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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올해 들어 네 명의 KAIST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어제 네 번째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땐 참담한 기분마저 들더군요. KAIST의 학사관리 시스템에 대한 외부의 비판이 빗발친 데다 마침 학내 대자보까지 붙었던 날이었으니까요. 경쟁에 짓눌렸던 학생들도 ‘모두들 힘들구나, 함께 바꿔나갈 수 있겠다’라는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하지만 하루 하루가 버티기 힘든 사람도 있었던 겁니다.

징벌적 등록금제에 대한 비판이 봇물치자 어제 서남표 총장이 8학기 내 졸업자에 한해 성적 조건부 등록금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말과 함께요. 지난 4일 학내 게시판을 통해 ‘명문대생이 되려면 나약함을 이겨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힐 때만 해도 사태가 더 확대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허나 서 총장이 생각한 것보다 아이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는 훨씬 더 심각했던 거죠. 종종 대전 캠퍼스에 다녀오면서 접하는 학생들의 표정이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았는데, 사람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참단한 표정의 서남표 총장. (출처: 연합뉴스)



서 총장 부임 이후에만 이런 사건이 발생한 건 아닙니다. 지난 1995년과 96년에도 4명이 목숨을 끊었고 2001년과 2003년에도 간간히 벌어졌던 일이더군요. 2003년 자살한 학생은 알고 보니 제 고등학교 후배였습니다. 저는 가끔 기숙사에 머무는 학생들이 이런 감정적 상처의 회복이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제게 암울한 기숙사의 추억이 있어서 드리는 말씀이니 성급한 일반화라고 비난하지는 말아주세요.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즈음, 전국 곳곳에 새로 과학고가 생기고 있었습니다. 광역시와 도를 분리해 하나가 더 만들어지는 형식이었죠. 중2때부터 시에서 운영하는 과학반에 다니고 있긴 했지만, 과학고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새로 짓는 과학고에 대해 종종 말씀을 흘리시더군요. ‘시설이 좋을 거다, 혜택이 많을 거다, 기숙사에 있으니 공부만 할 거다...’ 라고 말이죠.

믿지 못하시겠지만 당시 저는 ‘공부만 할 거다’에 상당히 끌렸습니다. ‘모태태만’인 저는 게으르기가 이를 데 없어서 꼭 필요한 게 아니면 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중3 후반기쯤 저는 ‘과학고에 가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해도 어찌저찌 좋은 대학에 갈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붕에 작은 천문대 돔까지 있는 붉은 벽돌 건축물에서 고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주변엔 과수원 뿐이었고, 쉬는 시간에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구멍가게를 다녀올 수조차 없는, 그런 고립된 곳에 있었습니다.

위부터 학교 본관, 옥상 위의 돔, 주변 과수원 풍경 (출처: ㅈ과학고 홈피)

 

그해 수학여행 코스는 대전세계엑스포/KAIST 견학이었습니다. (참 과학고스럽죠?^^;) 엑스포공원은 사람으로 바글거렸고, 화장실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공부하기 편한 머리=숏커트‘라고 생각해서 귀 위까지 파먹은 커트머리를 했던 저는 화장실에서 영문도 모르고 아주머니들의 손가락질과 눈흘김도 꽤 받았습니다. KAIST 견학 중엔 ‘과학고 2년 수료 후 KAIST에 와서 20대에 박사가 되라’는 꿈을 전달받았습니다. 그때 본 캠퍼스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참 많았고, 지대가 평평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 적성이 딱히 수학이나 과학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심드렁했더랬습니다. 언니들이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서울로 학교를 가야한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KAIST에 가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전원 기숙사생활’이었습니다. 좋은 추억이 없지야 않았겠지만 고교 기숙사 생활은 딱 한마디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면학실 풍경. 저희 때는 없던 사물함이 뒤에 있군요. (출처: ㅈ과학고 홈피)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장을 뛴 다음 체조를 하고, 씻고 짬빱을 먹은 뒤 교실로 가면, 8시부터 12시까지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고 나면 6시까지 다시 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저녁식사 후엔 7시부터 10시, 다시 10시 20분에서 12시까지 면학실에서 자습을 해야 하루 일과가 끝났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저녁 8시반쯤부터 엎드려 자다가 9시쯤 사감선생님 오시면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10시에 크림빵과 우유로 간식을 먹으면 잠시 멀쩡한데 11시쯤이면 어김없이 엎드려 있더군요. 종이 치는 12시가 되면 신데렐라마냥 눈이 말똥해져서 다시 과자를 먹다가 1시쯤 잠이 들곤 했죠. 가끔은 밤새 만화책을 보고 수업시간에 서서 졸다 무릎이 꺾여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고요.

학교-집-학교-집만 오가는 모범생이라도 오며 가며 세상구경을 할 수 있는데, 기숙사-교실-기숙사-교실 이렇게 오가는 생활은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게다가 친구들과 24시간 동고동락하는 생활도 스트레스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이상 내가 일등이 아니라는 박탈감과 열등감이 모두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남의 것을 훔치는 아이, 히스테리 부리는 아이, 코피를 한바가지씩 쏟는 아이 등등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드러나기 시작하더군요. 우리 중 누구에게도 서로가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줄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이상 기숙사라는 곳에 살고 싶지가 않더군요.



그래도 다른 친구들은 괜찮았나 봅니다. 고교 2년을 마치고 KAIST로 간 친구들은 나름대로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학교 쪽문만 나서면 관광특구라서 24시간 놀 수 있다는 궁동이 있었고, 그 곳엔 ‘학생이 이기나 주인이 이기나 보자’는 무한대 노래방이 있었고, 대학생이 되었으되 성인이 아니라서 술을 마실까 말까 고민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성적이 아주 낮지만 않으면 등록금과 식비가 다 나왔다고 들었는데, 그렇다고 나태하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습니다. 제 주변만 놓고 따져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선후배끼리 모여서 벤처를 만들거나 규모는 작지만 독특한 일을 찾아 도전하는 쪽은 KAIST 출신들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서울대 출신 친구들은 주로 안정적인 대기업만을 찾는 편이고요.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제목을 달았더니 다들 제게도 되물으시더군요. "니 얘기냐?"라고...



현재 KAIST 학생들의 고통은 자괴감일 겁니다. 징벌적 등록금으로 부모님께 거액의 부담을 안겨드리는 게 죄송하기도 하겠지만,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것이 앞날에 대한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위로해줄 선후배 관계도 약하고, 가족도 멀리에 있습니다. 다른 대학들에선 동아리 행사와 축제로 떠들썩한 봄날에도 KAIST는 조용한 편입니다. 농가와 결연을 맺어 동아리 사람끼리, 학과 선후배끼리 딸기파티를 수차례 하는 게 그나마 재미라고 하니까요.

저는 KAIST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을 더 사랑하길, 그리고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하길 바랍니다. 성적이 나쁘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은 긴 인생에서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KAIST를 졸업하고 연기를 하는 선배도 있고 중도에 그만두고 나와서 글을 쓰는 친구도 있는데, 정해지지 않은 다른 길을 가고자하는 과정도 그 사람의 매력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겁니다.

하다못해 저도 대학 학점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신문사에 들어와서는 그닥 흠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건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작년에 KAIST 과학저널리즘 대학원에 들어갈 때는 ‘이 학생은 공대 출신이니 뽑지 말자’는 의견을 ‘학점을 봐라, 이 학생은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이 눌러 극적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는 뒷이야기가 있더랍니다. 어쨌건 오늘의 대학생들이 인생을 길게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네요.

쏘댕기자(트위터 @sowhat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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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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