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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라는 물리학 용어가 있다. 다른 전문 용어와 달리 엔트로피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 있는 개념이기에 비교적 익숙하다. 엔트로피는 흔히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질서가 없고 혼란스러울수록 엔트로피가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릇에 콩과 팥을 잘 섞어 놓은 상태가 콩과 팥을 깔끔하게 분리해 놓은 상태보다 엔트로피가 높다.

 

하지만 엔트로피를 무질서의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대강만 맞다. 그 이유는 물리학의 ‘질서’ 개념이 일상적 질서 개념과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와 관련된 무질서의 정도는 특정 ‘거시상태에 대응되는 미시상태의 개수’로 정의된다. 이때 거시상태란 큰 틀에서 볼 때 같은 결과로 파악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이에 대응되는 미시상태의 개수란 그 거시상태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상태의 개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감탄스러울 정도로 잘 정리된 방이 방금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어질러진 방보다 엔트로피가 높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방을 어지를 수 있는 방법의 개수가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의 개수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때 비교되는 거시상태는 각각 ‘잘 정돈된 방’과 ‘어질러진 방’이고, 방을 잘 정돈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과 방을 어지를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 각각에 대응되는 미시상태다.

 

여기에 각각의 미시상태가 실현될 확률이 모두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열역학 제2법칙에 도달하게 된다. 엔트로피가 높은 거시상태는 대응되는 미시상태가 많은 상태이므로 엔트로피가 낮은 거시상태보다 실현될 확률이 높을 것이고, 이로부터 우리는 고립된 계에서 엔트로피는 일정하거나 증가할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데 물과 기름을 밀폐된 통에 넣고 마구 흔들어 섞은 다음 가만히 놔두면 결국에는 물과 기름으로 깔끔하게 분리된다. 이건 누가 봐도 무질서한 상태가 질서 있는 상태로 바뀐 것처럼 보인다. 이 현상은 엔트로피는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하는 것 아닌가?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냉장고처럼 에너지를 사용해서 엔트로피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장치를 예로 들며, 열역학 제2법칙은 고립계에만 적용된다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물과 기름을 섞은 통을 밀폐된 상자에 넣어두어도 여전히 분리는 일어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상황에서도 엔트로피가 실제로는 증가한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물 분자와 기름 분자의 구조적 특징과 물 분자의 극성 때문에 이들이 공간적으로 서로 이웃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이 둘을 섞어 놓은 거시상태에 대응되는 미시상태(섞일 수 있는 구체적 방식)의 개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기에 물과 기름이 골고루 섞여 있는 상태는 실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 해당된다. 그에 비해 물과 기름이 깔끔하게 분리된 상태에서 물 분자끼리 섞일 수 있는 방법의 수나 기름 분자끼리 섞일 수 있는 방법의 수는 엄청나게 많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분자들이 수많은 미시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식적인 질서 개념과 물리학의 질서 개념은 대강만 같다. 이 사실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가 즐겨 먹는 햄버거는 원래 독일 도시 함부르크의 시민을 뜻하는 ‘함부르거’에서 유래했다. 함부르크 사람들은 빵 사이에 고기 다진 것을 넣은 음식을 즐겨 먹었는데, 이런 이유로 함부르거의 영어식 발음이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패스트푸드의 기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옛 문헌에서 “함부르거가 땅을 샀다”는 표현을 읽고서 패스트푸드 햄버거가 땅을 샀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은 분명 밀접한 관련은 있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학술적 개념을 상식적으로 풀어 설명하려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학술적 개념은 보다 많은 현상을 보다 일반적인 원리로 묶어내기 위해 일상어로는 온전하게 표현되기 어려운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점을 무시하고 대중적인 담론에서 과장된 비유를 남발하거나 과학의 ‘권위’를 내세워 무리한 추론을 하다 보면 햄버거가 땅을 샀다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엔트로피 증가 법칙이 말해주듯 모든 문명은 결국 무질서한 폐허가 되기 마련이라는 식의 ‘그럴듯한’ 주장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과학문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생산적이려면 과학적으로 엄밀한 개념을 느슨하게 사용해서 선정적인 주장을 하기보다는 다른 학문의 개념과의 연관성을 진지하게 탐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상욱 | 한양대 철학과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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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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