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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동대표 때의 일이다. 전체 입주자 대표회의에 옥상에 설치된 통신사 무선중계기의 철거가 의제로 올라왔다. 일단 사안을 좀 더 알아본 뒤 다음 전체 회의 때 결정하자고 정리됐다. 당시 아파트에 무선중계기 설치를 허락하면 200여만원을 아파트 잡수입으로 받을 수 있었다. 해당 통신사에서는 중계기의 전자기파가 허용기준치 이하이므로 안심해도 된다고 열심히 홍보했다. 몇 주 지나 입주자 대표 전체 회의가 다시 열렸다. 다수 참석자들은 전자기파의 유무해를 떠나 이런 식의 일방적 설치 후 승인 요청에 불만을 보였다.

 

‘사드 한국 배치 반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정문 앞에서 사드 배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철거에 반대 입장을 밝힌 동대표도 있었다. 요즘같이 모두가 휴대폰을 쓰는 세상에 주민 전체를 위해 무선중계기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철거를 요구한 동대표가 응답했다. “그러면 그쪽 동으로 중계기를 옮겨 가시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이후 아무도, 어떤 발언도 없이 회의는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될 사안이 왜 몇 주 동안 논란이 됐는지 웃음이 나왔다. 무선중계기는 바로 철거됐다. 물론 그 후 필자의 무선통신 생활에도 별문제는 없었다.

 

사드 사태로 전자기파의 위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전자기파는 주파수 대역, 출력 세기, 실험 대상에 따라 그 위험의 정도도 다르게 정해진다. 그런데 전자기파의 위험에 대한 다양한 주장 속에서도 일관된 결론이 있다. 하나는 그 안전 기준치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 특히 태아에게 전자기파는 여러 생리적 영향을 주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어떤 논문은 무릎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랩톱 컴퓨터가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임산부에게 사용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전자기파의 장시간 노출에 대해서는 어떤 확정적인 결론도 없으므로 단시간 실험의 결과를 외삽(外揷, extrapolation)해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사항이다. 예를 들어 하루 1시간의 노출 실험에서 아무 문제가 없으니 그렇게 몇 년을 살아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드로 전국이 시끄러울 때, 종편의 한 패널은 동물실험을 통해 사드 전자기파의 무해함을 성주 군민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모든 소동을 잠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험대상인 개나 돼지가 사드 레이더 밑에서도 몇 년 동안 살아있다면 그 안전성이 증명된다는 주장이다. 살아있도록 밥만 먹여주면 된다는 민중 개·돼지론의 변주곡이 아닐 수 없다. 전자기파 과다 노출의 공통적 현상인 두통이나 불면증, 오심 등을 실험대상인 개나 돼지에게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두통을 호소하는 개, 돼지는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과학의 근본은 확인된 것과 아닌 것에 대한 분명한 구별로부터 시작한다. 유럽에서 12000명의 기형아를 만든 탈리도마이드 약화 사건은 과학의 근본이 무시된 전형적 사건이다. 그러나 미국은 실험 자료의 불충분, 태아에 미치는 영향 등을 끝까지 요구해 그 판매를 금지시킨 프란시스 켈시의 덕택으로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자기파의 장기노출에 대한 올바른 과학적 입장은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현생 인류의 생리 구조가 결정된 수만년 전 홍적세에 인공 전자기파는 없었다. 따라서 지금의 인간에게 아무리 낮은 전자기파라도 건강에 도움이 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안전 기준은 개별적인 상황, 즉 태아, 임산부, 환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공공병원 근처에 설치되는 무선중계기에 대해 훨씬 까다로운 기준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공기 이착륙 때 휴대폰을 끄도록 강제하는 지침 역시 같은 원리다.

 

휴대폰 때문에 항공기 사고가 난 사례가 없으니 그런 지침을 과도한 걱정, 괴담이라고 우겨서는 곤란하다. 결국 인간은 전자파에 내성을 가지도록 진화하겠지만 1만년 안에 그럴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성주 군민만의 빠른 진화를 요구할 수는 없다.

 

국방부의 주장대로 사드 레이더의 안전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전 국민의 3분의 1이 모여 있는 서울이 성주보다 더 합당한 장소다. 김정은 일당의 사악한 움직임을 좀 더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위치로, 공격과 방어 관점으로 볼 때도 서울보다 합리적인 위치는 없다. 일부 정치인들이나 열혈 애국보수는 참외 사주기와 같은 얍삽한 유사 공감행위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동네에 사드 기지가 들어오도록 실천적 열정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진실은 혀가 아니라 몸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조환규 |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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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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