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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전신을 상용화한 마르코니는 기술혁신과 사업적 수완을 결합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전자기파를 활용해서 통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마르코니만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전파를 먼 거리에서 안정적으로 주고받는 일은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과제였다. 마르코니는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수많은 실험을 통해 무선통신 가능 거리를 상당히 늘린 후, 상용화를 위한 투자자를 찾기 위해 영국 해군에 눈을 돌렸다. 영국에 유력한 지인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영국 해군이라면 안개 자욱한 근해에서 항구에 진입하는 배를 인도하거나 적함을 구별하는 일을 도울 수 있는 무선통신의 잠재력을 중시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마르코니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영국 해군은 마르코니의 무선장치가 갖는 군사적 중요성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마르코니의 사례는 군대가 첨단 과학기술에 왜 적극적 관심을 갖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쟁에 활용되는 인적·물적 자원은 훨씬 더 생산적인 방식으로 인류의 복지를 위해 사용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기는 일에 몰두했던 힘있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과학기술을 활용해 적보다 한 발 앞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목적을 위해서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수준의 인력과 자원이 집중되면서 역설적으로 그 결과 놀라운 혁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말라리아에 효과적인 약물을 찾는 과정에서 미 육군이 담당한 역할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예전부터 널리 사용되던 키니네를 정제한 클로라퀸 등의 약물에 말라리아 원충이 내성을 갖게 된 것이 20세기 중반이다. 당연히 많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약물을 찾는 연구를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 과학자들은 문화혁명 시기에 칭하오수라는, 쑥 엑기스를 정제한 약물을 개발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해외에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기에 서양 학자들은 1979년이 되어서야 이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이 연구결과는 서구학자들에게 무시되었다. 당시까지 출판된 중국의 연구결과가 학술적으로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고려해 연구주제를 선택해야 하는 개별 과학자에게는 합리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미 육군은 그러한 통상적 제한조건에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최상의 조건으로 전투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미 육군에서 말라리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결국 칭하오수가 약물의 형태로 정제된 곳은 미 육군의 의학연구소였다. 미 육군이 이 점에 있어 특이하게 행동한 것도 아니었다. 열대질병에 대한 유럽 과학자들의 지식이 19세기에 급속도로 축적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식민지 경영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인도령 케르니 지역의 한 초소에서 인도군 병사가 기관총을 조작하고 있다 (경향DB)



이처럼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이루어진 연구에서 인류에게 유용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러니를 제멋대로 해석해서 전쟁 연구를 옹호하려는 시도는 잘못이다. 칭하오수의 화학적 구조가 원칙적으로 군사 연구를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군사 관련 과학기술 연구에 여러 이유로 엄청난 자원이 투여되는, 바람직스럽지 않은 정치·사회적 환경조건하에서만 이런 역설적 결과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뿐이다. 전쟁은 인류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군사연구가 가끔씩 인류 복지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사실을 전쟁 관련 과학기술 연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시할 것이다. 이런 결과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군사 과학기술 연구가 범용성을 지니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군사 과학기술 연구가 그런 것은 아니다. 기관총은 1차 세계대전에 등장해 당시까지 표준적이었던, 용감하게 적을 향해 진군하는 전투 자세를 포복이라는 ‘비굴한’ 형태로 일거에 바꾼 대표적인 군사기술이다. 하지만 기관총이 인류 복지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 관련 과학기술의 성장은 과학기술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티코 브라헤나 로버트 보일처럼 스스로 엄청난 부자이면서 동시에 사회 저명인사가 아니라면 과학기술자에게 든든한 후원자를 얻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 연구에서 든든한 후원자는 궁극적으로는 세금을 통해 연구를 지원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주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돌보지 않고 강성대국을 외치는 북한에 대해 우리는 비판적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과학기술 연구가 전쟁보다는 인류의 삶에 더 적극 이바지하기를 기대하게 된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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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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