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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산 ‘미승인 유전자변형(GM) 밀 사건’이 최근에야 공식적으로 일단락됐다. 9월26일 미국 농무부 산하 동식물검역소(APHIS)는 오리건주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GM 밀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공개했다. 내용이 방대했다. 291명의 관계자 얘기를 듣고 시장에 GM 밀이 유통됐는지 확인하는 데 17개월이 소요됐다. 무려 1만3000여쪽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동식물검역소는 이번 조사를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소비자는 GM 밀이 시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발표에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조사 결과를 보면 과학의 한계를 새삼 일깨우는 듯하다. 어디서도 자라지 말아야 할 GM 밀이 농지에서 발견된 구체적인 이유를 끝내 밝히지 못했다. 더욱이 몬태나주에서도 미승인 GM 밀을 발견해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유전자변형식품(GMO) 개발을 지지하는 측에서도 정부의 느슨한 관리체계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인이 섭취하고 있는 GMO는 당연히 각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GM 밀은 미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승인을 받은 적이 없다. 사건은 한 농부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다. 자신의 밭에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밀을 확인하고는 GMO라고 의심하며 오리건주립대학교에 검사를 의뢰했다. 농부의 제보가 없었다면 정부가 GM 밀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GM 밀은 몬산토에서 개발되던 종류였다. 몬산토는 1998~2005년 미국 16개 주에서 100여건에 걸쳐 GM 밀을 시험적으로 재배했다. 오리건주에서는 2001년경 시험재배가 시작됐다. 이후 몬산토는 상업적 재배를 포기하고 GM 밀을 완전 폐기했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GM 밀이 10여년 후에 자라고 있던 것이다.

몬산토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는 시험재배 사실만 인정했을 뿐 자사의 GM 밀은 전혀 다른 종류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리건주의 농부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적절한 조건으로 합의하기로 결정했다. 농부들은 사건이 발생한 후 수출이 중단되고 밀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폐기됐다던 GM 밀이 어떤 경로를 통해 농지에서 자라게 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프랑스 파리의 한 지하철역에서 15일 행인들이 시민단체 생태주의자 동맹이 유전자조작(GMO) 식품에 반대하는 내용의 광고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광고에는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권총인 것처럼 머리에 대고 발사하려는 모습과 함께 ‘GMO는 위험하지 않다’는 역설적인 문구를 붙여놓았다. _ AP연합


올해 7월 몬태나주에서 발견된 미승인 GM 밀도 몬산토산이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몬태나주립대학교의 한 농업연구센터에서 GM 밀의 시험재배가 진행됐다. 역시 완전히 폐기되지 않아 10여년 후 같은 장소에서 발견됐다. 제초제를 살포해도 살아남는 GM 밀을 발견한 사람은 몬산토나 정부가 아닌 현장의 연구자였다. 동식물검역소는 시험재배용 GM 밀이 왜 다시 자라게 됐는지 아직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오리건주의 사례에 비해 작은 규모로 자라고 있으며 다른 종류의 개체라는 점이 차이일 뿐이었다.

보고서에 제시된 사건은 두 개였다. 하지만 승인을 받지 않은 더 많은 GMO가 현재 어디선가 자랄 수 있고 시장에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두 사건처럼 농부나 연구자가 발견하지 않고서는 미승인 GMO의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 없다.

동식물검역소는 이제부터 시험재배 지역과 주변의 관련 지역을 중심으로 조사를 벌여 미승인 GMO의 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한 조치지만, 많이 늦었다. 안 미국 정부는 GMO 개발 회사의 보고서만을 믿고 직접 전반적인 문제 상황을 점검하지 않았다. 또한 아무리 조사를 엄격히 해도 미승인 GMO의 존재를 확인할 뿐 그 이유를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미국밀협회는 한국과 일본이 더 이상 수입 밀에 미승인 GMO가 섞여 있는지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오리건주의 사건 이후 양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샘플 검사를 수행해 왔다. 밀협회는 미국 정부가 미승인 GM 밀이 시장에 유통되지 않았다고 밝힌 이상 검사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급자로서는 그렇게 얘기할 만하다. 하지만 수요자의 입장은 다르다. 밀은 물론이고 다양한 GMO가 승인을 받지 못한 채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국이든 수입국이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이 막중해지고 있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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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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