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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어려운 게 좋을까요, 쉬운 게 좋을까요?
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로 내년 중 논문을 써야하는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실 논문이라는 것을 직접 찾아 읽어본 것도 올해가 거의 처음인데요, 주장이 흥미롭더라도 그 근거를 옛날 어느어느 논문에서 어떻게 나왔더라는 걸 다 밝혀써야하다보니 어렵고 지루한 부분도 좀 있더군요. (방금 갓 논문을 쓰고 영국에서 돌아와 복직한 동기는 "논문은 재미있는 게 좋아"라고 하는 군요.)

태양중심설이 처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은 신이 만든 세상에 대한 믿음을 깨고싶지 않았기 때문도 있겠지만, 코페르니쿠스가 내놓은 논문이 너무 어려워서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학비평가 아서 케스틀러의 주장에 따르면 그 책은 정말 파리 날렸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오언 깅거리치의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정말로 아무도 읽지 않았을까에 대해 추적합니다. 그것은 그가 발견한 책 한권에서 시작됩니다.



지식의숲, 장석봉 옮김, 1만6000원



과학비평가 아서 케스틀러는 초기 천문학의 역사를 다룬 베스트셀러 ‘몽유병자들’에서 16세기의 한 논문에 대해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자 “역사상 가장 판매가 신통치 않은 책”이라는 혹평을 남겼다. 이 논문의 이름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중심설에 의문을 제기하며 태양중심설을 정교하게 설명해놓은 기록이다.

1970년 가을, 근대과학혁명을 불러온 코페르니쿠스의 탄생 500주년 기념행사 준비에 참여하게 된 저자는 문제의 논문이 출간 당시보다 20세기 이후에 더 많이 읽혔을 것이라 추정한다. 태양중심 우주론을 다룬 첫 5%는 “지적으로 즐길 수 있게” 쓰였지만 나머지 95%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전문적”이었기 때문이다. “구입해서 읽고 활용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선전문구가 무색하게도, 당시의 독자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케플러·튀코 브라헤·갈릴레이 등 천문학자와 출판업자 9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이 책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 확실했다.

그러던 중 저자는 에든버러 왕립천문대에서 충격적인 책 한권을 만난다. 희귀도서들을 둘러보던 중 그가 발견한 ‘회전…’ 초판본에는 여백 가득히 그림과 글이 적혀있었다. 너무 어려워서 아무도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가장 전문적인 뒷부분에 집중적으로 적힌 주석의 주인공은 1540년대 유명 천문학자 에라스무스 라인홀트로 밝혀진다. 

이 특별한 책 한권에 홀린 그는 오르후스에서 베이징, 코임브라에서 더블린, 멜버른에서 모스크바, 장크트갈렌에서 샌디에이고까지 수십만 ㎞를 여행하며 도서관을 뒤진다. 성인, 이단자, 불량배, 음악가, 영화배우, 의사, 장서광들이 소유했던 수백권의 초판·재판본들 속의 필체와 제본방식은 그를 미궁에 빠지게도 하고 불타는 연구경쟁 속에 던져넣기도 한다. 결국 그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다. “아서 케스틀러는 완전히 틀렸다”는 것이었다.

피에르 가상디가 쓴 전기(1654년)에 실린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모습. 이 초상화는 전통적으로 그의 자화상이라고 여겨지는 그림을 토대로 그려졌다.

저자인 하버드대 과학사 교수 오언 깅거리치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소행성을 갖고 있는 저명한 천문학자다. 그는 30년 동안 600여권의 ‘회전’ 초판·재판본을 찾아냈고 그 결과를 “코페르니쿠스의 ‘회전에 관하여’의 주석에 관한 조사”라는 책으로 펴냈다.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은 이 ‘주석’을 펴내는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회고록이다. 표지나 여백에 남겨진 필체와 흔적을 통해 책의 원주인과 이동경로를 찾아내는 집요한 조사과정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천문학사 저널’에 실린 서평의 “책에 관한 책에 관한 책”이라는 표현에서 더 나아가 ‘위대한 책에 관한 집요한 책에 관한 매혹적인 책’이라 말해도 될 것 같다.

책 한권에 대한 이 완벽한 연구는 이제 종종 경매에 나온 희귀본이 도난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사용되곤 한다. 책 말미에 ‘회전…’ 초판과 재판본을 소장하고 있는 나라 목록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한권도 없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8권, 중국에 1권이 있다하니 속이 쓰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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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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