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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석 교수 (인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1959년 2월 1일 시카고 선데이 트리뷴(Chicago Sunday Tribune)지의 10면에 다음과 같은 사진이 실렸다.



이 사진의 내용은 미래의 전자 가정 도서관(electronic home library)의 모습을 상상해본 것인데, 거실에서 천정에 비쳐지는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책의 내용을 읽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부터 50여년 전인 1950년대 말 무렵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미국에서는 1954년부터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그림에 대한 설명문의 내용으로 볼 때, 이 무렵부터 TV의 내용을 녹화해서 볼 수 있는 텔레비전 레코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는 1958년 LG 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주)가 설립되어 1959년 진공관식 라디오를 생산하였고, 1966년에는 전화기를, 1966년에는 흑백 TV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 그림을 보면서 드는 생각 중의 하나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것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상상해 내기는 힘들고, 현재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미래에도 계속 사용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그 당시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던 마이크로필름이 가정에서도 널리 사용될 것이라고 예상했었지만, 이 그림에 나오는 것과 같은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책의 내용을 천장에 비추어 보는 가정 도서관은 결국 출현하지 않게 된다.


최근 서점에 다녀 온 후배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서점에서 사전 판매 코너가 사라졌다고 한다. 하기야 요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종이로 된 어학사전이나 백과사전을 찾아보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전자사전이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사전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앞으로 종이로 된 사전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박물관을 찾아야 할 시기가 가까워 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종이 문서는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될 것인가?


지금 인류는 엄청난 속도로 책을 디지털화하고 있다. 구글에서는 2004년말부터 시작된 구글 북스 도서관 프로젝트(Google Books Library Project)를 통해 전 세계 도서관의 책 내용을 광학 문자 인식(OCR: 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기술을 사용하여 디지털화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현재 구글 북스에서 검색할 수 있는 책 수는 700만권 이상이라고 한다. 현재 구글 북스 홈페이지에는 “Google은 저자 및 발행자와 획기적인 계약을 체결했습니다.”라는 문구가 보이는데, 2010년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이 계약 내용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2011년 3월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구글이 미국 도서관 소장자료에 대한 온라인 접근 권한을 위해 1억 2500만달러를 지불하고 미국 작가조합 및 미국 출판사 협회와 합의한 계약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부분은 절판된 책에 대한 구글의 접근 권한이라고 한다. 절판된 책이라도 저작권 보호를 받지만, 저자로부터 별도의 허락 없이 구글이 무분별하게 책의 내용을 스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 북스 서비스



책의 내용을 디지털화하는 것도 좋고, 인쇄본 없이 디지털 형태로만 문서를 생성하는 것도 좋지만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디지털 자료의 보존 연한이다. 필자는 1990년대 초반에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 때로부터 20년 정도가 흐른 2008년 여름, 학교가 송도로 이사를 하게 되어 연구실 짐 정리를 하다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레이저 프린터로 출력했던 세미나 자료가 들어 있는 바인더 파일을 열어 보니 인쇄된 글자가 모두 사라져버린 백지 상태의 종이가 몇 장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레이저 프린터의 성능이 좋아졌는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레이저 프린터로 출력한 인쇄물의 수명이 20년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또한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테이프에 받아 놓았던 프로그램 파일들도 모두 지워져서 복구할 수가 없었다. 

디지털 자료를 보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테이프를 사용할 수도 있고, DVD나 블루레이 등의 광학 디스크를 사용할 수도 있으며, 하드 디스크에 저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저장 장치의 보존 연한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 이러한 저장 장치에 자료를 저장하기 시작한지가 오래 되지 않았으니 과연 100년 후에도 DVD나 하드 디스크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를 읽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결국 중요한 자료의 보존을 위해서는 디지털 형태로만 저장할 게 아니라, 종이 문서나 마이크로필름과 같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매체에도 저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가장 보존 연한이 긴 매체는 돌에 문서의 내용을 새겨 놓는 것이 아닐까? 광개토대왕비나 로제타스톤과 같이 수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내용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돌에 새기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다. 그러나 모든 문서를 돌에 새길 수는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종이 문서는 계속해서 사용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레이저 프린터로 출력한 종이 문서 위에 얼마나 오랫동안 글자가 남아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기록이 디지털 문서로만 존재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앞으로 1000년이나 2000년 후에 고고학을 연구하는 우리의 후손들은 절대로 우리가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 알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1799년 프랑스인이 이집트 로제타 지역에서 발견한 로제타스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집트 상형문자,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 가 새겨져 상형문자 해독의 기초가 되었다.



필자 채진석은

1964년 서울생.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고,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서 199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한국학술재단 부설 첨단학술정보센터에서 전국 대학도서관의 목록 데이터를 통합하여 종합목록을 구축하는 사업에 참여했으며, 1998년 8월부터 인천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과 친구되기 운동을 펼치는 사회복지법인 한벗재단에서 이사로 일하면서, 장애인들의 컴퓨터 사용을 도와주는 정보통신 보조기기와  접근성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쓰고 있다. 정보화 역기능 및 정보격차 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2009년 12월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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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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