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이한승 교수 (신라대 바이오식품소재학과 교수)

장모님은 건강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 분야의 언저리에서 20년을 공부한 나도 모르는 건강 상식을 알려주실 때가 있다. 지극한 사위 사랑의 방법이건만 이 못된 사위는 태생이 의심 많은 과학자인지라 그런 상식이 과연 일리가 있는지 없는지 따져보는 일이 잦다. 그리고 간혹 장모님께서 알려주신 정보가 별로 근거 없는 것일 때 과학자로서의 나와 사위로서의 나의 갈등은 시작된다. 모르는 것이 약인지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약인지 잘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항간에 떠도는 의심스러운 건강 상식들의 근거를 과학적 문헌에서 발견한 경험은 많지 않다. 과학적 문헌은 고사하고 인터뷰,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 방송 프로그램, 하다못해 기업 광고 등의 출처라도 찾으면 다행이고 도저히 출처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 블로그나 SNS 같은 개인 매체가 발달하면서 이런 도시 괴담들이 더 빨리 확산되다 보니 일부 블로거들 사이에서 “백 투 더 소스(Back to the source)”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바람직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많은 정보들에는 그럴 듯한 사실과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이 뒤섞여 있고 아예 근본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장모님께 이런 것은 틀렸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에게서나 지적당하는 것은 싫은 법. 하물며 그게 사위라니, 어느 장모님이 그걸 좋아하시겠는가!

"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에요" - 심심하면 들려오는 괴담의 주인공, 전자레인지

 

교육 관련 공무원 연수의 강사로 초청을 받아 갔다가 전자레인지로 식품을 데우면 전자파가 나와서 발암물질이 만들어진다고 그 비싼 전자레인지를 내다버렸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이름부터 ‘전자’레인지니 전자파가 얼마나 많이 나오겠느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자레인지의 전자(電子)와 전자파의 전자(電磁)는 다르며 모든 열처리 방법은 어느 정도 영양소를 파괴하고 발암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논문을 찾아보면 전자레인지는 채소류 가공 시 열에 약한 수용성 비타민 손실이 적은 방법으로 확인되었고 고기를 굽는 데 활용하면 그냥 숯불에 구울 때보다 헤테로고리아민과 같은 발암물질 생성을 적게 하는 방법이라고 식약청이 추천했다.

업데이트가 안된 정보들도 있다. 연탄가스에 동치미가 좋다는 연구 결과와 보도가 30여년 전에 있었으나 이후 부인되었는데 이 때문에 연탄가스에 중독되었다가 엉뚱하게 동치미 국물로 기도가 막히거나 폐렴에 걸려 생명을 잃는 사람까지 나온다.
무죄 방면된 지 오래인 사카린은 과거의 사건 기록 때문에 아직도 발암물질로 종종 소개되고 있다. 반대로 은행잎 추출물은 뇌졸중이나 치매 예방 효과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아직도 그 효과의 기록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암 때문에 저를 찾지는 말아주세요" 책 한 권 때문에 억울해진 상어. (출처: 위키피디아)


<상어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20년 전의 잘못된 책 때문에 상어 연골이 아직도 암 예방 효과가 있다고 믿기도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설탕이 아이들에게 과잉행동을 일으킨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자녀가 설탕을 먹었다고 믿는 부모가 자기 자녀를 과잉행동이라고 진단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에선 설탕을 아이들 과잉행동의 독보적 원인물질로 비난하고 있다.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엉터리 정보도 있다. 기름은 물에 녹지 않는 물질을 뜻하건만 오리 기름이 수용성이라 건강에 걱정이 없다는 형용 모순적 표현이 인터넷에는 가득하다.
오리 기름에는 화상을 입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계속 댓글로 달리자 한 이웃 의사 블로거께서는 오리고기를 드시고 기름에 친히 손가락을 넣어 화상을 입음으로써 엉터리 댓글을 쓴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 적도 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전자파는 몸에 이롭다는데 그렇다면 자외선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내용들이다.

옳건 그르건 현대사회에서 ‘과학’이라는 말은 ‘사실’이라는 말과 비슷한 쓰임새를 갖고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는 말은 이제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라는 말처럼 사용된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 결과가 연구비를 지원하는 곳이나 연구자의 성향에 따라 편향될 수도 있기에 때때로 사람들은 과학을 불신하고 과학자를 불신한다. 하지만 그런 불신자들도 자신들의 이론은 더욱 과학적인 것처럼 포장한다. 어느 쪽이든 과학의 권위에 기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만큼 이 사회는 과학과 밀접하다.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은 가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거나 태부족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따르게 만든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런 대중을 무시하거나 무식하다고 타박한다. 설명하거나 소통하려 들지 않고 가르치려 든다.
장모님에게 사랑받는 과학자가 되려면, 또는 사회와 소통하는 과학자가 되려면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8월 22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