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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인성교육을 시행한다고 하지만, 수학 교육에서는 이미 발빠르게 몇 년 전부터 이를 실천해 왔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3학년 ‘원’이라는 단원의 교사용 지도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인성교육 활동’이라는 제목으로 제시되어 있다.

‘성격이 모나지 않고 매우 원만한 사람을 성격이 둥글둥글하다고 한다. 모난 부분이 없는 원처럼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둥글둥글 지낸다면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인성교육이라 할 수 있는지는 미뤄놓고, 과연 수학과 인성교육이 관련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학의 언어>에서 수학자 케이스 데블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학은 전적으로 인간이 창조한 산물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성 자체의 연구이다. 왜냐하면 수학의 기반을 이루는 것 중에서 그 어떤 것도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 점, 직선과 평면, 기하학적 도형, 함수 등은 오직 인류의 집단적 정신 속에만 존재하는 순수한 추상적 대상이다.”

수학의 추상성 자체가 인간 지성의 결과이니, 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성 자체에 대한 탐구라는 것으로 수학과 인간성의 관련은 충분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원을 배우며, 주위 사람들, 특히 윗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잘 받아들이며 자기 주장을 삼가라는 일종의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이 인성교육일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의 기억에서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작년 4월의 세월호 참사는 그런 교육의 결과라 하면 지나칠까. 어쩌면 교과서 필자 자신이 스스로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원 모양처럼 둥글둥글 살다보니, 그 덕택에 교과서 집필자가 되었기에 이를 전국의 아이들에게 알려주겠다는 의도였다고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는 정말 수학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저명한 수학자 알랭 콘은 수학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학자가 되는 것은 반항을 시작하는 것이다. 수학 공부의 시작은 책에 담겨진 내용과 자신의 주관적 관점이 일치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물론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그 중심은 결국 학습자 자신임을 말한다. 따라서 그저 맹목적으로 문제의 풀이과정을 강요하거나 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 자신의 앎과 책 내용 사이의 간격을 좁혀 나가는 것이 수학의 가르침이자 배움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수학에는 절대적 권위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수학 학습의 핵심이다. 학생이 갖추지 못한 지식을 선생이 방패 삼을 수 없다는 점에서 수학의 특성이 드러난다. 다섯 살배기 아이도, “아빠, 세상에서 가장 큰 수는 없어”라고 말하고 이를 확신할 수 있다면, 아빠와 동등한 위치에서 수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진리는 저 위에 있는 이데아의 세계’라며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의 옆에서 손가락을 밑으로 향하며 스승의 주장에 반기를 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은 이를 상징하는 게 아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인성회복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대형사람인 만들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난해 말 재석 국회의원 199명이 전원일치로 통과시킨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해괴한 법에 따라 올해 7월부터는 인성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한다고 한다. 부패와 비리 그리고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인성을 교육하라는 법을 만들었다니…. 더욱더 기막힌 것은,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는 것을 막고 교원의 자존심을 지켜야 할 교원단체의 회장이 “국가·사회 차원에서 2015년을 인성교육 원년으로 삼고 인성교육 실천 범국민운동을 전개해…” 운운하며 한술 더 떠 이에 편승하는 등 바보들의 행진은 우리를 슬프게 할 뿐이다.

인성교육은 별도의 시간을 배정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들에게 자신의 과목을 제대로 가르치도록 전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면, 그 안에서 인성을 구현하는 교육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굳이 수학의 예를 들면, 수학은 활짝 열린 자유의 공간이며 ‘수학의 본질은 자유’라는 집합론의 창시자 칸토르의 명언을 학교 교실에서 만끽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을 탐구하는 것이자 인성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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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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