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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제주도에 갔었다. 한국과학사학회가 열렸었는데 나는 짧은 초청 강연을 했다. 강연 하루 전날 제주도에 가서 제주대학교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윤태웅 교수를 만났다. 차를 타고 어느 오름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윤 교수가 내비게이션을 잘 살펴보라고 말을 걸었다. 익숙하지 않은 화면이었다. 우리가 탄 차는 (당연히)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내비게이션 속의 우리 차는 화면 아래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차에 같이 타고 있던 지인들이 한마디씩 의견을 내놓았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내비게이션 화면의 방위가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면 위쪽이 북쪽이었다면 아래쪽이 남쪽 그리고 왼쪽이 서쪽이고 오른쪽이 동쪽이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의 화면은 보통 자신이 타고 있는 차가 항상 중앙에 있고 직진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구성되어 있다. 주변 도로가 자신이 운전하는 차를 중심으로 그때그때 움직이는 것이다. 남쪽 방향으로 가고 있었으니 내비게이션 속의 우리 차가 아래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늘 내비게이션을 켜놓고 운전을 하면서도 거기에 이런 ‘지도 고정 모드’가 있다는 사실을 여태껏 몰랐다. 보통의 내비게이션 모드가 운전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이라면 지도 고정 모드는 운전자를 객관화시킨 상태에서 주변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즉각 지도 고정 모드에 한 표를 던졌다. 운전자가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운전을 한다는 게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떤 내비게이션 모드를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최소한 나는 지도 고정 모드에 매혹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네비게이션에는 자동조정모드 이외에 지도고정모드도 탑재되어 있다. (출처 : 경향DB)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수업 시간에 별자리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한 여자아이가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교과서에 실린 별자리 그림이 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동서남북의 위치가 틀린 것 같다는 것이 그 아이의 질문의 핵심이었다. 교과서 속 별자리 지도를 보면 보통 위쪽이 북쪽, 아래쪽이 남쪽, 왼쪽이 동쪽 그리고 오른쪽이 서쪽으로 되어 있다. 날짜와 시간에 따라서 볼 수 있는 별자리를 알려주는 회전 별자리판도 이런 식으로 동서남북을 배치해 두고 있다.

잠깐 가만히 생각해보자. 북쪽을 바라보면서 서 있다고 하면 반대편이 남쪽일 것이다. 오른쪽이 동쪽이고 왼쪽이 서쪽이 된다. 그런데 별자리 지도에서는 북쪽에서 왼쪽이 동쪽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 아이가 문제 제기를 한 것이 바로 이 모순이었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인쇄가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 아이가 그렇다면 별자리 모양도 모두 뒤바뀐 것이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냥 잘 모른다고 하고 다음 시간까지 조사해서 알려주겠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그 아이를 타박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교과서에 실린 별자리 지도나 회전 별자리판은 우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를 가정하고 만든 것이다. 교과서 속 별자리 지도나 별자리판을 들어서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올려다보면서 방위를 비교해보라. 일상과 별자리 지도 속의 동서남북의 위치에 모순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별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올려다본다는 간단한 상식을 이해하면 금방 이해될 수 있었던 해프닝이었다. 한편 자신의 위치를 여러 각도에서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도 함께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아마추어 천문가였던 나는 쉬는 시간에 그 영민한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런 내용을 설명해주면서 위로를 했다. 그 결과는 달콤했다. 짝사랑하던 그 아이와 ‘썸’을 타기 시작한 것이었다. 별을 알면 별을 따지는 못해도 사랑을 얻을 수는 있다.

어느 예술가는 TV 화면이 거꾸로 보이도록 조정을 해두고 TV를 본다고 들었다.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위한 예술적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쉽게 그 모드에 적응이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건축가는 건물을 지을 땅으로 달려가기 전에 먼저 근처에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건물을 지을 터를 그 주변 환경과 함께 살펴본다고 한다. 새로운 좌표계에서 세상을 다시 보는 노력이야말로 문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좌표계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면서 세상을 유연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창의성의 첫 단계라고 할 것이다. 같아 보이는 것 사이에서 다른 점을 찾아내고 달라 보이는 것 속에서 보편적인 패턴을 찾아내는 유연성이 절실한 시대인 것 같다.

한번쯤 지도 고정 모드로 운전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조금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유체이탈화법에 탐닉해서 그 함정의 구렁텅이로 빠지면 큰일 난다. 명심 또 명심해야 할 일이다.


이명현 |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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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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