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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천체사진가 몇 명과 함께 몽골에 갔었다. 별이 잘 보이는 밤하늘을 찾아서 몇 시간을 비행기 타고 가서 또 몇 시간을 자동차 타고 달려갔다. 우리나라는 인공불빛이 너무 밝고 날씨도 좋지 않아서 사실 별을 보기에는 썩 좋은 곳이 못된다. 단 몇 시간을 사진 찍더라도 좋은 작품을 건질 수 있는 어둡고 맑고 건조한 밤하늘을 찾아서 천체사진가들은 몽골로 서호주로 관측 여행을 다니곤 한다. 나는 맨눈으로 별을 볼 욕심으로 사진기도 마다하고 쌍안경조차 없이 그저 맨몸으로 그들의 관측 여행에 동참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도 인공불빛이 없으니 아주 어두웠다. 춥고 건조한 날씨였다. 며칠 흐리기도 하고 눈발이 날리기도 했지만 맑은 날 낮에는 쪽빛 하늘에 맘껏 취했고 밤에는 별 속에 푹 파묻혀 살았다. 천체사진가들이 밤하늘을 그들의 사진 속에 담기에 골몰하는 사이 나는 내 두 눈으로 하늘의 천체들을 찾아 인사를 했다. 오랫동안 서울의 밤하늘에서 (우리나라의 다른 곳에서도) 맨눈으로 보지 못했던 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별, 성운, 성단 그리고 은하를 만났다. 안드로메다 은하도 반가웠다. 우리 은하에서 가깝고 비교적 큰 은하여서 서울 밤하늘에서도 잘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통 보기가 힘들었다. 서울의 인공불빛이 너무 밝기 때문이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성운과 성단의 모습을 실컷 눈으로 만끽했다. 구태여 이름을 기억해 내려고 하지 않았다. 밤하늘에 또렷하게 반짝이는 별도 아름답지만 희미하게 어두운 곳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성운이나 성단을 찾아보는 재미도 그만이다. 몽골의 밤하늘은 그런 놀이가 가능한 꿈의 시공간이었다.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관통하는 겨울 은하수도 실컷 봤다. 겨울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 별을 바라보던 그 마음이 되살아났다.

어린 시절 서울 변두리에 살았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의 밤하늘이 제법 어두웠다. 물론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인공불빛이 덜했으니 어지간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여름철 은하수는 운이 좋은 날이면 볼 수 있었다. 겨울 은하수는 확률은 덜 하지만 가끔씩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었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맨눈으로 보고 망원경으로 다시 만나던 단골손님이었다. 성운과 성단의 이름을 적은 노트를 갖고 옥상에 올라가서 눈으로 찾아보고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고 그림으로 그리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솟아오른다. 그런 밤하늘을 다시 만나니 너무 설레고 기뻤다.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서 바라보는 밤하늘 (출처 : 경향DB)


등화관제 훈련이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런 억압적인 훈련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한편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다. 북한의 폭격이나 그런 것에 대비해서 온 나라의 인공불빛을 동시에 모두 끄는 뭐 그런 훈련이었던 것 같다. 완장을 찬 아저씨들이 욕설을 섞어가면서 불끄기를 종용하고 다닐 때쯤이면 나는 이미 옥상으로 올라가서 다가올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들의 ‘불 꺼’ 소리가 고조되면서 내 마음이 설레는 강도도 점점 더 높아지곤 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인공불빛이 꺼지는 바로 그 순간 나는 헤어진 애인을 다시 만났다. 별이었다. 인공불빛에 파묻혀서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숱한 어두운 별들이 쏟아지듯 다가왔다. 내 눈은 성운에서 성단으로 그리고 은하로 옮겨 다니기 바빴다. 훈련이 끝나고 가로등이 다시 켜지고 내가 살던 서울은 다시 인공불빛의 천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별들과 다시 이별해야만 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시인이다. 인공불빛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문명인이다. 인류 문명의 찬란한 결과물이 바로 인공불빛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두운 밤하늘은 인류가 오랫동안 함께해온 문화유산이다. 인류의 조상들은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세상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각을 낳았고 숱한 이야기를 만들었고 철학을 낳았고 과학을 태동시켰을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인공불빛에 파묻혀서 어두운 밤하늘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몽골로 가지 않고도 별들과 노닐 수 있는 어두운 밤하늘을 볼 문화적 권리를 되찾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인공불빛의 남용을 막고 효과적으로 제어하면 에너지도 절약할 수 있고 더 아름다운 조명도 구현할 수 있다. 하늘로 향하는 불빛의 방향만 지상으로 바꾸는 시도를 해도 훨씬 더 어두운 하늘을 만날 수 있다. 어두운 밤하늘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 중 하나다. 복원하고 보존하고 즐길 권리가 있다. 어두운 밤하늘을 되찾아야 한다.


이명현 |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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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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