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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기에 초··고 시절을 보냈고 냉전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이념 갈등이 심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심한 분란의 씨앗은 정치적 이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나 계급만큼 사람들을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이 종교, 인종, 문화의 차이라는 것은 유학을 가서야 깨달았다.

 

조그만 외교전문잡지 기고문에서 시작한 하버드대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책으로 출간된 해가 1996년이다. 그해 유학길에 올랐는데 이 신작을 접하고는 다소 의외였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헌팅턴 같은 학자가 문명 같은 개념을 말하는 게 우산 장수가 비가 그치니 짚신을 파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헌팅턴은 냉전 시기 이념 투쟁의 전장이었던 제3세계의 정치불안정을 정치질서의 부재로 보고 그 원인을 급속한 사회변화와 상대적으로 더딘 정치제도화의 격차에서 찾았다. 그의 제3세계 정치변동론은 당시 개발도상국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됐다. 실제로 헌팅턴 자신이 브라질의 군사정권이나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

 

그러니 냉전이 종식되자마자 이념 얘기는 뒷전에 두고 갑자기 문명 충돌을 들고나온 게 석연치 않았다. 문명 충돌론은 한마디로 탈냉전 시대에는 더이상 좌·우라는 이념 갈등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권, 특히 서구와 이슬람 문명 사이의 갈등이 새로운 분쟁의 진원지가 된다는 것인데 당연히 숱한 비판이 쏟아졌다. 서구패권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라든가, 문명권 구별 근거가 빈약하다든가, 차이가 꼭 갈등이 되는 건 아니라든가, 한동안 동네북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에 아직도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 “사람이 절반은 보수, 절반은 진보일 수 있지만 (그럼 대충 중도가 될 터인데), 절반은 가톨릭, 절반은 무슬림인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문제는 때에 따라 사안에 따라 타협이 가능하지만 종교나 인종 등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에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776, 지금으로부터 240년 전, 대서양을 가운데 두고 근대 정치경제 질서의 근간이 되는 두 개의 기념비적 저작이 나왔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토머스 제퍼슨의 독립선언문이다. 전자는 영국 산업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근대자본주의 경제질서를 이론화하였고, 후자는 미국 독립전쟁 와중에 인간의 행복과 자유를 권리로 천명함으로써 근대민주주의 정치의 핵심 전제를 세웠다.

 

그런데 같은 해에 이 둘에 비해 덜 알려져 있으나 그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근대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저작이 나왔다. 독일의 자연학자 요한 블루멘바흐가 쓴 <인류의 자연적 다양성>이라는 책이다.

 

백인을 흔히 코카서스인이라고 하는데 코카서스인이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이가 바로 블루멘바흐다.

 

동식물 분류학으로 유명한 린네는 인류를 네 인종(아메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으로 나눴는데 이 분류는 특정한 기준이 있다기보다 지리적인 구별에 가까웠다. 블루멘바흐는 스승인 린네의 분류를 발전시켜 다섯 인종으로 나눴는데 이게 인종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된 것이다. 넷에서 다섯으로 바꾼 것이 뭐 대수인가 싶지만 아무런 위계 개념이 없었던 린네의 인종 구별이 블루멘바흐에 이르러 뚜렷한 위계를 갖게 된 것이다. 즉 코카서스인을 정점에 두고 한쪽에는 아메리카 인디언-아프리카인, 다른 쪽에는 말레이인-아시아인으로 계보가 그려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블루멘바흐는 동시대인들에 비해 훨씬 평등주의적 사고를 지닌 학자였다. 그는 두뇌 크기나 재능, 정신적 능력 등 유색 인종을 어떻게든 열등하게 구별하려 했던 동료 학자들과 달리 인종들이 신체적, 정신적 능력에서는 대동소이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분류라는 것은 기준이 있어야 하는 법, 그래서 찾은 것이 미적기준이었다. 코카서스 산맥에서 발견된 두개골이 가장 완벽하게 아름답다는 이유로 인류가 그 지역에서 발원했을 것이라는 매우 비과학적인 추론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코카서스인을 정점에 두고 그로부터 퇴화한 네 개 인종을 대칭적으로 둔 것이다.

 

동네북이 되었던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9·11 테러 이후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의 이론이 서구문명 우월주의의 냄새가 나는 건 분명하지만 냉전 시기 이데올로기 갈등 밑에 흐르고 있던 인종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이었는지 각성시켜 준 것만은 사실이다.

 

김소영 |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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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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