럼 다음에 오는 형용사를 단순히 강조하는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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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빅데이터, 만능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여겨졌다. 각종 예측 결과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그토록 많은 표 차이로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대통령 선거 제도의 기묘한 특징 때문에 클린턴이 실제 득표수에서는 앞서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진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근소한 차이도 아니고 완패를 당했다는 사실은 이변이었다. 당연히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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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컴퓨터 버리는 방법
한 해 동안 버려지는 PC, 노트북이 100만대가 넘는다. 그런데 컴퓨터는 냉장고와 달라서 반드시 이전 흔적을 지우고 그것을 확인한 뒤에 버려야 한다. 외국 경우지만 중고시장에서 구한 PC의 하드에서 수만건의 환자 정보가 복원된 사례에서 보듯 무심코 버린 컴퓨터는 해커의 좋은 먹잇감이다. 컴퓨터에서 파일을 없애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버린 파일을 담아둔 휴지통을 비우는 작업도 파일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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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새로움은 가치가 아니다
첫애가 첫애일 수 있는 것은 둘째, 셋째처럼 다른 애들이 있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첫애는 외둥이가 되어버린다. 처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다음이 있어야 하는 게 사는 이치임에도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평가에서는 종종 이를 망각하는 제도가 설계되고 존속된다. 대표적인 것이 유사·중복연구 방지제도이다. 정부는 국가연구개발과제 수행 시 ‘국가연구개발사업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7조에 따라 국가과학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