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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서울에는 전 세계 내로라하는 수학자 5000명이 모인다. 세계수학자대회라는 수학자들의 축제라기에 자못 사람들의 궁금증을 일으키나 보다. 이미 여러 매체가 그 이모저모를 앞다투어 소개하였기에, 노벨상에는 수학이 없어 이에 필적하는 ‘필즈상’이 있으며 관례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개막식에서 이를 시상할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려진 것 같다. 대회 중에 바둑 국수와 수학자의 바둑 대결도 있다고 하니, 수학자들은 체스보다 바둑을 더 즐긴다는 것도 알려진 것 같다. 수학자들이여, 서울에서의 축제를 만끽하기를!

그런데 바로 그 수학 때문에 전국의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는 축제가 열리는 이 여름이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그 고통은 축제가 막을 내리는 21일쯤 절정에 달할 것 같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1학기 말에 곱셈을 배운 후에 2학기 첫 단원에 곱셈구구를 배우도록 국가교육과정에 정해져 있으니 구구단 암기는 방학의 필수 과제이다. 개학 직전 부모가 숙제를 점검하다 이를 발견하면서 가정의 화목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결국 곱셈구구 외우기로 집안은 시끌벅적해진다. 2학년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이렇게 끝난다. 국가가 수학을 가르친 결과이다.

만일 수학축제에서 수학자들이 우리 아이들과 바둑 대결처럼 곱셈구구 경연을 해본다면 어떻게 될까. 확신하건대 7×8의 정답은 우리 아이들이 훨씬 더 빠르게 구해 수학자들을 압도할 것이다. 하지만 ‘7×0.5의 값은 곱하기임에도 불구하고 왜 줄어들까’라고 묻는다면? 암기로는 답할 수 없는 곱셈의 핵심 내용이다. 이런 핵심 원리의 습득을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곱셈을 한 해 동안 천천히 가르칠 수 있도록 교재 선택권과 교육과정 구성의 재량권을 교사에게 부여한다. 하지만 우리 교사들은 국가가 정해놓은 진도를 거역할 수 없기에 구구단 암기를 강요할 수밖에 없다.

세계수학자대회를 기념해 발행한 '피타고라스의 정리' '오일러의 정리' '파스칼의 삼각형' (출처 : 경향DB)


지난 7월 교육부는 ‘스토리텔링 수학수업 우수사례 공모’라는 해괴한 공문 하나를 전국 초등학교에 발송했다. 강의를 들었던 한 교사가 전해온 내용에 따르면, 새 교과서의 스토리텔링 내용을 보완할 수 있는 참신한 이야기와 수업 자료를 개발하라는 것이다. 배경은 이렇다. 지금의 수학 교과서는 수십쪽에 달하는 그림동화를 곁들여 세계에서 가장 두껍고 무거운 책이 되었다. 소위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의 결과물로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배우는 수학책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현장의 반응은 전혀 아니다. ‘수학을 지도하는 것도 시간이 부족한데 이야기까지 들려주라? 억지로 꿰맞춘 이상한 내용과 구성에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 이들을 통제하며 수업을 이끌어야 하는 또 다른 부담….’ 결론적으로 개악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위의 공문은 이런 불만들을 무마하기 위해 전체 교사들을 끌어들이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자기들끼리 팀을 구성한 집필진의 무능을 그대로 인정한 셈이다. 혈세 57억원을 허공에 날려버린 로봇 물고기와 다르지 않다. 공문에는 이런 구절도 들어 있다. “집필진과 협의하에 교과서를 수정하거나 대체하는 자료로 활용하지만, 저작권은 교육부가 소유한다.”

교사에게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이라는 졸속 시행의 실패작에 동참하라면서 참신한 아이디어는 자기 것으로 하겠다니 로봇 물고기보다 더한 후안무치이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수학·과학교육에서 부리는 이런 횡포는 교육부를 방패막이로 한 ‘창의과학재단’의 작품이다. 그런데 ‘선진국’이라는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재단을 만들어 국가가 수학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사례는 본 적이 없다.

“국사는 국가가 가르쳐야 한다”는 새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비이데올로기 과목이라 여기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수학도 국가가 가르치는데 국사는 당연하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그가 말하는 국가의 정체는 무엇일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집합론을 창시한 칸토르가 ‘수학의 본질은 자유’라 했지만, 사실 자유는 모든 학문의 본질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인물인 존 내시는 프린스턴대학 시절 결강을 수시로 밥 먹듯 하였는데, 교수의 강의가 자신의 자유로운 사고를 방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여러모로 무더운 이 여름, 자유의 영혼을 소유한 수학자들의 축제가, 자유는 국가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서울에서 열린다.


박영훈 | 수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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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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