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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리모델링을 마친 교보문고에서 앞쪽에 전시된 책들을 한바퀴 구경했습니다.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시크릿 하우스'는 아직도 그곳에 있더군요.
4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도 기억은 새록새록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은 다음부터, 식탁과 조리대에 흘린 음식을 집어먹는 데 주저하기 시작했고 화장실 물을 내릴 땐 변기 뚜껑을 닫아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곁에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과 내가 아무 생각없이 먹고 있었던 알 수 없는 화학물질들의 집합체들에 대한 폭로! 알고보면 집에 가만히 있는 것도 두려울지 모른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주시길.



생각의나무. 김명남 옮김. 오승만 일러스트레이션. 1만4000원




‘따르릉’ 자명종과 함께 시작하는 어느 남녀의 하루. 씻고 먹고 입고 출근했다가 퇴근 후 손님을 접대하고 씻고 잔다. 아차, 책의 주인공이 집주인 남녀가 아니라는 것을 깜빡했다. 제목을 보니 주인공은 ‘집’이고 ‘비밀’ 또한 존재한다. 이쯤에서 그들의 하루를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따르릉’ 자명종에서 나온 파동이 마하 1의 속도로 달려가 벽과 커튼에 부딪친 뒤 대부분 곧장 반사되어 집주인의 귀로 쏙 들어간다. ‘쿵’ 남자의 발이 바닥에 떨어지자 마루 아래 벽돌이 0.000025㎝ 주저앉는다. ‘바스락’ 욕실로 가는 남자의 몸에서 각질이 떨어지고 방금 잠에서 깨어난 수만마리 진드기는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다. ‘쭈욱’ 남자는 수돗물, 석회, 페인트, 세제, 박하, 포름알데히드 등이 들어간 치약을 짜서 이를 닦는다. ‘털썩’ 남자가 식탁에 던진 조간신문에서는 석면, 유리섬유, 풀과 함께 잉크가 떨어져 나오고 행주에서 태어나 식탁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했던 슈도모나느균들은 소리없는 최후를 맞는다.

‘보글보글’ 주전자 속에서는 백악기 원시바다가 재현되고 ‘부글부글’ 달걀과 우유 속에서는 세균과의 전쟁이 벌어진다. ‘철썩’ 살모넬라균은 음식에 올라타거나 당신의 손가락에 달라붙고 ‘푸슉’ 사과는 스스로 뿜어낸 숙성 촉진물질에 대항하기 위해 자기 껍질에 바를 방수성 왁스를 끝없이 뽑아낸다. ‘콜록’ 손님은 집주인에게 감기바이러스를 쏘아대고 ‘윙윙’ 파리는 사이키처럼 껌뻑거리는 형광등 밑에서 안전비행에 힘을 쓴다. ‘찌릿’ 셔츠의 정전기는 먼지를 집합시키고 ‘번쩍’ 번개는 땅에서 하늘로 솟아오른다.

이 자들은 마루 밑 아리에티가 아니에요.



지독히 평범한 일상에 고성능 전자현미경을 들이대니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각종 세균과 미생물, 모래먼지, 전자와 파동의 쉼없는 움직임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E=MC²’으로 유명한 저자는 12세기에 지어진 시골집에서 지내다 이 책의 영감을 얻었다.

일상 속에 숨겨진 과학법칙을 쉽게 풀어놓고 각종 합성물질들의 제조과정과 미시적 역사를 양념으로 더했다. 100% 식물성 기름으로 알려진 마가린은 사실 으깬 청어의 기름과 돼지비계, 살짝 맛이 간 우유와 비누성분 유화제, 초강력 색소로 만들었다 하니 입맛이 뚝 떨어진다. 청바지는 섬유의 절반만 파랗게 염색했기에 봐줄만한 옷이 됐고 코카콜라는 구강세정 및 양치제로 팔다 망할 뻔했으며 과거 귀족들은 초대를 받으면 식탁을 들고 가야 했다. 샴푸 후 머리가 뻣뻣한 이유는 뭔지, 감자칩 봉지는 왜 뜯기 힘든지, 화장실에서는 왜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려야 하는지 등 생활정보에 가까운 내용도 많다.

진실은 알면 알수록 두려워진다고 했던가. 이쯤 되면 집 구석구석이 전처럼 평범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파스퇴르처럼 의심스러운 음식의 곳곳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당신의 연인 이마에 서식중인 7천2백만 세균에게 “잘 지냈니” 인사를 건네는 것이 좋을까. 당신의 선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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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이언스 톡톡 mx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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