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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에 지금은 사라졌지만 두 평 남짓한 서점이 있었다. 언젠가 출장길에 그 서점에서 이봉주 선수의 자서전을 잠깐 읽었다. 서문에 이봉주 선수가 달리기에 대해 내가 평소 느끼던 상태를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무척 놀랐다.

 

나는 달리기를 나름 오래 한 축인데도 달리기를 하려 할 때마다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별의별 핑계가 생기는 것이다. 일이 몰릴 때는 이렇게 바쁜데 오늘은 무리네, 아침 일찍 뛰겠다고 눈을 뜨면 왠지 몸이 뻐근하군, 오늘은 쉬어야겠네. 그런데 막상 나가 뛰기 시작하면 핑계를 언제 댔느냐는 듯이 상쾌하게 달리게 된다.

 

그런데 이봉주 선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린다는 것이다. 비가 오네, 어제 너무 달렸네 하면서 오늘은 건너뛰고 싶은 이유를 찾다가 에이 하고 그냥 나가 뛰기 시작하면 언제 핑계의 유혹에 빠졌냐는 듯 열심히 뛰게 된단다.

 

내가 놀란 이유는 나 같은 아마추어는 뛸 때마다 큰마음 먹는 게 당연한데 이봉주 선수처럼 밥먹듯이 달리는 프로 선수도 나처럼 하루를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얘기를 접하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이 아니라 올챙이, 개구리 미래를 생각하면서 더욱 열심히 뛰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내가 이봉주 선수처럼 뛸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기록은 꾸준한 훈련으로 향상될 수 있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서는 노력한다고 얻을 수 없다. 말콤 글래드웰은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서 어느 분야에 대가가 되려면 1만시간 이상 투자하라는 1만시간 법칙을 얘기했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우리 막내아들이 2만시간을 달린다고 해도 결코 우사인 볼트가 될 수는 없다. 예상대로 지난번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올림픽 단거리 육상 기록을 자메이카 선수들이 휩쓸면서 왜 자메이카인가라는 궁금증이 되살아났다.

 

데이비드 엡스타인의 <스포츠 유전자>는 바로 그 궁금증을 다루고 있다.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자메이카 사회에 널리 퍼진 설은 전사-노예 이론으로 유전적 설명에 가깝다. 17세기 중반 대규모로 아메리카 식민지에 노예로 끌려온 서아프리카 흑인 중에 가장 용맹한 전사 부족 흑인들이 험준한 지형의 골짜기에서 식민지배에 저항하며 싸웠다. 그 골짜기 마을 후손들이 바로 오늘 금메달을 휩쓸고 있는 자메이카 선수들이다. 우사인 볼트 외에도 올림픽,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각각 세 번이나 휩쓴 여자 스프린터 베로니카 켐벨-브라운, 도핑으로 기록이 불인정되나 서울 올림픽 100m 금메달을 목에 건 캐나다 벤 존슨 모두 이 마을 출신이다. 스프린트 코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오래 달리기는 연습할수록 늘지만 “속도는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회 인프라설이다. 축구장보다 아이스링크가 많은 캐나다는 하키를 잘하고, 스위스인들은 옆집 갈 때 스키 타고 다니듯이 사람들은 접하기 쉬운 것을 잘하게 되어 있다. 자메이카에서는 스프린트가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다. 전국 고교 스프린트대회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대회가 열릴 때마다 선진국 육상팀이 스카우트하러 온다. 만약 자메이카 흑인들이 미국 흑인들처럼 어릴 때부터 농구를 끼고 살았다면 우사인 볼트는 없었을 것이다.

 

동갑내기 이봉주 선수를 존경하는 나의 개인적인 설, 아니 희망은 이렇다. 우린 모두 우리의 유전적 한계 내에서 우사인 볼트다. 몇 십만년의 시간을 두고 보면 사실 우린 모두 아프리카인이다. 오늘날의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아프리카에 살던 인류의 극히 작은 일부가 흘러나와 정착한 사람들로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작다. 서로 비슷해 보이는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유전자 차이는 한참 달라 보이는 유럽인과 아시아인 사이의 유전자 차이보다 훨씬 크다.

 

우리의 유전적 한계에 따른 최고치와 우사인 볼트의 최고기록을 각각 100%로 놓고 비교해보자. 어떤 초보자의 100m 최고기록이 18초이고, 그가 유혹을 떨치고 나온 아침에 세운 기록이 18.4초라면, 2009년 우사인 볼트(9.58초)가 은퇴 소문을 재우고 나온 2016년의 볼트(9.81초)가 된 것이다(볼트의 최고기록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아니라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나왔다).

 

그래서 오늘 다시 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했다. “위대함이란 행위가 아니고 습관(excellence is not an act but a habit)”이라는 명언과 함께.

 

김소영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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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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